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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님, 아이들만 생각하면 눈물이 나요.”
고려인 초등학생이 다니는 아동센터를 취재하던 중 센터장이 꺼낸 첫마디다. 아이들이 즐겁게 노는 모습을 먼저 본 터라 그의 말을 듣고 당혹스러웠다. 무엇이 그를 눈물짓게 했을까.
센터가 있는 곳은 경기 안성시 대덕면. 러시아·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 등에서 많은 고려인이 이주해 ‘고려인 마을’을 이뤘다. 원룸 보증금과 월세가 저렴하고, 인근에 공업단지가 있기 때문이다. 대덕면 인구 1만8000여명 중 약 3800명이 외국인이고, 그중 절반가량이 고려인과 그 가족이다. 지난해 4월 기준 대덕면 내리 광덕초등학교 전교생 239명 중 190명이 부모가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출신이다.
100여년 전 할머니·할아버지가 떠난 땅을 다시 밟은 고려인 아이들. 그러나 이들이 자라는 환경은 그리 밝지 않다. 좁은 원룸에 조부모와 이모·삼촌까지 7∼8명이 사는 건 기본. 어른이 모두 일하는 집은 아이들이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한다. 온 가족이 한국말이 서툴러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도 많다.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않거나 들어가더라도 적응 실패로 학업을 중단하는 게 자연스러울 정도다.
센터 안 아이들은 상황이 조금 낫다. 방학 때면 밥 한끼가 제공되고 한국어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기자가 방문한 날, 정원 20명인 센터엔 상주 근로자 2명에 봉사자, 인근 대학교 근로장학생까지 돌봄 교사가 10명 가까이 있었다. 여기에 한국어를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러시아어 통역 교사까지 매일 하루 2시간 센터를 찾는다. 담임 혼자 10명 이상을 가르쳐야 하는 학교에서보다 아이들을 세심하게 살핀다. 오랜만에 센터에 온 교사를 반기는 아이들 모습에서 이들이 어떤 관계를 쌓아왔는지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혜택을 받는 아이들은 대덕면 고려인 아이 중 극히 일부. 센터에 오지 못한 광덕초교 고려인 학생 170명은 수업이 끝난 후, 학교가 쉬는 방학 때 어디서 어떻게 지낼까. 초등학교를 졸업한 아이들은 중·고등학교에 잘 적응했을까. 학교 사각지대를 채울 더 큰 청소년센터가 필요한 이유다.
최근 충북도는 인구 유입을 목적으로 고려인 주민 지원 조례를 개정했다. 물론 고려인 자녀 돌봄 지원도 포함돼 있다. 인구 숫자만 늘어나는 것이 아닌, 아이들이 우리 사회 구성원으로 꿈을 갖고 살아갈 수 있길 바란다.
황지원 문화부 기자 support@nongm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