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쟁을 멈추고 굶주린 자들을 도우라’는 마지막 부활절 메시지를 남기고 세상을 떠난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종 전 작성한 언론 기고문에서도 ‘두 국가 해법’에 대한 지지를 거듭 피력하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분쟁을 끝낼 것을 호소했다.
22일(현지시간) 교황 사후에 공개된 영국 잡지 팔러먼트(The Parliament Magazine)에 실린 기고문 ‘팔레스타인·이스라엘의 유혈 사태는 끝나야 한다’에서 교황은 “평화엔 전쟁보다 더 큰 용기가 필요하다”며 분쟁 종식을 역설했다.
교황은 기독교인과 유대교인, 무슬림 모두에게 신성한 땅인 예루살렘 성지가 “잔혹한 전쟁의 현장”이 된 것을 안타까워하며 “폭력과 보복의 악순환”을 끊어낼 것을 촉구했다.
교황은 “또 다른 인도주의적 재앙에 직면해 예루살렘과 중동 전체의 평화를 다시 한 번 간절하게 호소한다”면서, 평화를 호소하는 것조차 때로는 “적에 대한 관대함”으로 해석되는데 대해 안타까움을 표했다.
그럼에도 그는 “허상 뿐인 전쟁보다 평화를 이루는 것이 훨씬 더 큰 용기”라며 “전쟁은 복잡한 사회정치적 문제에 대한 단순한 대답일 뿐, 결코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교황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각각 주권국가로서 공존하는 ‘두 국가 해법’에 대한 “확고한 지지”의 뜻도 재확인했다. 교황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평화와 안보, 상호 인정 속에 살아가는 두 국가 해법을 확고히 지지한다”며 “두 민족 모두 그 땅에서 깊은 역사적, 문화적, 종교적 뿌리를 두고 있기에 평화롭게 살 권리가 있으며, 안보는 결코 상대방을 지배하거나 말살, 굴욕, 배제함으로써 달성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군사적 접근이나 일방주의적 결정은 겉보기로는 일시적 승리를 가져올 수 있지만, 결코 평화를 가져오진 못한다”며 “오히려 상처를 깊숙이 파고 들고 증오를 심화시키며 폭력의 악순환을 고착시킨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두 민족과 국제사회를 향해 “하느님과 미래 세대는 우리가 얼마나 많은 적을 물리쳤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생명을 구했는가로 우리를 평가할 것”이라며 “칼이 쟁기로 바뀌고, 아이들이 사이렌 소리가 아닌 평화의 노래에 깨어나고, 성지가 진정으로 신성해지는 그 날이 곧 오기를 바란다”며 글을 마쳤다.
이스라엘군의 무차별 살상을 비판하며 여러 차례 가자지구 전쟁 중단을 촉구해온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노골적으로 반감을 표시해온 이스라엘은 공식적인 추모 메시지를 내지 않았다. 오히려 교황 선종 후 이스라엘 정부 공식 소셜미디어 계정에 올라온 추모 글을 삭제하는 등 거듭 ‘평화에 대한 호소’를 ‘적에 대한 관대함’으로 치부하는 행태를 보였다.
이날 로이터통신 보도에 따르면 이스라엘 정부의 공식 엑스(X) 계정에는 지난 21일 프란치스코 교황 선종 뒤 그를 추모하는 짧은 게시물이 올라 왔으나 곧 삭제됐다. 삭제된 게시물에는 ‘프란치스코 교황, 안식하소서. 그에 대한 기억이 축복이 되게 하소서’라는 글과 함께 2014년 교황이 예루살렘 ‘통곡의 벽’에서 기도하는 사진이 담겨 있었다.
예루살렘포스트는 이스라엘 외교부 당국자들을 인용해 교황이 과거 이스라엘의 전쟁을 비판하는 발언을 여러 차례 한 점 등을 들며 소셜미디어 추모글 게시가 “실수”라고 전했다. 전세계 다른 정치 지도자들과 달리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교황 선종과 관련해 아무런 입장을 내지 않았고, 정부 차원의 공식 추모 메시지도 없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선종 하루 전인 20일 부활절 메시지를 통해 가자지구 전쟁 중단을 호소하는 등 이스라엘의 전쟁을 지속적으로 비판해 왔다. 지난해 11월에는 이스라엘의 군사작전이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집단학살(제노사이드)에 해당하는지 국제사회가 조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전쟁이 장기화되며 가자지구의 인도주의적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자 교황은 지난 1월 이를 “부끄러운 일”이라고 거듭 비판했는데, 이에 로마의 유대교 랍비 지도자는 교황을 향해 “선택적 분노”를 하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2년 재위 기간 내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에서 어느 한 쪽의 정치적 입장을 옹호하는 것을 경계하면서도, ‘인간의 고통 앞에 중립은 없다’는 소신에 따라 이스라엘의 군사 작전과 무차별 살상에는 단호하게 비판의 목소리를 내왔다.
교황은 2014년 유대교 최대 성지인 예루살렘 통곡의 벽과 요르단강 서안지구 분리장벽을 모두 찾아 기도했다. 2023년 10월 가자지구 전쟁이 발발한 이후에는 반유대주의의 득세를 규탄하면서도 매일 저녁 가자지구 천주교 성당에 전화를 걸어 이들의 고난을 위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