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창업의 길 94. 내일테크놀로지 김재우 대표

‘질화붕소나노튜브’(BNNTㆍBoron Nitride Nanotube)라는 게 있다. 붕소(B)와 질소(N)로 이뤄진 육각형 구조가 원통 형태로 감겨 있는 나노미터(nm) 단위의 초미세 튜브 구조체다. 신소재인 탄소나노튜브(CNT)와 강성이나 열전도는 비슷하지만, 전기절연성이 있고, 산과 염기뿐 아니라 고열에도 강해 ‘차세대 꿈의 신소재’로 불린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BNNT를 차세대 우주 및 극한 환경 소재로 높이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만들기가 너무 어려워 그간 ‘그램(g) 단위 생산’에 머물렀던 소재다. 내일테크놀로지는 이 BNNT를 가장 잘 만드는 ‘소부장’ 기업이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의 김재우(60) 박사가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2015년 창업했다. 지난 9월 ‘혁신창업 국가 대한민국 국제포럼’에서 연구개발특구진흥재단 이사장상을 받기도 했다. 기술력이 세계 으뜸이라 그간 꽃길을 걸었을 것 같지만, 실은 정반대다. ‘기초소재는 오래 걸린다’는 이유로 투자가 부진해 지난 10년을 정부 연구ㆍ개발 과제로 버티며 겨우 생존해왔다. 가뭄 속 단비 같은 희소식은 나라 밖에서 들려왔다. 일본의 글로벌 화학ㆍ소재기업 덴카가 최근 BNNT의 가치를 알아보고, 전략적 투자를 시작했다. 회사가 있는 대전 대덕테크노밸리를 찾아 덴카 출장을 막 다녀온 김 박사를 지난 18일 만났다.

방사선 막고, 반도체 칩 온도 낮추고
질화붕소나노튜브(BNNT), 어디에 쓰이나.
BNNT는 고온 안정성, 절연성, 방사선 차폐 등의 성질을 가진 신소재라 활용 분야가 넓다. 반도체 패키징에서는 발열을 칩의 온도를 낮추기 위한 방열 필러나 접착 소재의 성능을 높이는 용도로 검토되고 있다. 2차전지에서는 첨가제로 활용돼 전지 내 안정성과 성능 향상을 기대할 수 있다. 우주ㆍ항공 분야에서는 고강도이면서도 방사선 차폐 능력이 있어 복합재 강화용으로 주목받는다. 또한 붕소 특유의 중성자 흡수 능력 때문에 원자력 분야의 차폐ㆍ흡수 소재의 역할도 한다.
원자력연구원에서 어쩌다 BNNT를 연구했나.
원자력연에서 BNNT 연구를 시작한 것은 붕소라는 원소 때문이다. 붕소는 원자로에서 중성자를 흡수하고 임계도를 조절하는 핵심 물질이라 제어봉이나 냉각수 첨가제 등으로 널리 쓰인다. 나는 당시 나노기술을 이용한 방사선 차폐소재 연구를 수행하고 있어, 자연스럽게 붕소 기반 신소재에 관심이 옮겨갔다. 그러다 고온ㆍ내방사선성이 뛰어난 BNNT가 눈에 들어왔고, 이를 활용하면 기존 붕소 화합물보다 훨씬 진보된 차폐ㆍ흡수 소재를 만들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
연구와 창업은 또 다른 분야인데, 왜 창업할 생각을 했나?
BNNT 연구를 하면서 기술 이전만으로는 이 소재가 원숙한 단계까지 개발되기 어렵다는 판단이 들었다. 난이도가 높은 기초소재라 기업에 기술 이전해도 후속 개발을 이어가기 힘들었고, 실제 상용화까지 연결되는 사례도 드물었다. 하지만 미국ㆍ캐나다 등에서는 BNNT 기업들이 생겨나 상용화를 향해 움직이는 흐름이 보이면서 이 소재의 가능성을 확신하게 됐다. 결국 ‘이 기술은 내가 직접 해야 완성된다’는 생각으로 창업을 결심했다.
김 대표는 서강대 물리학과 학부를 졸업하고 미국 인디애나주립대를 거쳐 미주리대에서 원자력공학으로 석ㆍ박사 학위를 받았다. 원자력연구원에는 2001년 입사했다.

미국ㆍ캐나다는 아직 그램 단위 생산
내일테크놀로지만의 경쟁력은?
우리의 경쟁력은 열처리 방식을 이용한 ‘대량생산이 가능한 BNNT’라는 점이다. 미국과 캐나다의 경쟁사들은 플라스마나 레이저 기반이라 최소 섭씨 3000도 이상이 필요하고, 고가의 장비와 낮은 수율로 아직도 그램 단위 생산에 머물러 있다. 우리는 1200~1400도의 열처리 공정으로 24시간 연속 생산이 가능하고, 순도와 품질도 훨씬 안정적이다. 산업이 요구하는 양과 품질을 꾸준히 뽑아낼 수 있는 곳은 우리뿐이다.
독보적 기술력인데, 투자는 좀 받았나.
2015년 창업 때 과학기술지주에서 3억원을 투자받은 것을 시작으로 이후 산업은행과 한국벤처투자 등으로부터 투자를 받았다. 최근까지 70억원 정도 받았지만, 매출이 크지 않고 R&D에 돈이 많이 들어 근근이 버텨오고 있다. 장비 구축과 인건비, 특히 특허확보에 자금이 계속 들어가는 구조라 신규 투자가 꼭 필요하다.
김 대표는 표정이 힘들어 보였다. 그는 “지난 10년은 기술 하나만 믿고 몸으로 버틴 시간”이라고 표현했다. 초기 투자금에 정부 과제를 받는 게 대부분이라 “이제 그만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고 했다.
일본 소재 기업이 전략적 투자를 했다는데.
덴카는 우리 BNNT의 방열 소재 가능성을 직접 확인한 뒤 처음으로 전략적 투자를 시작한 해외 기업이다. 앞으로 덴카와 함께 반도체 패키징 방열 소재 공동개발과 사업화 협력을 본격화할 계획이다. 지난 출장에서 덴카는 자사 소재와 BNNT를 결합해 성능을 높일 수 있다는 기술적 확신을 보여줬다.
왜 한국 기업과 투자자들이 외면하나.
BNNT같은 기초소재는 응용ㆍ검증 과정이 필수라 시간이 걸리는데, 국내 기업들은 성능이 완전히 입증된 뒤에야 움직이려고 한다. 투자자들 역시 모험투자보다 매출이 이미 나오는 안전한 기업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 R&D로 외국기업 도와줄 우려도
이렇게 되면 결국 우리 세금으로 외국 기업의 오픈 이노베이션을 시켜주는 셈이 아닌가.
그런 우려가 있을 수 있다. BNNT는 원자력연에서 시작된 기술이고, 정부 R&D와 세금이 투입돼 기반이 만들어졌는데 정작 국내 기업ㆍVC가 주저하는 사이 일본 등 해외 기업들이 먼저 손을 내밀어 협력과 투자로 성과를 가져가는 구조가 될 수 있다. 잘못하면 우리가 개발한 기술을 되레 해외에서 더 비싸게 사와야 하는 상황도 생길 수 있다. 우리 사회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기술이면 리스크가 있다는 이유로 피하려고만 하는데, 그 문화가 바뀌지 않으면 선도적 기술을 키우기 어렵다.
김 대표의 말 속에 그간 국내 대기업ㆍ벤처캐피탈에 대한 진한 아쉬움이 묻어났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최근 들어서 국내 반도체 기업들이 BNNT의 방열 특성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회사의 비전을 말한다면.
우리는 BNNT를 기반으로 한 응용 분야에서 확실한 리더가 되는 걸 목표로 한다. 지금도 글로벌 기준으로 보면 우리가 넘버원 BNNT 생산 기업이라고 생각하지만, 앞으로는 단순히 소재를 파는 회사가 아니라 수요 기업들이 우리 소재를 가지고 실제 제품을 만들 수 있게 솔루션까지 제공하는 회사가 되고 싶다. 반도체 방열, 2차전지, 우주항공, 고분자 복합재 등에서 BNNT가 들어가는 제품이 본격적으로 나오면 매출도 큰 폭으로 성장할 것으로 본다.
최치호 한국과학기술지주(KST) 대표

“내일테크놀로지는 출연연의 미래첨단 소재 원천기술로 창업해, 세계적으로도 구현이 어려운 질화붕소나노튜브의 양산기술을 확보함으로써 소재 강국인 일본의 대기업으로부터 전략적 투자도 받은 국가 전략자산인 기업이다. 첨단 소재 분야의 사업화가 어려운 환경에서 공공연구성과의 창업사업화를 통해 소재 강국으로 가는 길을 제시한 것으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향후 AI용 차세대 반도체 패키징 소재 분야 글로벌 리더로 성장할 것으로 믿는다.”
주한규 한국원자력연구원 원장

“우리 연구원의 질화붕소나노튜브 관련 원천기술을 기반으로 창업해 한국과학기술지주의 투자로 연구소기업이 된 내일테크놀로지의 기술 경쟁력과 글로벌 시장에서의 성장 과정을 보면 감회가 새롭다. 원자력연구원은 앞으로도 내일테크놀로지가 AI용 반도체 패키징 소재 등 차세대 첨단소재 분야의 글로벌 강자로 우뚝 설 수 있도록 기술적 협력 관계를 공고히 하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
대전=최준호 과학전문기자, 논설위원 joo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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