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태명의 고전 성독] 남명 조식과 사명당 유정의 만남

2024-11-01

조임도(趙任道,1585~1664)라는 선비가 조식의 문집 <남명집>을 읽고 감동받아 시를 썼다.

남명집을 읽으며// 세 조정에서 불렀고 일곱 번 벼슬 내렸지만/ 딱 한 번 임금께 절하고 푸른 산에 누웠다네./ 남명은 아무 한 일이 없다고 말하지 마라/ 맑은 바람 영원히 우리나라에 떨치네.

讀南冥集(독남명집)이라// 三朝徵士七除官(삼조징사칠제관)에도/ 一拜君門臥碧山(일배군문와벽산)을/ 莫道南冥無事業(막도남명무사업)하라/ 淸風百世振東韓(청풍백세진동한)을

남명 조식(曺植,1501~1572)이 어떤 시를 썼는지 알아보다가 두 시를 찾았다. 하나는 권력자가 선비를 푸대접하는 세태를 호피에 빗대어 개탄한 시고, 하나는 사명당 유정(1544~1610)과 만나 헤어지는 증별시(贈別詩)다. 남명이 유정에게 인재를 기르라는 간절한 부탁을 시에 담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연히 읊다// 사람이 바른 선비 좋아하기를/ 호피 좋아하는 것과 비슷해요./ 살아있을 때는 못 죽여서 안달이다가/ 죽이고 나서 호피 무늬 아름답다고 칭송하네.

偶吟(우음)이라// 人之愛正士(인지애정사)를/ 好虎皮相似(호호피상사)라/ 生則欲殺之(생즉욕살지)라가/ 死後方稱美(사후방칭미)를

여기서 사람은 왕과 같은 최고 권력자를 말한다. 겉으로 바른 선비를 추켜세우는 거동을 보이지만 속으로는 간신배를 가까이 두고 바른 선비를 누르고 배척한다. 나라를 위해 큰일을 할 바른 선비가 나오지 못하는 까닭이다.

일흔을 바라보는 남명과 이제 갓 스물을 넘긴 유정이 단속사에서 만났다. 나이를 잊은 忘年之友(망년지우)가 되어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는 대화를 나누었으리라. 헤어지면서 남명은 유정에게 이별 시를 써주었다. 인재가 되어라, 인재를 기르라는 말은 없어도 시 속에 그런 뜻이 매화향처럼 은근히 배어있다.

산 사람 유정과 이별하며// 구유에, 연못에, 돌 위에 꽃잎이 떨어져/ 옛 절 누대에 봄은 깊어라./ 헤어지면서부터 부디 기억하고 명심하라/ 정당 매화의 푸른 열매를

贈山人惟政(증산인유정)이라// 花落槽淵石(화락조연석)이요/ 春深古寺臺(춘심고사대)를/ 別時勤記取(별시근기취)하라/ 靑子政堂梅(청자정당매)를

政堂梅(정당매)는 이 매화를 심은 사람의 관직명을 따서 붙인 이름이다. 정당은 현실 정치의 조정이기도 하고 사찰의 수행처를 나타내기도 한다. 정당의 푸른 매실은 나라를 이끌어갈 귀한 인재가 아닐까? 남명이 돌아가신 뒤 20년 만에 임진왜란이 터졌다. 임란이 발발하자 유정은 숨은 인재를 모아 의병을 일으켜 나라를 지켰다. 뛰어난 능력으로 전후 뒤처리도 도맡아서 했다. 남명이 유정과 헤어지며 써준 시 한 편에 깊은 뜻이 들어있는 것이 아닌가? 시국이 어수선하다. 전국 방방곡곡의 새로운 남명과 유정이 만나서 먼 앞날을 내다보며 나라를 바로 세울 지혜를 나누어야 하리라.

백태명 울산학음모임 성독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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