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하는 수녀

2025-04-02

그녀를 매일 묵상하게 하는 것은 ‘밥’.

그녀를 매일 실손하게(버리고 잃어버리게) 해, 허공에 둥둥 떠 있는 두 발을 땅으로 끌어내리는 최고의 장소는 ‘부엌’.

월화수목금토일, 아침점심저녁. 그녀는 부엌데기가 돼 종일 부엌에 깃들여 살며 밥을 한다.

밥을 하는 내내 소란스럽게 돌아가던 환풍기가 꺼지고, 고요하고 차분해진 가운데 삼백 사람이 먹을 한 끼를 내보내며 그녀는 새삼스레 감탄한다. “오늘도 기적이 탄생했네!” 밥, 국, 반찬. 한 끼가 완성돼서 나가는 걸 보고 있으면 그녀는 정말 기적이 탄생한 것 같다.

매일 세 끼의 기적을, 부엌에서 체험하는 그녀. 25년을 부엌에서 밥하는 수녀로 살았다. ‘밥은 생명’ ‘누군가의 입에 밥을 넣어주는 것은 생명을 넣어주는 것’이라는 생각은 10여년 전부터 하기 시작했다. 그전에는 밥하는 일을, 일로 대했다.

밥이 있어야 그다음이 있다. 달리 말하자면, 그다음이 있으려면 밥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밥을 함부로 대한다. 밥 먹는 행위 또한. 밥을 하고, 밥을 차리고, 밥을 먹는 행위가 얼마나 거룩한 행위인데 ‘땜빵’으로 때우곤 한다. ‘밥 안 먹으면 죽는데, 웃긴다.’

“좋은 말씀 속에 있으면 좋아요. 하지만 다 내 것이 되진 않아요. 몸을 움직이면서 얻는 것들은 다 내 것이 돼요. 머릿속에서는 실수가 없지만 몸은 실수투성이예요. 음식이 타고, 짜지고, 뜨거운 물에 살을 데고. 좋은 말을 하는 사람들과 어울려서 지내다 보면 발이 허공을 떠가고 있어요. 부엌으로 가면 떨어져요.”

그녀는 오늘도 부름을 받은 부엌으로 달려가 밥을 하며 ‘하느님이 날 부엌으로 불러 땅에 떨어뜨리는구나. 땅에 발붙이게 하는구나!’

그녀는 ‘밥에 최대한 선한 마음을 담아 내놓고 싶다. 밥을 먹는 사람들이 알든, 모르든.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음식에 선한 마음을 듬뿍 담아서’. 그래서 그녀는 자신과 ‘함께 밥을 하는 이들이 기쁘게, 정성을 다해 밥을 할 수 있게’ 부엌에서도, 부엌 밖에서도 무던히 묵상하고 기도하고, 탓을 나로 돌리며 자신이 썩어 문드러져 없어질 때까지 성찰한다.

밥하는 수녀로 살게 될 줄 몰랐다. 수녀가 돼 수녀원에 들어가면 기도 생활을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밥하는 수녀가 돼 미사를 드리다가도 밥을 하러 부엌으로 간다. ‘밥하러 안 나가고 버텨볼까’ 하다가도 결국은 밥을 하러 부엌으로 간다. 영양사 자격증이 있다 보니 30세 때쯤 밥하는 소임이 주어졌고, 오늘까지 밥하는 수녀로 살고 있다.

“자기 자신에게 한 달에 한 번이라도 꼭 손수 밥을 해서 먹여야 해요. 라면을 끓여 먹이더라도. 남이 해주는 밥과 내가 해먹는 밥은 차원이 달라요. 내 입에 맞게 내가 맞춘 간, 그 간이 위로가 돼요. 남이 한 밥은 백프로 맘에 들 수 없어요. 내가 한 밥은 내가 했으니까, 툴툴거릴 수 없으니까, 아무 말 없이 먹어요. 남이 한 밥에 대해서는 쉽게 말하게 돼요. 밥이 질게 됐네, 되게 됐네. 국이 짜네, 싱겁네. 밥을 해 먹으면, 한 끼 밥을 하는데 얼마나 많은 수고로움이 드는지 깨닫게 돼요.”

한 끼를 제대로 내놓을 수 있을까 하는 때가 자주 있다. 여럿이, 많은 사람이 먹을 밥을 함께하다 보니 그렇다. 그녀 그리고 그녀와 함께 밥을 하는 사람들은 ‘밥하는 오케스트라’. 말하자면 그녀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인 셈. 채소 씻는 사람, 써는 사람, 국 끓이는 사람, 나물 무치는 사람, 밥 짓는 사람…… 모두 박자가 맞아야 한다. 하모니가 제대로 이뤄져야 한 끼 ‘실황인 밥’이 근사하게 탄생한다.

○○여고에 밥하는 수녀로 있을 때다. 소녀가 “엄마” 하면서 뛰어왔다. 누구 보고 ‘엄마’ 하면서 뛰어오는 걸까. 소녀는 마저 뛰어와 “엄마” 하며 그녀를 안아주었다.

“내가 왜 네 엄마야?”

“밥해주면 엄마예요. 그리고 수녀님이 우리 엄마보다 밥을 더 많이 해주시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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