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만6000원짜리 불족 15개 폐기
강원 춘천시에서 족발집을 운영하는 배모(58)씨는 지난 23일 오전 11시30분쯤 자신을 박○○ 중위라고 밝힌 이로부터 “25일 오후 5시까지 불족(양념족발) 특대(4만6000원) 15개를 포장해달라”는 전화를 받았다.
배씨는 평소에도 종종 대량 주문이 있었기 때문에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고 음식을 준비했다. 조금 찜찜했던 건 음식을 준비하던 중 박 중위가 보낸 카카오톡 메시지였다. 당시 박 중위는 명함 사진 한 장과 함께 ‘(이 업체에 전화를 걸어) 즉석군용식량(MRE) 50박스 당일 배송 가능한지, 가격은 얼마인지 물어봐 주시면 감사하겠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배씨는 박 중위 요청으로 명함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었지만, 연결이 되지 않았다. 이에 배씨는 박 중위에게 업체 측과 전화 연결이 안 된다고 전했다. 이후 박 중위는 약속했던 오후 5시에 족발집에 나타나지 않았고 연락도 두절됐다.
배씨는 “여러 차례 전화를 걸고 메시지도 보냈지만, 연결이 되지 않아 결국 준비한 음식을 전부 폐기했다”며 “나중에 알고 보니 단체 주문을 한 뒤 (즉석군용식량 같은) 추가 물품 대금을 대신 결제해주면 음식을 찾을 때 함께 결제하겠다고 속여 돈을 뜯어내는 사기 방식인 것을 알게 됐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대납 요구하면 사기 가능성 높아
최근 배씨처럼 군인이나 군부대를 사칭한 이들에게 피해를 보는 자영업자가 속출하고 있다. 앞서 지난 16일 자영업자 커뮤니티 ‘아프니까 사장이다’에도 ‘군부대 사칭 노쇼를 당했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작성자 A씨에 따르면 인천 영종도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A씨 부모가 지난 13일 배씨와 비슷한 피해를 봤다. 당시 A씨 어머니는 가게로 걸려 온 주문 전화 한 통을 받았다고 한다. 전화를 건 사람은 자신을 인근 군부대 소속 ‘김동현 중사’라고 소개했다. 이어 돼지불백 50인분을 주문하고는 다음 날 오후 2시에 찾으러 오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A씨 어머니는 김 중사의 요청으로 영수증을 보냈고, ‘부대 식품결제 확약서’라는 문구가 적힌 공문도 받았다. 부대 직인이 찍힌 해당 공문에는 ‘식품 구매비용 50만원을 지불합니다’라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예약 당일 오전 김 중사는 “문제없이 준비하고 계시냐”며 확인 전화까지 했다. 하지만 약속된 시간 이후 김 중사와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 A씨 어머니는 결국 경찰에 신고했다.
피해 방지 위해 예약 선불금 받아야
지난 6월에도 국방부 대령을 사칭한 남성이 충북 청주시 한 음식점에 도시락 480개를 주문한 뒤 “전투식량 납품 업체에 980만원을 대신 보내달라”고 요구한 뒤 잠적하기도 했다.
경찰은 해당 수법이 대량 구매 등을 명목으로 연락을 취한 뒤 식재료값 등을 대납해달라며 돈을 가로채는 신종 보이스피싱으로 보고 있다. 피해가 잇따르자 자치단체도 나서 군부대가 있는 주변 자영업자에게 군인과 군부대 사칭 노쇼에 주의해야 한다고 안내하고 있다.
강원 양양군은 최근 군청 홈페이지 공지사항에 ‘군인사칭 ‘노쇼’ 사기 예방을 위한 안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해당 글을 보면 ’최근 군인이나 군부대를 사칭해 식당과 꽃집 등 자영업자에게 전화를 걸어 회식 등 각종 행사 예약 후 행사 시 필요한 추가 물품 대금을 대신 결제해주면 행사 직후에 함께 결제하겠다고 속여 금전을 뺏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노쇼 행위 업무방해죄로 처벌 가능
경찰 관계자는 “해당 수법은 대금 결제와 재료비까지 이중으로 금전 피해가 발생한다”며 “사기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예약 선불금을 받거나 직접 만나 신분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한편 노쇼 행위가 고의성이 입증될 경우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죄로 처벌이 가능하다. 업무방해죄는 5년 이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 벌금을 물릴 수 있다. 노쇼 피해 사례가 늘면서 자영업자들 사이에선 ‘노쇼 방지책’도 공유되고 있다. 대표적인 방지책으로는 계약금 이체받기, 주문내용ㆍ취소 가능시각 등 문자로 남겨두기, 주문서 기록하기, 폐쇄회로TV(CCTV) 설치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