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소벤처기업부가 이달 3일 청소년들에게 기업가정신을 심어주기 위해 ‘청소년 기업가정신’ 교과서를 발간했다. 교과서 이름에 기업가정신이 붙은 것은 국내 처음이다. 올해부터 고교학점제가 본격 시행되면서 기업가정신 교과도 학점 인정이 가능한 정규 과목으로 채택할 수 있게 된 덕분이다. 교과서는 기업가정신의 이해, 문제 발견과 정의, 창의적 문제 해결, 기업가정신 디자인, 세상을 향한 도전 등 5가지 영역으로 구성됐다. 경기도 삼괴고등학교는 3월부터 이 교과서를 채택해 활용하고 있다. 중기부는 내년부터 교과서 채택을 전국적으로 확대해나간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를 위해 창업진흥원과 협력해 우선 대상 학교 360곳에 교과서를 무료로 배포할 예정이다.
그동안 우리나라에는 청소년의 기업가정신 함양을 위한 정규 교과목이 없었다. 경제·사회 교과서에 실린 기업가정신 관련 서술은 미흡한 수준이었다. 국내 기업과 기업인의 성공 스토리를 찾아볼 수 없었고, 스티브 잡스, 일론 머스크 등 해외 기업인들에 대한 위인전 수준의 소개가 있었을 뿐이었다. 이러다 보니 초중고 학생은 물론 2030세대의 기업가정신에 대한 인식은 매우 낮은 편이다. 2023년 중기부가 초중고 학생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기업가정신에 대해 ‘전혀 모른다’고 답한 학생 비율이 49.5%로 절반에 육박했다. 지난해 한국경제인협회가 실시한 국민 인식 조사를 보더라도 자신의 기업가정신이 높다는 응답 비율이 20대 38%, 30대 41%에 그쳤다. 한창 성취 동기가 높고 의지와 투지가 빛날 시기인 2030세대의 기업가정신이 저조한 것은 우려스러운 현상이다.
미국·유럽·일본의 교과서는 기업인들을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미국의 3대 출판사인 맥그로힐이 발간한 ‘미국인의 역사’는 19세기 이후 미국 대표 기업인들에 대한 내용이 사진과 함께 자세히 기술돼 있다. ‘산업 부흥기’장에는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를 비롯해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을 세운 존 피어폰트 모건, ‘석유왕’ 존 록펠러 등이 사업을 어떻게 시작했고 부흥시켰는지 등이 소개돼 있다. 이 교과서는 “기업인들이 불굴의 기업가정신과 독창적 아이디어, 추진력 등으로 각 분야 산업을 일으켜 강대국 기반을 다졌다”면서 “독점 등의 문제로 경제적·사회적 문제도 일으켰다”며 기업인들의 공과(功過)를 함께 다루고 있다.
일본 도쿄법령출판이 펴낸 고등학생 대상 ‘비즈니스·매니지먼트’ 교과서에는 ‘시부사와 에이이치의 이념과 기업의 발전’ ‘이와사키 야타로의 이념과 기업의 발전’ ‘메이지 시대를 대표하는 두 명의 경영’ 등 기업 및 기업인 관련 스토리가 길게 서술돼 있다. ‘일본 자본주의의 아버지’라고도 하는 시부사와 에이이치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까지 벤처 투자자로서 기업을 500곳이나 세운 인물이다.
유럽의 선진국들은 학령별 기업가정신 교육 과제를 설정해 시행하고 있다. 영국의 경우 일선 학교의 90% 이상이 기업가 교육 수업을 하고 있다. 스테판 테일 전 뉴스위크 에디터는 “국가 경쟁력 강화는 교실에서부터 이뤄져야 한다”면서 “많은 나라에서 지도자들이 개혁을 외치지만 속도가 더딘 이유는 반(反)기업 내용을 담은 교과서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기업가정신은 나라의 번영과 경제성장, 개인의 꿈과 포부 등을 실현하는 원동력이다. 미국의 이론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는 기업가정신을 ‘새로운 사업에서 생길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하고 어려운 환경을 헤치며 기업을 키우려는 뚜렷한 의지’라고 정의했다. 미국 경영학자인 피터 드러커도 ‘위험을 무릅쓰고 포착한 기회를 사업화하려는 모험과 도전의 정신, 기업가정신만이 경제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핵심 요소’라고 했다.
지금처럼 글로벌 경제·기술 패권 전쟁이 격화하는 시대에는 도전과 혁신의 기업가정신을 가져야 살아남을 수 있다. 국가 미래를 좌우하는 첨단산업 분야에서 경쟁력이 떨어지고, 우수 인재들이 의대만 바라보는 우리의 현실은 기업가정신 교육의 부재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기업가정신을 기를 수 있는 교과목이 학교 현장에 뿌리내려 미래 세대의 도전 정신을 자극하는 촉매제가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