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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주’는 주말에 볼 만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콘텐츠를 추천하는 코너입니다. 매주 토요일 오전 찾아옵니다.
‘넷플릭스에 <핫 스팟> 봤어? 아니요, 재밌나요? 호텔에서 일하는 주인공 동료가 외계인이라 여러 능력이 있는데, 능력을 쓰고 나면 몸 어딘가가 아파. 그런데 심각한 건 아니고, 비염에 걸린다든가 하는 식이야.’
별의별 소재의 드라마가 다 있는 넷플릭스지만 줄거리를 잠깐 듣고 ‘쿡’ 웃음이 나오는 이야기는 드뭅니다. 제겐 회사 선배가 추천한 일본 드라마 <핫 스팟>이 그랬어요.
그날 퇴근 후 설거지를 시작하면서 이어폰을 끼고 <핫 스팟>을 틀었습니다. 그리고 한 15분쯤 보다가 중단했어요. 다른 OTT 시리즈를 보면서 설거지를 마친 뒤, 오랜만에 차를 한 잔 끓였습니다. 찻잔을 들고 집에서 가장 편한 의자에 앉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다시 <핫 스팟>을 재생했습니다. OTT 소비량이 많은 저는 웬만한 콘텐츠들은 ‘딴짓’을 하면서 볼 때가 많습니다. 틀어놓고 다른 일을 하다 보면 놓치는 장면도 있지만, 딱히 아쉽지 않아요. <핫 스팟>은 오랜만에 그러고 싶지 않은 콘텐츠였습니다. 초반부만 봤는데도 차분하게 앉아 집중해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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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 스팟>의 주인공은 후지산이 보이는 작은 호텔의 호텔리어인 싱글맘 엔도 키요미입니다. 키요미의 동료 중에는 타카하시 코오스케라는 사람이 있는데, 사실 그는 외계인입니다.
타카하시는 자전거를 타고 퇴근하던 길에 차에 치일 뻔한 키요미를 구해줍니다. 외계인이라 힘이 세거든요. 눈 깜짝할 새 키요미를 자전거째 들어 다른 곳으로 옮깁니다. 타카하시는 키요미에게 ‘내가 외계인이란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합니다. 솔직히 누가 봐도 지키기 힘든 비밀 아닌가요? 키요미는 친구인 하즈키, 미나미에게 다 말해버려요. 친구들은 타카하시가 ‘외계인’이 아니라 ‘미친 지구인’이 아닐까 의심합니다. 키요미는 그가 진짜 외계인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타카하시를 설득해 친구들과의 만남을 주선하고, 그렇게 묘한 ‘4명 모임’이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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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은 타카하시에게 외계인의 비상한 능력을 이용해 ‘학교 천장에 끼어버린 배구공을 빼달라’ 거나 ‘휴대폰에 공기가 들어가지 않게 필름을 붙여달라’고 부탁합니다. 전형적인 중년의 일본 남성처럼 생긴 타카하시는 ‘그런 것까지 해달라는 건 너무 심하잖아’라고 투덜투덜하면서도 결국은 다 해줍니다. 츤데레 외계인이에요.
매 편이 아주 잘 짜인 연극 같은 드라마입니다. 대사를 잘 썼습니다. 사실 대단한 사건을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것은 쉽습니다. 어려운 것은 어제와 같은 오늘, 아마 내일도 비슷할 일상을 특별하게 느껴지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아침에 출근하다 넘어졌는데 5만원을 주웠다’와 ‘아침에 밥 대신 빵을 먹고 출근했다’ 중 누가 봐도 흥미로운 사건은 전자이지만, <핫 스팟>은 후자를 가지고 전자보다 나은 이야기를 만들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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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요미, 하즈키, 미나미의 수다 장면은 드라마의 최대 매력입니다. 특히 셋이 편의점에서 사 온 과자를 까먹으며 차 안에서 긴 수다를 떠는 신(2화)은 정말 훌륭합니다. 셋의 대화는 ‘목적을 향해 달려가는’ 드라마 속 인위적인 대화가 아니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진짜 친구들 간 대화 같습니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저렇게 악의 없고 친밀한 대화를 나눠 본 기억이 있죠.
화려한 그림, 극적인 사건 없이 대사로만 45분짜리 극을 지루함 없이 이끌어가는 작가는 <브러시 업 라이프>를 쓴 바카리즈무입니다. 코미디언 출신인 그는 10여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각본을 쓰고 있다고 합니다. 저는 여성들 간 소소한 대화를 이렇게 리얼하게 쓴 사람이 남성이라는 사실에 약간 놀랐습니다.
착각 지수 ★★★★★ 언젠가 나도 저 넷 사이에 끼어 있었던 것 같은 느낌
미소 지수 ★★★★★ 보다 보면 나도 모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