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술과 함께 차돌박이나 삼겹살 같은 기름진 부위의 고기 안주를 즐기던 직장인 A씨(55)는 최근 변비와 설사가 계속 반복되자 불안한 예감이 들었다. 과거 건강검진에서 대장내시경을 받을 때도 용종이 발견돼 몇 군데 제거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의사가 대장 용종 중에는 암으로 진행할 수 있는 것도 있으므로 정기적으로 검사를 받으라고 했기 때문에 그는 병원을 찾아 자신의 대장 상태에 관해 상담했다. 대장내시경 검사를 통해 대장암 판정을 받은 그는 “그래도 종양이 더 커지기 전 비교적 빨리 암을 발견한 편”이라고 말했다.
대장암은 국내에서 발생률 증가 추세가 가장 뚜렷한 암종 중 하나다. 가장 최근 통계에선 국내 암종별 발생률에서 2위로 나타났으며, 곧 1위를 차지할 수 있다는 예측이 나올 정도로 흔한 암이 되기도 했다. 2023년 발표된 중앙암등록본부 자료를 보면 대장암은 2021년 기준 3만2751건 발생해 갑상선암(3만5303건)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이 발생한 암이었다. 대장암 위험을 높이는 요인은 가공육·적색육 등의 동물성 지방 과다 섭취를 비롯해 수면 및 신체활동 부족, 비만, 음주, 흡연 등 매우 다양하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남성 환자 비율이 대부분이라는 인식이 퍼져 있지만 실제 남녀 환자 비율이 각각 58.4%, 42.6%일 정도로 여성 환자 규모도 상당한 편이다.
3기도 75% 생존
완치율 높은 편
용종 2㎝ 이상 땐
암세포 발견 확률
45% 달해
40대 이상은
정기검진 필수
다양한 요인이 대장암 발병 위험을 높인다고 알려져 있으나 아직 원인이 명확하게 밝혀진 것은 아니다. 대략 환경적 요인이 70~90%, 유전적 요인은 10~30%가량 작용한다고 추정할 뿐이다. 환경적 요인은 영양섭취나 생활습관 등과 관련된 것들이며, 유전적 요인이 작용해 생기는 대표적인 대장암 유형으로는 가족성 선종성 용종증과 유전성 비용종증 대장암 등이 꼽힌다. 가족성 선종성 용종증은 대장 점막에 수많은 용종이 생기는 유전질환으로 종양을 억제하는 특정 유전자에 변이가 생겨 발생한다. 유전성 비용종증 대장암은 상염색체 우성 증후군으로 분류되는데, 보통 용종 없이 발생한다.
초기 대장암은 증상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장내시경에서 발견되는 용종 역시 대부분은 특별한 증상을 보이지 않으며 또한 모든 용종이 대장암으로 진행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대장 용종 중 선종은 악성종양인 대장암으로 진행할 수 있는데, 용종의 크기가 2㎝ 이상이면 암세포가 발견될 확률이 45%에 이른다고 알려져 있다. 종양의 크기가 커지면 혈변, 복통, 소화장애, 변비, 복부팽만, 잦은 변의, 변이 가늘어지는 증상, 지속된 출혈로 인한 빈혈, 체중 감소 등의 증상이 생기기 시작한다.
초기에는 증상이 없어 발견이 늦어지는 경우가 많지만 그럼에도 완치율은 비교적 높은 편이다. 국내 대장암 5년 생존율은 초기~1기 95~100%, 2기 90~95%, 3기 75%에 이른다. 임대로 순천향대 부천병원 대장항문외과 교수는 “건강검진에서 분변잠혈검사·대장내시경 시행을 통한 조기 발견이 대장암 예방의 핵심”이라며 “대장암은 진단 및 치료가 빠를수록 완치율이 높으므로, 40세 이상이라면 특별한 증상이 없더라도 정기적으로 대장내시경을 시행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대장암은 암이 생기는 부위에 따라 결장암과 직장암으로 나뉜다. 직장암은 항문과 가까운 직장 부위에 발생하기 때문에 암이 발생하면 배변 시 통증이 심한 특징이 있으며, 수술을 할 때도 항문 기능을 살리는 것이 핵심이다. 직장은 대변을 항문으로 배설하기 전 일시적으로 저장하는 역할을 하므로 수술로 항문 기능을 보존하지 못하게 될 경우 복부에 변을 배출하는 통로(장루)를 만들어 배설물이 담기는 주머니를 착용해야 한다.
대장암 중 종양의 크기가 작거나 대장 내벽을 침범한 깊이가 1㎜ 미만이라면 대장내시경을 통해 절제가 가능하다. 하지만 그보다 크기가 크거나 침범 정도가 심하면 암과 암 주변 림프선을 포함한 조직까지 제거하기 위해 수술이 필요하다. 최근에는 복강경에 3D 영상을 접목한 3D복강경, 공간확보 면에서 더욱 보완된 이중관절 복강경 등 다양한 수술법의 발달로 이전까지는 제거하기 어려웠던 암도 완전히 제거하고 환자는 빠르게 회복할 수 있게 됐다. 김진 고려대 안암병원 대장항문외과 교수는 “로봇수술과 3D복강경은 실제 눈으로 볼 때와 같은 거리감으로 수술할 수 있기 때문에 정밀한 수술이 가능하다”며 “특히 직장암은 좁은 골반 내에서 수술을 진행해야 하는데 로봇수술이나 이중관절 복강경을 통해 수술 장비가 접근 가능한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수술 후 재발을 막기 위해 항암치료나 방사선치료를 시행할 수도 있다. 직장암 수술 전 종양의 크기를 줄이거나 주변으로 전이된 곳을 치료할 때도 방사선치료를 시행한다. 전이성 대장암에는 암 성장과 전파를 억제하기 위해 표적·면역치료도 시행한다. 대장암은 재발할 경우 처음 암이 발생했을 때보다 생존율이 낮아지기 때문에 꾸준한 정기 검진과 치료가 중요하다. 수술 후 3년 동안은 3~6개월에 한 번씩 복부와 흉부에 컴퓨터단층촬영(CT촬영) 등의 검사를 받아야 한다.
대장암을 예방하기 위해선 생활습관 개선이 필요하다. 햄이나 소시지를 비롯한 가공육과 소·돼지고기 등 붉은색 고기를 과도하게 섭취하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이 좋다. 고기를 먹을 땐 채소를 곁들이는 등 식이섬유를 풍부하게 섭취하는 것도 도움이 되며 까맣게 될 정도로 탄 부분이 있다면 제거하고 먹는 것이 바람직하다. 스트레스와 지나친 공복은 소화액 분비를 자극해 장벽을 손상할 수 있으므로 규칙적인 식사를 하면서 자신에게 잘 맞는 스트레스 해소법을 찾으면 도움이 된다. 또 주 150분 이상 중간 이상의 강도로 유산소 운동을 꾸준히 하고 신체활동을 늘리는 한편 매일 수면을 일정한 시간 동안 충분히 취하면 면역체계를 강화해 대장암 예방에 좋다. 김진 교수는 “고칼로리 음식은 체중 증가와 비만을 유발해 대장암 발병 위험을 높일 수 있다”며 “평소 섬유질이 풍부한 음식을 섭취하면 장 건강을 개선하고 발암물질에 노출되는 시간을 줄여 대장암 위험을 낮출 수 있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