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아니 인판티노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이 13일(현지시간) 이집트 샤름엘셰이크에서 열린 가자 평화정상회의에 참석했다. 이날 회의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비롯해 각국 정상과 외교 수장이 참석했다. 스포츠 단체 수장이 이례적으로 등장한 이유는 무엇일까.
15일 서남아시아 대표 매체 알자지라에 따르면, 인판티노 회장은 트럼프 대통령 옆에서 엄지를 들고 사진을 찍으며 “FIFA는 평화 과정을 돕기 위해 이 자리에 왔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방식으로 중동의 평화가 결실을 맺도록 돕겠다”고 말했다. 이번 초청은 트럼프의 직접 요청으로 이뤄졌다고 FIFA 측은 설명했다.
인판티노 회장은 정상회의에서 축구의 ‘희망 기능’을 강조했다. 그는 “축구는 희망을 전하고, 사람을 하나로 묶고, 평화를 지속시키는 수단이 돼야 한다”며 “FIFA는 팔레스타인축구협회와 협력해 가자지구의 모든 축구시설을 재건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는 이어 “우리는 볼을 보내고, 잔디 구장을 짓고, 지도자를 파견하고, 대회를 조직하며, 축구 인프라 복원을 돕기 위한 특별기금을 출범시킬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미니 경기장’과 ‘FIFA 아레나’를 새로 조성하겠다는 계획도 공개했다.
인판티노의 이번 행보는 그의 최근 발언과 맥을 같이 한다. 지난주 그는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휴전 합의가 발표된 뒤 “트럼프 대통령의 역할은 결정적이었다”며 “그가 없었다면 평화도 없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트럼프를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해야 한다고도 언급했다.
인판티노 회장은 최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관련 발언에 적극 나서며 “축구가 중동 평화 노력에 기여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유럽 스타디움에서 친팔레스타인 시위가 예고된 가운데, 그는 “경기를 평화 메시지의 장으로 바꿔야 한다”고 촉구했다.
인판티노와 트럼프의 관계는 201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미국이 캐나다·멕시코와 함께 2026년 FIFA 월드컵 공동 개최권을 따낸 뒤 인판티노는 백악관을 방문해 트럼프와 첫 회동을 가졌다. 2020년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에서도 두 사람은 같은 무대에 올랐고, 그때 인판티노는 트럼프를 “나의 위대한 친구”라고 불렀다. 워싱턴포스트는 당시 이 발언을 보도하며 양측의 ‘비공식 동맹’이 형성됐다고 평가했다.
트럼프가 첫 임기를 마친 뒤에도 두 사람의 관계는 이어졌다. 두 번째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에는 공식 행사에서 거듭 함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 8월 인판티노는 백악관 집무실을 방문해 트럼프에게 황금 월드컵 트로피 모형을 선물하기도 했다. 현재 인판티노는 2026년 북중미 월드컵 준비 업무를 위해 미국 마이애미로 거처를 옮겼다. 이곳은 트럼프의 고향이다. 미국 언론들은 “두 사람이 앞으로도 공동 등장할 기회가 늘어날 것”이라고 전했다.
인판티노의 잇단 정치 무대 등장은 국제 스포츠의 중립성을 흔드는 행보라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 정치전문지 폴리티코는 “FIFA 회장이 미국 대통령의 외교 정상회담에 참석한 것은 명백한 선례 파괴”라고 비판했다. 반면 일부에서는 “FIFA가 전쟁 이후 가자 지역의 복구 프로그램을 직접 지원한다면 이는 실질적 평화 기여로 평가될 수 있다”는 긍정적 시각도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