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대륙 홍해 연안에 있는 이집트 도시 샤름엘셰이크는 세계적 휴양지로 유명하다. 13일 그곳 국제회의장에서 ‘가자 지구 평화 정착을 위한 정상회의’가 열렸다. 2023년 10월 7일 시작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간의 전쟁을 끝내기 위한 평화 구상을 공식화하는 자리였다. 멀리 미국에서 날아와 회의를 주재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건 가자 전쟁의 종식 그 이상을 뜻한다”며 “신(神)의 도움과 더불어 아름다운 중동 전체를 위한 새로운 시작이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중동과 유럽 등 20여개 나라 지도자들이 모여 이스라엘·하마스 휴전을 평가하고 트럼프에 찬사를 보냈다.

그런데 정작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지난 2년간 가자 지구에서 이스라엘군이 수행한 전쟁을 ‘제노사이드’(집단학살)로 규정하며 비난해 온 중동 지역 이슬람 국가들의 반발을 의식한 결과일 것이다. 아랍 세계의 민심만 이스라엘에 등을 돌린 게 아니다. 오랫동안 이스라엘의 우방을 자처해 온 유럽 국가 시민들의 시선도 싸늘하게 식었다. 당장 유럽 음악인들의 가요 경연 대회인 ‘유로비전 송 테스트’(Eurovision Song Contest)에서 이스라엘을 퇴출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거세다. 스페인, 아일랜드, 슬로베니아, 아이슬란드, 네덜란드 등은 “이스라엘이 참여하는 경우 대회를 보이콧할 것”이란 강경한 입장이다.

1956년 출범한 유로비전 경연은 유럽방송연맹(EBU)이 주관하는 행사다. 유럽 국가들이 저마다 대표팀을 출전시켜 노래 시합을 벌인 뒤 배심원단 투표와 일반 시청자 인기 투표 등을 거쳐 우승자를 가린다. 올해 5월 스위스 바젤에서 열린 제69회 유로비전 대회는 이스라엘의 신인 가수 유발 라파엘(24)이 치열한 경합 끝에 2위를 차지했다. 팔레스타인을 지지하고 이스라엘에 비판적인 시민들이 라파엘의 출전 및 입상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며 대회 운영이 차질을 빚을 뻔했다. 제70회 유로비전 경연은 오는 2026년 5월 오스트리아 빈에서 개최될 예정인데, ‘이스라엘 배제’를 요구하는 나라들이 끝내 불참하면 사상 초유의 ‘반쪽’ 대회로 전락할 전망이다.
트럼프의 중재로 이스라엘·하마스 간 휴전이 성립했음에도 유로비전 경연의 파행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이스라엘 대표팀과는 한 무대에 서지 않겠다’는 강경파의 의지가 워낙 확고한 탓이다. EBU는 이스라엘의 유로비전 경연 참여를 허용할지 말지를 놓고 오는 11월 투표를 실시해 회원사들 의견을 물을 예정이었다. 이 투표는 최근 중동 지역의 정세 변화를 이유로 일단 12월로 연기됐다. 주최국 오스트리아는 EBU의 결정을 환영하며 유럽 각국에 보이콧 의사 철회를 호소하고 나섰다. 내년이면 70회를 맞아 어느덧 고희(古稀)에 접어드는 유로비전 대회가 과연 제대로 열릴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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