"영웅 아들 바란 적 없다" 엄마의 통곡…비탄 잠긴 이 마을 [종전협상 우크라를 가다①]

2025-05-20

차량이 덜컹거리며 골목길로 들어갔다. 4~5층 규모의 낡은 아파트가 다닥다닥 붙은 주거 밀집 지역이었다. 동유럽에서 인기 있는 스코다 소형차들이 입구에 주차된 게 눈에 들어왔다. 5분가량 아파트촌 안쪽으로 들어가자 꽃다발 더미와 인형에 뒤덮인 화단이 나왔다. 사진 속 고인들은 슬픔 없이 웃고 있었다. 빗방울이 액자를 타고 흘렀다.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의 한 아파트촌, 러시아가 북한제 KN-23(북한명 화성-11가) 미사일을 퍼부은 현장이었다. 이 공격으로 12명이 숨지고 90여명이 다쳤다고 한다.

지난 17일(현지시간) 찾아간 아파트는 한달 여 전 피습 때와 마찬가지로 지붕과 벽이 뜯겨 나가고, 창문들이 깨져 있었다. 담배를 피우던 50대 주민 유라는 “잠깐 깨는 바람에 부엌에 갔는데, 그 이후 기억이 없다”고 했다. 눈 떠보니 병원 침대였다고 한다. 다른 주민들에게 다가가자, 손사래 치며 외면한다. “러시아가 외신을 체크해 불이익을 줄까 봐 외국인 기자 만나길 꺼린다”는 동유럽 교민의 조언이 기억났다. 3년 넘게 계속되는 전쟁은 두려움을 먹이 삼아 증식 중이었다.

#1. 자유

카페에서 아르바이트하는 막심 티모페이브(19)는 키이우로 피난하며 러시아 친척들과 절연했다. 옛 소련 시절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으로 러시아인들이 대거 이주해 통혼했다. 전쟁 전만 해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쪽의 정체성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사는 이들이 꽤 있었다. 그러나 막심은 “나는 자유로운 우크라이나인”이라며 “러시아인은 우리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가장 사랑하는 우크라이나어는 ‘자유(볼랴)’, 가장 미워하는 러시아어도 ‘자유(스보보다)’”라고 했다.

우크라이나인들은 ‘볼랴’에는 ‘스보보다’에는 없는 영혼의 깊이가 있다고 주장한다. 볼랴(우크라이나어)가 스스로 선택하고 억압을 부순다는 의미라면, 스보보다(러시아어)에는 외부의 체제가 허용하는 여지라는 뜻이 담겼다고 한다. 단어 자체에 자치를 기본으로 하는 우크라이나 정치문화와 일찌감치 중앙집권적 국가를 형성한 러시아의 역사적 배경 차가 녹아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022년 2월 “우크라이나인에게 자유를 주겠다”는 명분으로 전쟁을 개시했을 때 “러시아식 자유의 진의를 아는 우크라이나인들은 그 말에 소름이 돋았다”(막심)고 한다.

종전을 두고 미국과 러시아, 우크라이나 정상들의 외교전이 활발하지만 우크라이나인들의 기대감은 낮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푸틴의 전화통화(19일),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대표단의 평화협상(17일)이 맹탕으로 끝난 데 대해서도 놀라워하지 않았다.

옥사나 딘첸코(50)는 러시아가 점령 후 소유권을 주장하는 우크라이나 자포리자 원전에 대해 “운용할 능력이 없는데도 가져가겠다고 한다. 그게 푸틴”이라고 했다. “전쟁을 끝내려고 했으면, 애초에 시작도 안 했을 인간이 푸틴”(20대 대학생), “우크라이나의 말살이 러시아의 목표”(50대 가게 주인)라고 했다. “우크라이나 민족이란 건 존재하지 않는다”며 개시한 푸틴의 전쟁은 오히려 두 민족의 차이만 재확인해준 셈이다.

트럼프에 대해서도 “러시아도 압박하고, 우크라이나도 압박해서 결과를 만들어내겠다는 계산으로 보이지만, 트럼프식의 방법이 아직 뚜렷한 성과를 내지는 못하고 있다”(30대 대학원생)고 씁쓸해 했다.

#2. 상실

우크라이나 독립광장에서는 거대한 깃발 더미를 마주할 수 있다. 전몰장병의 유족들이 전사한 남편과 아들의 이름, 생몰년월일을 적어 하나 둘 씩 꽂아두기 시작한 게 지금의 모습이 됐다. 국기 하나당 생명 하나인 셈이다.

키이우의 쇼핑몰에서 라면 가게를 운영하는 올렉산드르 코데네츠(54)는 2022년 키이우를 향해 러시아군이 밀물처럼 진격해오자, 민병대를 조직해 바리케이드를 치고 결사항전을 다짐했다고 한다. 코데네츠는 “이런 국민의 모습에 용기를 얻어 우크라이나 정부도 반격에 나설 수 있었다”면서도 “대신에 우리는 너무 많은 청년의 목숨을 대가로 치렀다”고 했다.

남겨진 사람들도 다양한 형태의 상실을 겪고 있다. 한 키이우 주민은 비탄에 빠진 ‘영웅들의 마을’ 이야기를 들려줬다. 전사한 장병들에게 우크라이나 정부가 ‘영웅(헤로이)’ 칭호를 부여하는데, 그 때문에 한 마을에만 수십 명의 영웅이 나온 곳이 있다는 것이었다. 24살 아들의 전사 통지를 받은 그 마을의 한 어머니는 “영웅이 아닌 아들이 결혼도 하고, 자식을 남기고, 보통 사람처럼 사는 그런 미래를 원했다”고 흐느꼈다고 한다.

부친이 고려인이라는 이고르 임(30)은 “6살, 3살, 2살짜리 세 자녀를 두고 있는데 공습경보가 울릴 때마다 아이들이 몸을 떤다”고 했다. 심지어 키이우에선 참새들도 자취를 감췄다. 러시아의 포화를 피해 새들이 멀리 둥지를 옮겼기 때문이다. 현지 환경단체는 러시아의 전쟁으로 “에코사이드(ecocide·환경파괴)”가 일어났다고 탄식했다.

#3. 미래

전쟁의 상처를 딛고 일어서는 것 역시 남겨진 사람들의 몫이다. 프로코펜코 알료나(19)는 “전쟁의 두려움에 떠는 사람들을 위로하는 집을 만들기 위해” 이번에 건축학과로 진학했다고 한다.

청년 사업가인 이반 몰차노브(29)는 “전쟁이 터졌을 때 가족회의를 통해 키이우에 남기로 했다”며 수익을 모아 우크라이나군에 차량 등을 지원하고 있다. 그는 “전쟁이 끝나고 상이군인들이 귀환하는 만큼 집의 입구 형태부터 바꿔야 한다”며 관련 건축 사업을 준비 중이다. “전쟁용 드론(무인기)을 생산하던 기업들도 기술을 다른 형태로 전환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발전시설 등이 필요할 것”이라며 전쟁 이후 우크라이나의 미래를 그리고 있었다.

이날 낮에 만난 라면 가게 주인 코데네츠가 힘주어 하던 말이 떠올랐다. “우크라이나인은 오늘을 살지만, 어제를 기억하며, 내일을 고민한다.”

지난 18일 오전 0시, 키이우 전역에 공습경보가 울렸다. ‘웨~엥~’ 하며 귀를 찢는 소리가 2분간 이어졌다. 묵고 있던 호텔 방의 커튼을 열어젖혀 밖을 내다봤다. 짙은 밤을 배경으로 불빛 하나 없었다. 이틀간 이어지던 키이우의 비는 어느새 그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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