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칼럼] M치과, 쾌유 기원을 그릇에 담다

2024-12-30

당신의 행복은

무엇이 당신의 영혼을

노래하게 하는 가에 따라

결정된다.

-낸시 설리번-

살아가면서 하기 싫은 일이 여럿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병원 가는 일이다. 어지간한 통증과 불편이 있어도 견딜 만큼 견디다가 더 버틸 수 없을 지경이 되어야만 발걸음을 옮기는 곳이 병원이었다. 최근에는 내가 달라지고 있다. 먼저 지금까지 나를 지탱시켜준 내 몸의 기관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현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문제가 생기면 혼자 판단하지 않고 인생 선배들에게 조언을 청하고 귀 기울여 듣는다.

'병이 생기면 여기저기 소문을 내어야 빨리 낫는다'는 어머니 말씀을 되새기 산다. 어느 날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다들 치아관리는 어떻게 하세요?' 질문을 던졌다. 나만 치아에 문제가 있는 줄 알았는데 한 사람도 빠짐없이 한마디씩 했다. 썩은 이 몇 개를 덮어씌운 건 기본이고, 더러는 임플란트로 교체했고, 치료가 겁나고 무서워서 엉망이지만 미루고 있다는 분도 있었다. 그중 한 분이 좋은 치과를 소개하겠다고 했다. 편하고 친절하고 전혀 겁내지 않아도 된다는 말에 귀가 솔깃해지는 병원이었다.

실은 내 입속 어금니 자리에는 몇 년째 철탑 한 기둥이 버티고 있었다. 그 철탑은 철거할 수도, 보수할 수도 없는 내 능력 밖의 일이기에 나는 그 철탑을 '나의 에펠탑'이라고 명명하곤 했다. 인품이 훌륭하고 글솜씨로도 명망이 높았던 나의 치과주치의는 몇 해 전, 내 입속 썩은 어금니를 드러내는 일을 하셨는데, 철탑까지 세워놓고 '자리 잘 잡으려면 6개월 정도 견뎌야 된다'는 말씀만 남기고 뵌 적이 없다. 이승이 아닌 먼 곳으로 떠나셨기에 나는 입속만 생각하면 혼자 중얼거렸다. '내 입속에는 에펠탑이 있고, 마르지 않는 세느강이 흐르고 있다'고 위로하며 견뎠다.

얼마 전부터는 에펠탑 반대편 어금니에 통증이 찾아왔다. 처음에는 시린듯하더니 드문드문 통증이 오고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정도가 돼서야 볼을 손으로 감싼 채 병원으로 갔다. 지인들이 소개한 치과병원이다. 창밖으로 파란 하늘이 보이고, 오가는 차량과 사람들의 움직임이 생생한 거리의 풍경이 보이는 의자에 앉는 순간 편안히 두 눈이 감겼다. 나는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통증이 심했다. '어서 오세요' 원장선생님의 목소리가 명쾌했다. 선생님은 내 입속 에펠탑에 대해 묻지도 않았지만, 이미 대책까지 세워진 듯 분명한 어투가 들렸다.

'뿌리까지 상해서 발치해야겠어요', '아프면 왼손 드세요', '다 되어갑니다', '조금만 참아주세요', '아유 잘 참으시네요', '덕분에 수술 잘 마쳤습니다', '하루 이틀 통증이 심할 거에요', '견딜 수 없으면 내원하시구요', '약 처방 드릴게요', '빠뜨리지 말고 잘 챙겨 드셔야 돼요', '수고 많으셨습니다' 수술 치료를 받으면서 명쾌한 목소리는 큰 위로가 되고, 정신을 치유한다는 것을 체득하는 경험이었다.

수납창구에 있던 간호사는 주의사항을 다시 전달하며 묵직한 봉투를 내밀어 손에 들려주었다. "따뜻한 죽이에요. 원장님께서 바로 약 드셔야 된다고 했어요." 간호사의 말을 흘려듣고 '죽? 웬 죽?' 중얼중얼거리며, 휘청휘청 걸어서 차에 올라앉는 순간 병원에서 들은 말들이 뇌리에서 살아났다. 서서히 마취가 풀리는지 통증이 화악 온몸을 엄습했다. 저절로 내 손은 죽그릇을 더듬었고, 뚜껑을 열고 숟가락으로 뜬 죽을 먹으며 또 다른 손은 약봉지를 찾고 있었다. 그렇게 맛있는 죽은 처음이었다. 따뜻한 죽에 얹어 약을 먹었더니 조금씩 통증이 가라앉았다. 저녁까지 죽 외엔 아무 것도 먹을 수도 넘길 수도 없었다. 그제야 환자의 쾌유를 기원하며 준비한 죽의 힘과 정성이 새록새록 새겨졌다.

잠시도 쉬지 않고 일을 하고, 명쾌하게 말을 하고, 상냥하게 환자를 대하는 시지 M치과 직원들을 보면서 삶이란 자기만의 가치를 믿으며 나아가는 항해와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돈'도 중요하지만, 삶에서 더 중요한 것은 자기가 선 자리에서 최선의 방법으로 의미를 실천하며 창출하는 것이리라.

'나'의 가치관으로 꽉 찬, 한 세계를 만들어가면서, 주변까지 환하고 따뜻한 에너지로 가득 차게 하는 모든 분들의 존재로 하여 세상은 더욱 아름다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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