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안만세운동 선구자 '탄운 이정근 의사' 추모제 열려

2025-03-30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지금으로부터 106년(1919)전 3월, 이달은 전국 방방곡곡에서 독립만세 소리가 끊이질 않았던 달이다. 특히 일제 군경이 저지른 ‘제암리교회 학살’ 현장 인근인 제암리 발안장터에서는 수천 명의 주민들이 모여들어 일제 침략에 항거하는 대규모 시위가 있었다.

이날 곧, 1919년 3월 31일 정오, 발안장터에 몰려든 군중들의 선봉장이 되어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결사적인 시가행진을 진두지휘하다가 일본 헌병의 총검에 복부를 난자당해 현장에서 순국한 이가 있으니 그가 바로 탄운 이정근(灘雲, 李正根 1863-1919) 의사(義士)다. 이정근의사는 복부에서 솟구치는 붉은 피를 움켜쥐어 일본 헌병의 얼굴에 흩뿌리며 숨이 끊어질 때까지 ‘대한독립’을 절규하다 장렬한 죽음을 맞이하였다고 역사는 증언하고 있다. 아! 선열이시여!

어제(3월29일) 낮 11시, 향남읍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 장짐리)에 있는 이정근의사창의탑에서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탄운 이정근 의사를 추모하는 “발안 3·1독립운동의 선구자, 탄운 이정근 의사 순국 106주기 추모제”가 열렸다. 봄을 시샘하는 꽃샘추위가 제법 쌀쌀하다고 느꼈는데 추모제가 시작되고 얼마 안 있어 빗방울이 떨어지더니 이내 빗방울은 굵은 함박눈으로 돌변하여 추모제 내내 퍼부었다. 그러나 비바람, 눈보라가 추모의 마음을 흩트려 놓을 수는 없다는 듯 추모객들은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추모행사를 마무리 지었다. 선열들의 그 절박했던 기미년(1919)의 함성을 마치 추모객들은 몸소 체험이라도 한양, 한마음으로 이정근 의사와 발안 만세시위에 동참했던 선열들을 추모했다.

“증조할아버님(이정근 의사)께서 순국의 그 순간까지 일구월심 ‘조국독립정신’을 이어가신 그 강인한 나라사랑 정신을 저희들은 영원히 흠모하오며 증조할아버님의 희생으로 지킨 독립된 이 나라를 기필고 지키겠다는 굳은 결심으로 오늘 이 자리에 섰습니다. 증조할아버님께서는 저희들이 올리는 이 맑은 술잔을 흠향하시옵소서.”

이는 (사)탄운이정근의사기념사업회(아래, 기념사업회)의 부회장이자 이정근 의사의 증손자인 이호헌 선생이 삼헌례(초헌례, 아헌례, 종헌례) 의례 가운데 유족대표로 올린 초헌례에서 고한 헌사(獻辭)다. 어제 추모제는 기념사업회 이사인 이호욱 선생의 사회로 탄운이정근의사 약사 보고에 이어 삼헌례, 헌화, 분향의 순서로 이어졌다.

제106주기 (사)탄운이정근의사기념사업회(회장 김겸) 주최 추모제에는 광복회 화성시 윤대성 지회장을 비롯하여 이계철 화성시의원, 한동민 화성독립운동기념관장, 김창겸 농협중앙회 화성지부장(탄운 이정근의사 외증손), 김찬수 민족문제연구소 수원지부장을 비롯하여 가재리 종중, 탄운기념사업회, 제22기 탄운장학생과 가족과 지역유지, 주민 등이 참석하여 탄운 이정근의사의 ‘불굴의 독립정신’을 기렸다.

추모제에 이어 곧바로 제22기(2025) 탄운장학금 수여식이 있었다. 탄운장학금은 탄운 이정근의사의 숭고한 독립정신을 계승하고자 2004년 3월 설립한 장학회로 화성시 6개 읍면(향남, 팔탄, 양감, 우정, 장안면)에서 대학입학생을 뽑아 장학금을 주고 있으며 올해(2025, 제22회)까지 모두 218명에게 지급하였다.

올해는 임다은(향남고, 동국대 화공생물공학), 이윤원(향일고, 국민대 정보보안수학), 이재현 (하길고, 연세대 철학과), 이유찬(삼괴고, 아주대 약학과), 양서연(화성고, 상지대 한의예과), 정한나(발안바이오고, 수원여대 식품영양과), 남나린(향남읍, 경인교대 초등교육과), 박준서(향남읍, 한양대 자연계열학부), 김상권(팔탄면, 숭실대 글로벌미디어) 학생이 탄운장학생으로 뽑혔다.

행사 도중 갑자기 함박눈이 쏟아지고 추운 날씨였지만 장학생들에게 일일이 증서를 수여한 (사)탄운이정근의사기념사업회 김겸 회장은 “청운의 꿈을 안고 대학에 입학한 화성지역 장학생들의 앞날에 큰 기대를 걸며 열심히 학문연마를 통해 탄운 이정근의사의 정신을 이어받아 나라의 미래를 선도하는 훌륭한 인재로 거듭나길 빈다”라는 짧지만 의미깊은 축사로 이들의 앞날을 축복 해주었다.

이날 장학금을 받은 양서연(상지대, 한의예과) 학생은 “어렸을 때부터 한의사가 꿈이었습니다. 화성 출신의 훌륭한 독립투사인 이정근 의사의 독립정신을 가슴에 새기고 열심히 학업에 정진하겠습니다. 그 길만이 이정근 의사가 뜻하던 대한민국의 시대정신을 이어가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장학생으로 뽑힌 소감을 말했다. 양서연 학생이 소감을 말하는 모습을 지켜본 어머니는 “서연이가 훌륭한 한의사가 되어 지역사회를 위한 인술을 아낌없이 베푸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고 했다.

이제 곧 찾아올 본격적인 4월의 봄기운은 온데간데없이 추모제 현장은 갑자기 쏟아진 함박눈 세례에 모두 당황해했지만 흔들림 없이 추모제 행사는 끝까지 이어졌다. 3월 날씨치고 그렇게 추운 눈보라는 처음 겪는 일이었다. 모든 것이 혼돈스럽기만한 대한민국의 현실을 알고있기라도 한 듯, 날씨는 어제 온종일 비·눈·바람·햇빛·구름 등 변화무쌍했다. 하지만 곧 따뜻한 봄은 찾아올 것이다. 그런 기대로 이날 추모제를 무사히 마쳤다.

【탄운 이정근의사에 대하여】

탄운 이정근(灘雲, 李正根 1863-1919) 의사(義士)는 17살에 사서오경을 섭렵할 정도로 학문이 깊었으며 33살 때는 대한제국 궁내부 주사직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치욕적인 을사늑약을 지켜보면서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와 팔탄, 우정, 장안, 정남, 봉담, 남양 등 7개 면을 중심으로 민족정신을 일깨우는 인재육성 교육에 전념했다.

당시 탄운 이정근 의사는 전국적으로 불리던 <독립가>를 손수 지었을 뿐만 아니라 ‘왜왕(倭王) 3년’이라는 구호를 친히 만들어 유포했다. 이는 야만적인 침략자 일제가 천벌을 받아 3년이 못 가서 채 망할 것이란 뜻이었다. 탄운 이정근 의사는 1919년 3월 31일 화성군 향남면 발안 장날 일어난 독립만세 항쟁을 주도적으로 이끌다가 현장에서 일본 헌병의 총검에 찔려 56살로 순국의 길을 걸었다.

추모제가 열린 창의탑은 이정근 의사의 강인한 독립정신과 온후한 인품을 기리고자 1971년 3월 31일, 순국한 지 52년 되는 해에 한글학자 한갑수, 김석원 장군, 최덕신 천도교령, 도지사, 국회의원과 지역유지 등 33인이 발기하여 건립했다.

【탄운 이정근의사가 지은 ‘3.1독립가’】

터졌구나 터졌구나 독립성이 터졌구나

십오년을 참고참다 이제서야 터졌구나

피도대한 뼈도대한 살아대한 죽어대한

잊지마라 잊지마라

하느님이 도우시네 대한국운 다시왔네

어두웠던 방방곡곡 독립만세 진동하네

삼천만민 합심하여 결사독립 맹세하세

대한독립 만세만세 대한독립 만세만세

【창의탑 가는 길】

탄운 이정근의사 창의탑 주변에는 선생의 발자취를 볼 수 있는 '3.1독립가 노래비' 등이 세워져 있어서 선생의 숭고한 나라사랑 정신을 엿볼 수 있다.

*소재지 :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 삼천병마로 283-6번지

*문의 : 070 - 4154 - 6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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