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렛츠 겟 라우드’ 해야만 한다

2024-11-20

렛츠 겟 라우드(Let’s Get Loud). 큰 소리를 내자는 뜻으로, 제니퍼 로페즈의 데뷔 앨범 <On The 6>(1999)의 수록곡 제목이다. 요즘 조깅하며 이 노래를 자주 듣는다. 흥겨운 라틴 리듬의 댄스곡인데 문득 울컥해서 소매로 눈가를 찍곤 한다. ‘갓생’과 초긍정의 에너지가 넘치는 석촌호수 트랙에서 내가 청승을 떠는 이유는 이 문장이 라티노, 이민자, 여성인 사회적 소수자로 생존해온 그의 인생을 관통하기 때문이다. 가난한 푸에르토리코 출신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나 아메리칸드림의 상징이 되기까지 제니퍼 로페즈는 도전과 증명을 거듭하는 삶을 살았다. 이렇게 훈장처럼 얻은 영향력을 지난 미국 대선 당시 카멀라 해리스 후보 지지 연설에서 발휘했다. 도널드 트럼프 후보의 반이민주의적 발언에 대항해 공동체의 결집을 호소하고, “렛츠 겟 라우드”라고 소리친 것이다. 자막 없이는 연설을 전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그의 목소리는 선명하게 내 가슴에 울려 퍼졌다.

해리스의 캠페인에서 셀 수 없이 많은 팝 스타가 ‘렛츠 겟 라우드’ 했다. 흑인 해방과 자유의 메시지를 담은 비욘세의 ‘프리덤(Freedom)’이 캠페인의 비공식 주제가로 사용됐다. 래퍼 카디비는 미국의 부러진 사회적 안전망이 길러낸 흑인, 이민자, 여성으로서 연단에 올랐다. 테일러 스위프트, 에미넴, 레이디 가가, 빌리 아일리시 등 인종과 세대를 막론한 수많은 스타가 발 벗고 나섰다. 비록 그들이 지지한 해리스는 당선에 실패했지만, 갈수록 기울어지는 세계에서 공동선을 위해 목소리 낸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은 바다 건너에 사는 나에게도 희망의 파도가 되어 흘러들었다. 그리고 희망은 관심으로 물결을 바꿨다. 지금 내 유튜브 시청 기록엔 그들의 이름이 가득하다. 음악이라는 무한한 언어는 이렇게 확장되곤 한다.

K팝도 ‘렛츠 겟 라우드’ 할 수 있을까? 하이브의 ‘음악산업 리포트’가 연일 화제다. 음악도, 산업도 내용에 없기 때문이다. 업계와 동료를 모욕하는 이 한심한 지라시에 대해, K팝 가수로는 유일하게 세븐틴의 멤버 승관이 목소리를 냈다. 무척 조심스러운 어조로 자기의 업에 대한 사랑과 자긍심을 표현하며 에둘러 비판했다. 이것이 K팝의 최대 데시벨인 걸까? JX(전 동방신기 멤버 김재중·김준수 듀오)는 15년 동안 지상파 방송 출연을 가로막았다고 알려진 이수만씨를 정면으로 비판하지 못하고, 용기를 내어 국정감사 참고인으로 출석한 뉴진스 하니는 끝없는 백래시에 시달리고 있다. 현재 K팝은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는 게 미덕이었던 구시대적인 ‘K박스’에 갇혔다. 가수를 인간이 아닌 상품으로 대하는 업계, 수출품으로 대하는 사회 분위기가 그들의 목소리를 가둔다. ‘이것은 도덕적인가’ 이전에 ‘경제적인가’를 묻고 싶다.

엔터테인먼트 사회학자 나카야마 야쓰오는 저서 <모든 뜨는 것들의 비밀>에서 J팝이 쇠락한 이유에 대해, 거대 기획사가 산업을 경직시키며 내수 시장에만 매달리게 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K팝의 사정은 어떤가? 아티스트의 목소리는 가두고, 가장 큰 기획사는 ‘내수용’ 가십 커뮤니티의 반응을 ‘음악산업’의 주요 지표로 삼았을 정도로 근시안적이다.

인권마저 종속시키려 하는 무소불위의 자본은 음반 밀어내기 등 수많은 폐단을 양산했다. 최근 국회 청원, 조화 보내기 등 팬덤의 투쟁이 본격화된 이유는 눈먼 K팝 산업의 현재에 답답함과 한심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대로 가다간 K팝은 국경은커녕 기획사 담장도 넘지 못하게 될 것이다. K팝도 ‘렛츠 겟 라우드’ 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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