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이야기] 입안 가득 쌉쌀한 풍미 ‘냉이’…추운 겨울 견딘 만큼 더 깊은 맛

2025-04-01

냉이를 맛봐야 봄이라는 걸 실감한다. 하지만 막상 봄나물의 대표 주자인 냉이의 미묘한 맛과 향을 제대로 묘사하기는 매우 어렵다. 냄새를 묘사하는 어휘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냄새의 심리학에 대한 연구로 유명한 인지신경과학자 레이첼 허즈는 자신의 책 ‘욕망을 부르는 향기’에서 “이제까지의 연구를 보면 어떤 언어든 후각 경험에만 한정해서 사용되는 말은 다른 감각 경험에 한정되는 말보다 훨씬 적다”고 지적한다. 냉이는 이 설명에 딱 들어맞는 나물이다. 냉이를 먹고 난 후각 경험을 설명하다보면 답답함이 느껴지는 데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냉이는 다른 겨자과 식물과 마찬가지로 황화합물 특유의 쏘는 듯한 자극적인 향을 품고 있다. 하지만 그 정도 표현으로는 냉이의 향기를 제대로 묘사할 수 없다. 된장을 풀어 끓여낸 냉잇국을 한 숟가락 입에 넣으면, 겨울의 끝과 봄의 시작이 만나는 날 이른 아침 들판에서 촉촉하게 젖은 흙냄새를 맡으며 서 있는 듯한 상상에 빠진다. 쌉쌀한데 달고 풀향기를 내는 냉이의 풍미가 입안에 퍼지며 후각 신경을 통해 봄이 왔다는 사실을 알린다.

냉이는 전세계에 널리 자라는 식물이다. 원산지인 유럽에서 중국을 거쳐 국내로 들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산이나 들에서 자생하기도 하고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하기도 한다. 요즘에는 냉이맛으로 봄을 느끼고 싶은 도시인을 위해 재배되는 냉이가 더 많다. 비닐하우스에서 재배된 냉이는 향기가 조금 덜해서 아쉬울 때가 있다. 여기에는 과학적 이유가 존재한다. 본래 냉이 특유의 향을 내는 식물 화합물은 2차 대사물질 또는 피토케미컬이라고 불리는 것들이다. 2차 대사물질은 그 자체로는 식물의 생존에 필수적이지 않은 성분들이다. 이들 물질은 주로 척박한 환경이나 해충에 맞서 싸우는 역할을 한다. 온실 속에서 비료의 도움으로 자란 냉이는 거친 환경과 맞서 싸울 이유가 없으니 아무래도 노지에서 자란 냉이보다 향이 덜할 수 있다. 추운 겨울을 견뎌낸 냉이의 향이 더 진하게 느껴지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냉이는 맛뿐만 아니라 영양가 면에서도 뛰어나다. 냉이는 다른 산채류에 비해 단백질 함량이 높으며 칼슘·칼륨·마그네슘과 같은 미네랄, 비타민B·비타민C·엽산도 풍부한 편이다. 비타민A의 전구체인 베타카로틴도 많이 들어 있다.

2021년 한 연구에 따르면 국내에서 많이 소비되는 봄나물 8종(곰취·냉이·달래·두릅·봄동·쑥·원추리·유채) 중 냉이가 항산화물질인 폴리페놀 함량이 제일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다른 항산화물질인 플라보노이드 함량은 유채 다음으로 높다.

냉이에는 다른 겨자과 식물처럼 설포라판이라는 항암 활성물질이 많이 들어 있기도 하다. 냉이를 살짝 다듬거나 단시간 익히는 과정에서 설포라판 함량이 높아진다. 냉이된장국을 끓일 때 마지막에 냉이를 넣고 살짝 더 끓여내는 요리법은 맛뿐만 아니라 열에 취약한 설포라판의 손실을 줄이는 면에서도 나은 선택이다.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있는 맥줏집 타임머신에서는 봄철 가볍게 손질한 냉이를 바삭하게 튀겨낸 냉이튀김을 맛볼 수 있다. 단맛·감칠맛과 함께 씹을 때마다 도드라지는 냉이의 향을 느끼면서 맥주 한 잔을 들이켜면 아직 서늘한 밤공기가 묘한 매력으로 다가온다. 비로소 봄이다.

정재훈 약사·푸드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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