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공격 작전 지휘… 드론이 정찰·폭격… 미래전쟁 주도권 ‘빅테크’에 달렸다 [디펜스 포커스]

2025-01-13

우크라, 서방 참여한 ‘IT부대’ 꾸려

러 사이버 공격 단기간에 무력화

영상분석·안면인식 AI 전장 투입

빅테크기업 우크라전서 기술 검증

우크라 드론 생산량 1년새 10배 ↑

무기체계 ‘하드웨어→ICT’ 전환

팔란티어·안두릴·스페이스X 등

컨소시엄 구성… 美 국방사업 공략

이·英도 방산 스타트업 적극 투자

“韓, 민간참여 확대… 미래전 대비를”

기술전쟁(Technology war). 2022년부터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 특징을 이보다 더 효과적으로 정리하는 단어는 찾아보기 어렵다. 우크라이나에선 민간 첨단기술 기업이 지닌 우주·드론 기술 등이 널리 활용되면서 미래 전쟁의 개념을 제시하고 있다. 스페인 내전(1936∼1939년)에서 등장했던 신기술과 전술이 제2차 세계대전의 주인공 역할을 했던 것처럼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쓰이고 있는 첨단기술은 미래에 벌어질 전쟁의 승패를 좌우할 핵심 요소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 인공지능(AI), 드론 등의 첨단기술을 지닌 민간기업이 국방 분야로 활동 영역을 넓히면서 기존 방위산업계에 혁신의 기운을 불어넣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평가다. 재래식 전쟁에서 쓰는 무기체계 위주 포트폴리오를 갖고 있는 K방산도 혁신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첨단기술전쟁의 시작, 우크라이나 전쟁

우크라이나 전쟁은 1차 걸프전처럼 미사일과 공군 폭격기 등을 활용한 대대적인 폭격으로 전쟁을 시작하는 시대는 끝났다는 점을 보여줬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주요 지역을 공습하기 전부터 사이버 공간에선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고, 민간기업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2022년 2월 24일 러시아는 공습과 지상군 투입 전 사이버공격을 감행했다. 우크라이나 전역에 흩어진 군대와 정부기관이 체계적으로 러시아군에 맞서려면 네트워크가 정상가동되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선 사이버 방어가 매우 중요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사이버공격을 단기간 내 무력화했다. 이 과정에서 서방의 사이버 전문가와 민간기업은 중요한 역할을 했다. 우크라이나는 글로벌 사이버 전문가와 해커로 구성된 정보기술 부대를 만들었다. 전쟁 발발 직후 일론 머스크는 스타링크 위성 인터넷을 제공해 우크라이나군의 지휘통제체계 유지를 도왔다.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등도 지원했다. 우크라이나 정부 데이터는 서방 민간기업들의 지원을 받아 백업 서버로 옮겨졌다. 이는 단기간 내 전쟁을 승리로 끝내려던 러시아의 계획을 좌절시켰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드론전쟁’이기도 하다. 민간 드론을 개조해서 전장에 투입하는 것은 세계 각국에서도 주목하고 있다. 민간 드론은 값이 매우 싸고 대량 도입이 가능하며 사용이 편리하다. 포탄을 탑재한 1인칭 드론(FPV) 공격은 참호에 있는 보병에게 공포의 대상이다. 수백㎞ 거리를 비행해 적 내륙 지역의 군사기지나 산업시설을 타격하는 장거리 자폭드론은 전쟁수행능력에 상당한 타격을 입히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무인수상정(USV)은 러시아 함정 다수에 피해를 줬고, 최근엔 헬기까지 격추했다.

폭증하는 드론 수요를 충족하고자 우크라이나는 군사기술과 방위산업 분야에서 혁신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빠르게 변화하는 전쟁 양상에 맞춰 단기간 내 무기를 대량생산하고 기술혁신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드론 생산량은 2023년 30만대에서 2024년 400만대로 10배 이상 증가했다. 2023년 4월 출범한 브레이브1(Brave1)은 민·관·군 협력의 국방기술혁신을 주도한다. 업계 이해 관계자를 한곳에 모으고 투자를 진행하며, 우크라이나군이 제기한 문제점을 해결하고, 몇 주 안에 사용이 가능한 무기나 기술 개발을 촉진한다. 이를 통해 전자전, 드론, 보안, 장병 건강 등의 분야에서 다양한 신기술이 개발됐다.

AI가 전장에서 실제로 쓰이는 것도 우크라이나 전쟁의 특징이다. 서방의 첨단기술 기업은 우크라이나의 전쟁을 지원하며 자신들의 기술을 검증·발전시키고 데이터를 모으고 있다. 2004년 설립된 AI 빅데이터 기업인 팔란티어는 우크라이나에 국방 데이터 분석 플랫폼을 제공한다. 상업용 위성과 정찰 드론,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첩보원 등을 통해 수집한 정보를 AI로 종합하고 분석해 러시아군의 위치를 짚어낸다. 우크라이나군 공격 작전이 팔란티어의 AI에 의존하고 있는 셈이다. 우크라이나군은 “팔란티어의 영상 정보 분석 AI를 도입한 후 살상용 드론의 명중률이 50%에서 80%까지 상승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미국 민간기업 클리어뷰 AI의 안면인식 소프트웨어는 러시아군을 식별하는 데 쓰인다.

이 같은 첨단기술은 빅테크기업이나 민간 엔지니어가 민수용 시장을 겨냥해서 만든 것들이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큰 효과를 거두면서 압도적인 국력을 지닌 러시아를 상대로 우크라이나가 장기전을 벌일 수 있는 기반을 제공했다는 평가다. 글로벌 미래전을 준비하기 위한 혁신의 주도권이 기존 방위산업계나 정부·군이 아닌 빅테크 업계로 넘어가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는 대목이다.

◆첨단기술기업 국방 참여 늘어날 듯

첨단 기술을 지닌 민간기업이 국방 분야에서 활동 범위를 넓히는 양상은 선진국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미국 기업인 팔란티어와 자율드론 제조업체 안두릴, 일론 머스크의 우주기업 스페이스X, 챗GPT 개발사 오픈AI 등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미 국방부의 방위사업 입찰에 나설 준비를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가치 있는 기업들이 한데 모여 미국 정부에 최첨단 국방 역량을 더욱 효율적으로 공급하려는 의도다.

8500억 달러(약 1231조원)에 달하는 미국 국방예산은 록히드마틴, 보잉, 노스럽그루먼 등 소수의 대형 방산업체가 사용해왔다. 이들 기업은 전통적 형태의 전면전에 필요한 재래식 무기를 만들어왔지만, 소프트웨어와 첨단기술 비중이 커지고 전장 환경이 빠르게 변화하는 국면에서는 유연성과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첨단기술기업은 이 같은 문제점을 파고들고 있다. 2017년 설립된 안두릴은 방위산업이 인력 집약적인 하드웨어 중심 고비용 체제에서 벗어나 소프트웨어 위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며 지능형·고효율·저비용 제품을 개발해왔다. 정찰용 소형 드론 ‘고스트’는 얇은 소총 케이스에 들어갈 정도로 휴대가 간편하며, 작업자 한 명이 2분 안에 조립할 수 있다. 비행거리는 12∼25㎞에 이른다. 2023년 미 공군과 800만 달러 규모의 고스트 공급 계약을 맺었다. 2022년부터 드론 요격능력을 지닌 드론인 ‘로드러너’를 미군에 공급하고 있다.

오픈AI의 안나 마칸주 국제 부문 부사장은 16일(현지시간)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을 계기로 열린 블룸버그 주최 행사에서 “미 국방부와 오픈 소스 사이버 보안 소프트웨어에 대한 도구를 개발 중”이라고 밝혔다. 오픈AI는 지난달 안두릴과 함께 미 국방부를 위한 AI 기술을 공동 개발하는 방안도 공개했다. 양사는 “이번 파트너십은 오픈AI의 AI 모델과 안두릴의 고성능 방어 시스템을 결합해 무인 드론 등의 공격에서 미국과 동맹국 군인을 보호하는 방어 시스템을 개선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소개했다. 오픈AI의 AI 기술이 드론 공격 위험을 실시간 파악해서 저지하는 안두릴의 대(對)무인기시스템(CUAS)의 성능 개선에 쓰일 전망이다. 앞서 오픈AI는 이용 약관에서 군사 및 전쟁 응용 프로그램에서 자사 AI의 사용을 막는다는 조항을 삭제했다.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은 첨단기술기업의 방위산업 참여를 촉진할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은 산업 전 분야에서 규제 철폐와 비용 절감을 강조했다. 정부효율부(DOGE) 수장이 될 일론 머스크도 연방정부의 대규모 지출 삭감을 예고하면서 “F-35는 비싸고 복잡하며 모든 것을 조금씩 할 수 있지만, 어느 것도 뛰어나게 잘하지 못하는 기체”, “공중전의 미래는 드론”이라고 주장했다. 엄청난 예산이 투입돼온 미국 방위산업과 국방조달체계에 큰 변화를 예고한 셈이다. 미국 정부와 방위산업계의 기조 변화는 글로벌 안보와 방위산업 시장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하드웨어 중심의 무기체계 생산 대신 소프트웨어와 첨단기술 적용이 핵심적 요소가 되는 시대로 전환되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 외의 선진국에서도 이와 비슷한 양상이 드러나고 있다. 이스라엘 항공우주산업(IAI)은 인도의 기술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다. 빅데이터, AI, 양자, 웨어러블 등의 분야와 관련된 기업이 대상이다. 영국의 AI 기술 기업인 패컬티 AI(Faculty AI)는 영국 스타트업과 드론 탐지·추적 기술 등에 대한 파트너십을 맺었다. 패컬티 AI는 AI에 기반한 전자전과 의사결정지원 등의 기술도 제공한다.

◆한국도 첨단기술 전환 서둘러야

한국군도 AI를 비롯한 첨단기술이 적용된 유·무인 복합전투체계 개발을 통해 미래전 대비에 나서고 있다. 지상 부문에서는 무인수색차량, 자율탐사로봇, 중전투로봇 등을 개발하고 있다. 무인수색차량은 주·야간 원격 및 자율주행, 원격사격 기능 등이 탑재된다. 자율탐사로봇은 병사를 대신해 동굴 등 위험 공간 탐색과 정찰을 한다. 중전투로봇은 포탑에 30㎜ 기관포와 기관총 등을 장착할 수 있다. K-9 자주포 원격 무인화 작업도 진행 중이다. 해양 부문에서는 무인수상정 개발이 진행 중이고, 항공 부문에서는 소형무장헬기(LAH)에서 무인기를 통제·운용하는 기술도 개발하고 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와 미국처럼 첨단기술을 지닌 민간기업의 참여를 촉진하는 정책적 기조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국방부가 국방AI센터를 만들고 민간 분야와의 교류 활성화, 인력 양성 등을 추진하고 있지만, 선진국과의 기술 격차를 빠르게 좁히고 AI 기반 무기체계를 전면적으로 도입하려면 정책·기술적 혁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K-9 자주포와 중거리 지대공요격무기(M-SAM) 등이 세계 방위산업 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국방 분야에서 활용할 첨단기술 개발이 지금과 같은 속도로 이뤄질 경우 세계 각국이 빅데이터나 AI 등의 첨단기술을 갖춰야 하는 미래전을 대비하려고 할 때, K방산이 잠재적 고객에게 제시할 수 있는 신뢰성 있는 솔루션을 보유하고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군 관계자는 “우크라이나와 미국처럼 기술력을 갖춘 민간기업과 스타트업의 방위산업 참여를 더욱 확대하는 정책적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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