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에 시작한 한 사극 드라마 속 남자 주인공인 세자는 아내가 죽은 줄 알고 있었지만, 그 아내는 멀쩡히 살아 있었다. 단, 기억을 잃은 채. 흥미로웠던 점은 원래 차분하고 품위 있는 성격이었던 아내가 기억과 함께 성격도 바뀌어 너스레를 잘 떤다는 것이었다. 기억을 잃으면 성격도 바뀌나?
우선 기억 상실증을 좀 구분할 필요가 있겠다. 기억 상실증은 뇌 손상 때문에 발생할 수 있다. 큰 사고가 났거나, 뇌 질환이 발병해서 뇌가 물리적으로 손상되어 기억이 소실된다. 이땐 성격이 바뀔 수 있다. 인간의 마음이란 결국 뇌 작용으로 작동하는 것. 실제 과거에 한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폭발물 사고로 뇌의 일부분이 손상된 노동자가 천우신조로 목숨은 건졌으나 온순했던 성격이 폭력적으로 변했다고 보고된 사례도 있다. 단지 이 경우에는 기억 상실증이 성격 변화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보기는 어렵고, 뇌 손상의 결과가 기억 상실증과 함께 성격 변화로 나타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와 달리, 뇌에 물리적 손상 없이도 심리적인 문제 때문에 기억 상실증이 발생하기도 한다. 극심한 스트레스나 심리적 외상 등을 마주할 때 인간의 마음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발동하는 긴급 처방으로 기억의 일부를 억압한다고 할 수 있겠다. 이때에는 성격이 크게 변화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하다. 성격은 학습과 경험의 영향을 받기도 하지만, 동시에 유전의 영향도 꽤 커서, 기억, 그것도 자신과 관련된 기억만이 사라지는 정도로 크게 변화되지는 않는다. 단, 주어진 상황에서 가장 적절한 행동을 선택하는 과정에서는 학습의 효과가 크다. 그래서 동일한 성격이어도 행동으로 표현되는 방식이 달라질 수 있고, 이 때문에 주변인들은 성격이 변화했다고 느낄 수도 있다.
우리는 기억을 잃을 수 있어도, 성격이라는 깊은 뿌리는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드라마는 극적이지만, 인간의 마음은 그보다 훨씬 단단하다.
최훈 한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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