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2년 7월 7일 신한은행의 개점일에는 오전 일찍부터 가랑비가 내렸다. 341명의 재일교포 주주들이 자본금 250억 원을 모아 출범하는 날이었다. 신한은행 창업주인 고(故) 이희건 명예회장은 “동면에 빠진 대한민국 금융을 깨우는 순간”이라며 “금융 보국, 새로운 한국을 만든다는 정신으로 한국 최초의 순수 민간자본 은행인 신한은행을 창업했다”고 회고했다. 재일교포의 염원을 담은 신한은행은 이날에만 방문 고객 수 1만 7520명, 예금 357억 4800만 원을 기록했다. 자본금의 1.5배를 유치한 셈이다. 그렇게 신한은행은 대한민국 금융사에 첫발을 내디뎠다.
연임이 사실상 확정된 진옥동(사진) 신한금융그룹 회장이 40년 전 창업 당시의 초심을 강조하면서 그룹 혁신 작업에 속도가 붙고 있다. 신한 안팎에서는 ‘혁신의 DNA’를 다시 깨워 질적 성장을 하는 데 초점이 맞춰질 것이라는 예측이 흘러나온다.
실제로 국내 6번째 시중은행으로 닻을 올린 신한은 ‘첫 번째’라는 수식어를 달고 살았다. 신한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로코너(Low Corner·상담 창구)와 하이카운터(High Counter·입출금 및 공과금 처리 창구) 시스템을 도입했다. 고객은 왕이라는 신념 아래 손님이 오면 은행원들이 일어나 45도로 인사를 했고 이동형 점포의 옛 모델로 볼 수 있는 동전 수레를 통해 시장 상인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영업을 했다. 신한은행의 첫 광고 문구가 ‘신한은행은 하나부터 열까지 새로운 은행’이었을 정도다.
이 같은 특성은 ‘7B’ 경영 이념으로 개념화됐다. 구체적으로 △나라를 위한 은행(Bank for the National Wealth) △대중의 은행(Bank of Retail) △서로 돕는 은행(Bank of Community) △믿음직한 은행(Bank of Disclosure) △가장 편리한 은행(Bank of Effectiveness) △세계 속의 은행(Bank of Worldwide) △젊은 세대의 은행(Bank of New Age) 등이 그것이다.
신한은 임직원들의 의지도 강했다. 최근 진 회장은 2대 신한은행장을 지낸 이용만 전 재무부 장관과 만난 자리에서 “당시 행장님이 명동 옛 코스모스백화점 앞에서 ‘이용만입니다. 이용만 해주세요’라고 크게 소리치면서 영업을 하셨다”고 전했다. 은행장이 직접 영업에 나서는 것은 현재도 흔치 않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직원들끼리 서로 마주 선 자리에서 “나가”라고 소리치는 ‘맹폐’가 존재했고 직원들이 길거리와 버스에서 은행을 홍보하기도 했다.
시장에서는 진 회장이 40년 전 신한의 역동성과 혁신을 되살리기로 선언한 만큼 금융권에 새바람이 불어올지 주목하고 있다. 인공지능(AI)과 스테이블코인 같은 신기술이 금융권에도 파고들어오는 변화의 시기라는 점이 신한의 행보에 더 관심을 갖게 하는 대목이다. 이미 진 회장은 계열사 최고경영자(CEO) 인사를 5일 전격 단행하면서 강도 높은 변화와 쇄신을 예고했다. 신한지주 회장을 지낸 조용병 전국은행연합회 회장은 7일 “창업 초기 혁신의 새바람을 살리자는 의미”라며 “신한의 핵심 가치인 ‘바르게’ ‘빠르게’ ‘다르게’를 디지털에 맞게 업그레이드하자는 뜻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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