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스라엘 남부 니르 오즈 키부츠(집단농장)에는 더 이상 우편물이 오지 않는다. 햇살이 내리쬐는 20일(현지시간) 우편함엔 먼지만 가득했다. 우편함별 이름표 옆에는 ‘살해’ ‘납치’ ‘석방’이 적힌 빨강, 검정, 파랑 스티커들만 붙어있었다. 2023년 10월7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기습 공격하고 이스라엘이 곧바로 가자지구를 보복 공습하며 전쟁이 발발한 지 592일째, 니즈 오르의 시간은 전쟁이 시작된 그날에 멈춰 있다.
10월7일 기습이 멈춰세운 마을…이어지는 가자지구 포성 — 니르 오즈 주민 올라 메츠거는 “230여 채 집 중 하나도 손상되지 않은 건 7~8채뿐”이라며 “그날 이후 주민 대부분이 돌아오지 않았고 지금 여기 사는 건 몇 명 안 된다”고 말했다. 1955년 지어진 니르 오즈는 2023년 10월7일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했을 때 가장 큰 피해를 본 곳이다. 주민 51명이 숨지고 76명이 납치됐다. 14명은 여전히 돌아오지 못했다.

메츠거도 그날 비극을 피하지는 못했다. 남편, 자녀들과 12시간 가까이 세이프룸(은신처)에 숨어 하마스 공격을 가까스로 피했으나 시아버지 요람과 시어머니 타미 메츠거가 인질로 잡혀갔다. 그해 11월 휴전 당시 석방된 타미 메츠거와 달리 80세이던 요람 메츠거는 하마스에 억류돼있던 중 사망했다.
니르 오즈 곳곳엔 검게 그은 집, 총알 자국이 새겨진 벽, 형체도 없이 사라진 창문 등이 눈에 띄었다. 하마스가 공격한 흔적들이다. 메츠거는 당시 상황을 ‘러시안 룰렛’이라고 표현하며 “우리 집에 들어온 사람들이 불을 지르거나 총을 쏘지 않은 건 운이 좋은 일이었던 것뿐”이라고 말했다.

수많은 니르 오즈 주민들처럼 비바스 가족은 운이 없었다. 태어난지 9개월 된 크피르, 네살짜리 아리엘을 포함한 비바스 가족은 아빠 야르덴 비바스를 제외하고 지난 2월 숨진 채 이스라엘로 돌아왔다. 크피르는 하마스가 잡아간 최연소 인질로 이스라엘에 슬픔을 안겼다. 비바스 가족이 살던 집 마당의 흰색 목마와 세발자전거에는 흙먼지가 앉았다.
이날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 사이로 ‘펑’하는 포성이 쉴 새 없이 들렸다. 니르 오즈로부터 약 2㎞ 거리 국경 너머 가자지구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가자지구 북쪽 끝과 가까운 이스라엘 스데로트 지역의 기바트 코비 전망대에선 포성에 뒤따라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습도 보였다. 이스라엘은 최근 가자지구 재점령을 위한 ‘기드온의 전차’ 작전을 개시하고 공습을 강화하는 중이다. 가자지구에선 592일째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

이스라엘 전역에 퍼진 상실, 멀어지는 ‘두 국가 해법’
2023년 10월7일은 곳곳에 상처를 남겼다. 그날 하마스의 공격으로 300여명이 숨지는 등 아수라장이 된 노바음악축제 현장은 추모의 장으로 변했다. 인근에는 당시 불탄 차량 1650대가 마치 장벽처럼 쌓였다. 축제 현장 근처 232번 국도에서 하마스 공격을 받아 이리저리 으스러진 차들은 희생자 유해를 찾기 위해 한 데 모이기 시작했으나, 희생자 넋을 기리는 장소로 자리 잡았다.

당시 노바음악축제 현장의 참혹한 상황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마잘 타자는 친구들을 잃었다. 그는 “그들(하마스)은 그날 내 영혼의 무언가를 부숴버렸다”며 “우리를 파괴하고 싶어하는 그들이 좇는 것 증오뿐”이라고 말했다. 이어 “나의 아들만큼은 안전한 환경에서 커가길, 모두가 안전해지길 바란다”면서도 “하마스가 우리를 없애려 하는 한 함께 사는 것은 절대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마스 급습으로 촉발된 가자지구 전쟁이 1년 반 넘게 이어지면서 남부 지역에 집중된 상실과 트라우마는 이스라엘 전역으로 퍼졌다. 이스라엘에 첫발을 내딛는 텔아비브 국제공항에서부터 돌아오지 못한 인질들 사진이 나열돼 있었다. ‘Bring them back home(인질들을 집으로 데려와라)’ 문구와 귀환을 촉구하는 포스터는 예루살렘 시내 곳곳에 붙어있었다. 이스라엘 크네세트(의회)에는 아직 돌아오지 못한 인질 사진이 의장석을 바라보고 놓여있다.

정부 당국자, 언론인, 이스라엘군 관계자 등 기자가 만난 이스라엘인들은 하나 같이 “우리는 10월7일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스라엘의 생존을 그 어떤 것보다 최우선으로 삼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굳게 자리 잡았다. 결론은 인질 귀환과 하마스의 비무장화로 요약된다.
이스라엘의 1순위 목표가 생존을 위한 위협 제거로 변한 상황에서 팔레스타인과 공존을 위해 국제사회가 지지하는 ‘두 국가 해법’도 멀어졌다. 이스라엘 외교부 지역안보·대테러부서 전략 담당인 엘리 리프시츠는 “10월7일 이후 이스라엘 국민 사이에서 두 국가 해법에 대한 지지는 급격하게 줄었다”고 말했다.
‘10월7일’의 충격을 되새기며 가자지구 참상의 책임을 이스라엘에만 묻는 것은 불공평하다는 주장과 달리, 이스라엘 정부의 통제 아래 오랫동안 이어져온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억압과 고난을 지워선 안 된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동예루살렘 지역에서 만난 무슬림 바사는 “이스라엘 정부는 10월7일 사건만 얘기할 뿐 그전에 벌어진 일들에 대해선 얘기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동예루살렘의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1980년 이스라엘이 공식 합병을 선언한 뒤 거주권만 갖고 있어 상대적으로 취약한 지위로 지낸다.

동예루살렘 구시가지에서 가장 큰 팔레스타인 서점 ‘에듀케이셔널’을 운영하는 마흐마드 무나는 “지난 2년간 이스라엘 정부는 팔레스타인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극우 성향 인사를 포함한 우파 정권이었다”며 “그들은 이스라엘이 점령지에서 저지른 범죄를 기록한 팔레스타인 시민단체를 테러 조직으로 분류하고, 교실에서 팔레스타인인을 체포하는 등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조치들을 이어왔다”고 말했다.
이스라엘 경찰은 지난 2월 테러리즘을 조장하는 책을 판다는 이유로 마흐마드 무나를 체포하고 서점의 책을 압수해 공분을 샀다. 마흐마드 무나 가족이 운영하는 서점은 중동 문화와 아랍·이스라엘 갈등을 다룬 서적을 두루 갖춰 외교관, 언론인 등이 많이 찾는다. 팔레스타인 지식인 사회에서도 존재감이 큰 곳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