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츠와 도파민 중독 등 빠른 속도와 자극에 민감한 시대지만, 반대로 느리고 여유롭게 삶을 음미하는 것의 가치도 높아지고 있는데요. 이럴 때 느린 삶의 미학을 추구한 타샤 튜더의 이름이 생각나게 됩니다.
타샤 튜더(Tasha Tudor, 1915~2008)는 미국을 대표하는 동화 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죠. 작가 활동과 더불어 소박한 자급자족 생활을 실천하며 자연과 함께 살아간 라이프 스타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미국 보스턴에서 태어난 타샤는 스물세 살에 첫 그림책『호박 달빛(Pumpkin Moonshine)』으로 데뷔한 후『마더 구스(Mother Goose)』와『1은 하나(1 is One)』로 미국의 가장 권위 있는 아동문학상 중 하나인 ‘칼데콧’을 수상하며 주목받았죠. 이후『타샤의 특별한 날(A Time to Keep)』『비밀의 화원(The Secret Garden)』등 100여 권의 저서와 삽화를 남기며 미국의 국민 작가로 자리매김했어요.

동시에 50대 무렵부터 손수 가꾼 30만 평에 이르는 정원과 생활 공간은 그의 예술세계와 자연주의적 삶이 맞닿는 상징적 장소로 지금도 널리 회자되고 있어요. 대규모 농장 속 오두막에서 웰시 코기·앵무새·고양이 등과 전기 없이 직접 만든 밀납 초를 밝히며, 염소젖으로 버터를 만들고, 손수 기른 식재료로 요리하며 생활했죠. 자급자족의 삶을 실천하며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를 아우르는 ‘슬로우 라이프’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는 “우리가 바라는 것은 온전히 마음에 달려 있어요. 난 행복이란 마음에 달렸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하곤 했죠. 남들에겐 조금 불편해 보이는 삶이 그에겐 가장 편안하고 진실한 삶의 방식이었어요. 차를 마시고 빵을 굽고, 꽃을 키우는 평범한 일상을 특별하게 여겼죠. 그의 그림책이 사랑받는 이유도 작은 행복의 미학이 담겨 있기 때문이에요.

자연을 벗 삼아 계절의 흐름에 귀 기울이며 자급자족하는 소박한 삶의 가치. 현대인의 로망을 몸소 실천했던 타샤 튜더의 자연주의적 라이프를 간접 체험해볼 수 있는 전시가 서울 송파구 롯데뮤지엄에서 열려 화제입니다. 아시아 최대 규모, 타샤 튜더 탄생 110주년을 기념해 마련된 ‘스틸, 타샤 튜더: 행복의 아이콘, 타샤 튜더의 삶’에는 그의 원화·수채화·드로잉·수제인형과 초판본 서적 30여 점 등 총 190점이 전시돼 오늘날 현대인에게 필요한 느린 삶의 가치를 되새기는 성찰의 시간을 안겨주죠.
전시장 초입에 설치된 거대한 시계 조형물은 타샤 튜더의 시간 속으로 관람객을 안내하는 상징적 장치입니다. 더불어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우리의 삶 속에 타샤 튜더가 추구한 삶의 방식들이 공존하고 있음을 보여주죠. 이민지 롯데뮤지엄 전시사업팀장은 “거꾸로 돌아가는 시계는 전시의 키 포인트가 될 수 있는 상징적인 아이템이에요. 시계가 거꾸로 돌아가고 있어 삶으로 들어간다는 조형적 상징적 의미이자 슬로우 라이프의 아이콘인 타샤 튜더를 라이프 스타일로 알리기 위해 설치했죠”라고 설명했습니다.

바이오그래피 섹션을 통해 타샤 튜더의 삶을 개괄적으로 살핀 뒤 ‘시대를 초월해 사랑받는 동화작가’ 섹션부터 본격적으로 타샤 튜더가 미국의 국민 작가로 자리매김한 궤적을 쫓습니다. 특히 아시아 최초로 공개되는 30여 권의 초판본과 데뷔작『호박 달빛』55주년 특별판 등 사료적 가치가 높은 자료와 원화들이 대거 출품됐죠. 타샤 튜더는 평생 100여 권의 책을 집필하며 수백만 부의 판매를 기록했고, 최고의 동화작가에게 부여하는 칼데콧 상과 레지나 메달(1971년『코기빌 마을 축제(Corgiville Fair)』)을 받았습니다. 대중과 평단의 사랑을 동시에 받은 그녀는 세대를 넘어 기억되는 전설적인 동화 작가로 자리했죠.
이어 타샤 튜더의 예술적 원천 ‘자연’으로 시선을 확장하게 됩니다. ‘계절의 리듬 속에 피어난 삶’ ‘작은 동물들과의 일상’ 섹션에서는 삶의 중심이자 철학을 담은 매개였던 방대한 식물 스케치, 그리고 평생의 반려였던 코기와 동물들을 그린 원화로 자연과 생명에 대한 애정과 유대감을 전해요. 타샤에게 식물은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일상의 중심이자 철학을 담은 매개였습니다. 계절에 맞춰 씨앗을 뿌리고 꽃을 가꾸며, 자연의 순환 속에서 삶의 리듬을 찾았어요. 눈이 녹으면 라벤더 가지를 치고, 봄에는 미나리아재비와 아네모네가 피었으며, 여름에는 장미와 허브가 무성했죠. 가을에는 사과와 호박을 수확하고, 겨울에는 씨앗을 모아 다음해를 준비했습니다. 정원을 돌보는 일은 그에게 매일의 기록이자 성찰의 시간이었죠. 타샤가 남긴 식물 수집 자료와 스케치를 통해 그가 가꾸었던 정원의 세계를 살펴봅니다. 식물의 성장과 계절의 변화를 따라가며, 일상 속 작은 순간에서 기쁨을 발견했던 그의 태도를 느낄 수 있죠.

타샤의 일상에는 언제나 동물들이 함께했습니다. 정원에는 코기 ‘오윈’과 ‘메건’, 앵무새 ‘페글러’와 ‘한나’, 외눈박이 고양이 ‘미누’, 그리고 헛간에는 닭·염소·거위들이 어울려 살았어요. 이 작은 생명들은 그의 삶을 완성시키는 가족이자 친구였죠. 타샤에게 코기는 특별한 존재였어요. 그의 애정 어린 시선 속에서 코기들은 동화 속 주인공이 됐죠. 일생 동안 집필한 100여 권의 책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책을『코기빌 페어』로 꼽을 만큼 코기를 아꼈어요. 동물들은 자연의 느린 움직임을 알려주는 스승이자, 그와 함께 자연의 이야기를 나누는 동반자였죠. 타샤는 이들과의 교감을 그림책 속에 생동감 있게 담아내며 자연의 아름다움을 따뜻하게 전했습니다. 그가 돌보던 동물들의 사진과 스케치, 동물들을 주인공으로 한 원화와 미디어아트를 통해 생명에 대한 애정과 유대감을 전하죠.

전시의 중반부는 타샤 튜더의 느린 삶의 미학을 구체적인 일상 풍경으로 재현했는데요. ‘식탁 위의 따뜻한 온기’ ‘가족과 함께한 느린 하루’ ‘스스로 만들어가는 기쁨’ 섹션은 타샤 튜더가 손수 일구어낸 의식주 문화를 다룹니다. “부엌에서의 시간이 그녀에게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어요. 오후 4시에 온 가족을 소집해 티타임을 열 정도로 소박한 일상을 중요하게 생각했죠. 그래서 직접 사용하는 가재도구들과 음식 재료들을 그림화해서 배치했어요.”
그의 요리법과 일상을 담은 저서 『타샤의 식탁』 속 소박한 식탁과 작업실을 재현하고, 가족과 함께한 추억이 담긴 삽화와 크리스마스 카드 등 일상의 물건들을 전시했어요. “여러 기념일 중 크리스마스와 밸런타인데이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고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으로 손꼽았다고 해요. 타샤 튜더의 이런 이미지들은 크리스마스 시즌에 백악관에서 크리스마스 카드로 사용되기도 했죠.” 노동이 곧 놀이이자 기쁨이었던 타샤 튜더의 삶은 현대 사회가 잃어버린 자급자족적 삶과 소박한 행복의 가치를 다시금 떠올리게 합니다.

타샤 튜더는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일을 삶의 기쁨으로 여겼죠. 50대 후반, 도서 인세로 구입한 버몬트의 30만 평 대지를 직접 가꾸며 자급자족의 삶을 실천했습니다. 자신이 기른 채소로 요리하고, 염소의 젖으로 버터를 만들며, 양모로 실을 뽑아 옷을 지었죠. 그는 “게으른 손은 악마의 놀이터가 되어요”라고 말하며 늘 무언가를 만들었습니다. 밤이 되면 난롯가에 앉아 친구들에게 선물할 뜨개질 장갑과 양말을 만들고, 천천히 퀼트를 완성했어요. 인형은 타샤가 가장 사랑한 존재 중 하나로, 인형옷을 정교하게 지으며 즐거움을 느꼈고 직접 만든 ‘인형의 집’과 인형 결혼식은 신문 기사로도 소개됐죠. 밀랍 양초 만들기, 천연 염색, 바구니 짜기 등 친구·손주들과 함께한 작업 역시 그녀의 일상이었어요. 무엇인가를 손수 만들어가는 기쁨은 타샤의 삶을 움직이는 원동력이었죠.

이는 2018년 개봉했던 다큐멘터리 영화 ‘타샤 튜더(Tasha Tudor: A Still Water Story)’ 12분 하이라이트 영상으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삶의 철학과 일상을 그녀의 목소리로 들려주고 사계절의 풍경 속에서 스스로 행복을 만들어가던 순간들을 담았어요. 정원을 가꾸며 자급자족의 삶을 실천했던 일상, 직접 만든 인형과 정원, 그리고 가족과 함께 따뜻한 시간을 보내는 모습들은 그가 평생 지켜온 ‘자연 속에서의 단순하지만 풍요로운 삶’을 고스란히 보여주니 놓치지 마세요.
전시의 말미를 장식하는 ‘정원, 타샤의 세계’ 섹션은 관람객이 타샤 튜더의 정원을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했죠죠. 그에게 정원은 삶과 예술을 하나로 잇는 공간이었습니다. 꽃과 나무, 허브와 채소를 돌보며 계절의 변화를 기록했고, 그 속에서 자연과 함께하는 삶의 기쁨을 발견했어요. 정원은 단순한 취미가 아닌, 그의 철학이 실현된 무대이자 작품의 영감의 원천이었죠. 코티지 가드닝의 대표적 사례로 꼽히는 그의 정원을 모티프로 꽃과 향기, 계절의 변화를 공감각적으로 경험할 수 있도록 구현해 타샤 튜더가 평생 실천했던 ‘자연과 함께하는 삶, 그리고 소박한 행복’이라는 메시지를 다시 한번 전합니다.

한 해가 저물어 가는 이 시기, 우리는 흔히 뭔가 이룬 게 없다며 후회하고 아쉬움도 남는다고 말하는데요. 타샤 튜더는 삶은 스스로 아름답게 만들 수 있다고 말하죠. 그에게 행복, 즐거움이란 큰 걸 말하지 않습니다. 전시를 보고 나면 화려한 성공이나 목적 달성보다 작고 조용한 행복이 얼마나 깊은 울림을 줄 수 있는지를 알게 되죠.
‘스틸, 타샤 튜더: 행복의 아이콘, 타샤 튜더의 삶’
기간 2026년 3월 15일(일)까지
장소 서울 송파구 올림픽로 300 롯데월드타워 7층 롯데뮤지엄
관람 시간 오전 10시 30분~오후 7시(입장 마감 오후 6시 30분)
관람료 성인 2만원, 청소년·어린이 1만3000원
글=한은정 기자 han.eunjeong@joongang.co.kr, 사진=롯데문화재단 롯데뮤지엄
![[오늘의 전시] 익숙한 일상 너머 경계 위 세계로의 '이상한 초대장'](https://www.kgnews.co.kr/data/photos/20251252/art_17668422322004_21eca7.jpg)
![어쩌다 그냥, 한 해가 저무네[조용철의 마음풍경]](https://pds.joongang.co.kr/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512/28/64e15edd-603d-473c-99b6-a7315143bd8e.jpg)


![대학의 선생님들, 그리고 조상 덕 본 첫 경험 [왕겅우 회고록 (32)]](https://img.joongang.co.kr/pubimg/share/ja-opengraph-img.p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