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헌법재판소의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 온 국민의 눈과 귀가 헌법재판소를 향하고 있다. 탄핵심판 변론이 마무리된 지 한 달도 넘게 지났지만, 여전히 뿌연 안갯속을 힘겹게 거닐고 있다. 시국이 답답할수록 차분하게, 그러나 단호하게 우리는 기억하고 기록해야 한다.
12월 3일, 그날 이후 일상은 산산조각 났다. 고단한 몸으로 매일 저녁이면 차디찬 광장 바닥 위로 내몰리고 있다. 누군가는 스러졌고, 누군가는 곡기를 끊었다. 비상계엄은 단 하룻밤의 악몽이 아닌, 삶을 송두리째 바꿔버린 잔혹한 현실이다.
피고인 윤석열이 석방된 이후 하루가 천년같이 흐른다. 알고 있던 상식과 믿어왔던 정의, 그리고 만인이 법 앞에 평등하다는 헌법 가치는 오직 최고 권력자 한 사람의 인권을 지키기 위해 속절없이 무너졌다.
망각의 힘은 무섭다. 그렇기에 대한민국의 중대한 기로 앞에서 누가, 어떤 길을 걸었는지 되짚어야 한다. 불의가 승리한 작금의 현실과 훗날 역사의 법정은 다른 심판을 내릴 것이라고 믿기에, 잊지 않아야 버텨낼 수 있기에.
이해할 수 없는 일 투성이다. 법원은 1954년 형사소송법 제정 이후 법원과 검찰이 70년 넘게 함께 적용해온 ‘날짜 단위’ 구속기간 계산법을 정면으로 흔드는 결정을 내렸다. 형사소송법의 대원칙이 손바닥 뒤집듯 바뀌었다.
심우정 검찰총장은 특수본의 반발에도 석방을 지휘했고, 즉시항고 포기서조차 법원에 제출하지 않아 ‘불법 석방’ 논란을 자초했다. 법원의 결정을 존중한다면서도 일선 검찰청에는 구속기간을 기존대로 ‘날’로 산정하라고 지침을 내려 특정인만 성역이 됐다. 위헌을 예단했으며, 법원의 결정이 부당하다면서도 즉시항고뿐 아니라 보통항고조차 포기했다. 지독한 자기모순이다.
탄핵심판의 주요 쟁점은 간명하다. △비상계엄 선포의 위헌성 △포고령 1호의 위헌성 △군·경을 동원한 국회 봉쇄 △선관위 압수수색 △체포조 운용 지시 등으로 압축된다.
위헌, 위법 행위 또한 분명하다. '전시·사변에 준하는 국가비상상태'에만 제한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비상계엄을 수단화했다. 1997년 대법원은 앞선 전두환 판례에서 '국회 봉쇄'만으로 헌법 위반은 물론, 내란죄가 성립한다고 판단했다. 영장 없이 선관위를 압수수색하고, 체포조를 운용해 정적을 수거하려고 했다.
이런 자를 파면하지 않는다면, 대체 누구를 파면할 수 있단 말인가? 국민을 겨눈 불의를 방관한다면, 제2·제3의 계엄을 막을 수 없다. 지금 단죄하지 못한다면 권력자가 정의 내린 ‘자의적 평화’의 굴레 안에 갇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끌어안고 영원한 불안을 살아가야 한다.
대한민국을 배회하는 내란의 망령이 더는 활개치지 못하도록 단단히 못질을 해야 한다. 타인의 생사여탈권을 손에 쥔 채, 국민의 내일을 저당 잡는 폭력의 씨앗이 이 땅에 뿌리 내리도록 둘 수는 없다.
탄핵심판 선고가 지연되면서 갈등과 분열의 골은 깊어지고, 불확실성이 대한민국을 잠식하고 있다. 파면은 일방의 승리나 패배가 아니다. 흔들릴 수도, 흔들려서도 안 될 헌정질서와 민주주의의 이정표를 바로 세우는 일이다.
봄의 전령사로 불리는 목련의 겨울눈은 단단한 껍질 안에 이미 새 잎과 새 꽃의 싹을 품고 있다. 이제 혹독했던 추위를 뒤로 하고, 움튼 겨울눈을 봄날의 목련처럼 다시 피워낼 봄의 문턱이다.
박희승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남원장수임실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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