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에 대한 나만의 해석 담은 인생 서사 도전
진정한 자기를 찾아가는 이야기 담기게 될 것
정신분석의 창시자 프로이트는 무의식적 갈등과 본능적 충동으로 인간을 이해하려고 했다. 인본주의 심리학자 칼 로저스와 에이브러햄 매슬로는 자기실현 욕구가 성격을 규정하는 결정적 요소라고 주장했다. 행동주의 심리학자인 스키너와 밴듀라는 인간은 빈 서판(tabula rasa)과 같아서 무한한 변화 가능성을 가진 존재라고 믿었다.
우울해지면 사람들은 자신에게 ‘나는 누구인가?’라고 더 자주 묻게 된다. 마음이 지옥처럼 느껴질 땐, 그것이 진실이든 아니든 나의 고통을 그럴싸하게 설명해주는 이야기를 갈구하게 된다. 이럴 때 심리전문가가 나타나서 “당신의 문제는 낮은 자존감입니다. 트라우마가 해결되지 않아서 괴로운 겁니다. 내향적 성격이라 그렇습니다”라고 설명해주면 혼란이 걷히고 아픔도 이내 사라질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과연 실제로 그럴까?
인간은 이야기꾼이다. 경험을 잇고 묶어 이야기를 만든다. 인생 서사는 ‘나라는 사람은 도대체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는 세상을 경험하고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아간다. 인생 서사의 밑바탕은 체험이고, 체험에 대한 자기만의 해석이 서사를 완성한다. 우리는 세계와 마찰하면서 영혼의 모호한 구석들을 제 나름의 방식으로 깨달아 가는 것이다. 이게 인생이고, 자아 발견은 이렇게 이뤄진다. 권위자가 일방적으로 심어 넣는 획일화된 이야기로 이런 깨달음에 이를 순 없다.
새해엔 자기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매일 조금씩 써보자. 살아오는 동안 겪었던 결정적 사건과 그때 자신은 어디에서 무엇을 했고, 누구와 함께 있었으며, 어떤 생각과 감정을 품었는지 기록하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그 사건으로 말미암아 나는 무엇을 깨닫게 되었나? 나는 어떻게 달라졌는가?’까지 함께 적어보면 좋겠다. 이야기는 인생의 순탄치 않음으로 말미암아 생겨난다. 의미는 언제나 이야기와 함께 피어난다. 이야기가 없으면 존재의 의미도 없다.
트라우마를 겪은 뒤 시간이 얼마 흐르지 않았는데 “인생이 다 그런 거지요. 받아들여야지요”라며 너무나 전형적인 말로 서사를 쉽게 마무리 지어선 안 된다. “삶은 난파선이에요. 노를 저어 봤자 소용없어요. 어차피 침몰하고 말 텐데요”라며 더 깊은 수렁 속으로 빠져드는 이야기에만 매달려도 안 된다. 이런 이야기는 죽고, 새로운 이야기가 태어나야 한다. 닫힌 결말이 아니라 열린 서사로 계속 이어져야 하는 것이다.
시간의 축을 미래로 옮겨 놓고 다음처럼 묻고 그 답도 적어보자. “내 삶의 이야기가 어떻게 끝나기를 바라는가? 타인에게 내가 어떻게 기억되었으면 좋겠는가? 죽음을 앞두고 내 삶이 한 권의 책으로 엮인다면 그 안에는 무엇이 담겨야 할까? 제목은 어떻게 지어야 할까?”
기억과 상상, 느낌과 생각을 밖으로 꺼내되 처음부터 거기에 질서를 부여하고 억지로 의미를 찾으려 해선 안 된다. 시간이 흐르고 글이 쌓이면서 질서와 의미는 저절로 부상할 것이다. 이렇게 쓰인 인생 서사의 핵심에는 역경을 극복하고 살아남아 진정한 자기를 찾아가는 스토리가 언제나 담겨 있게 마련이다.
문법이나 맞춤법 때문에 주춤거리지 말고 손이 가는 대로 쓰면 된다. 문장이 아름답지 않아도 상관없다. 자기 검열도, 타인의 인정도 필요 없다. 그저 그냥 매일 조금씩 써나가면 된다.
김병수 정신건강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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