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계 단체들 대신 반발
양용 사건때도 무반응 일관
LA 한인회만 규탄 성명 발표
한인을 개고기 식용 민족으로 지칭하며 비웃고, 영어도 못하는 무례한 이들로 조롱했는데도 침묵하고 있다.
LA 한인 단체들의 씁쓸한 모습이다.
최근 유명 라디오 진행자 빌 헨델이 방송 도중 한인을 겨냥해 인종차별 발언을 잇따라 쏟아냈다. 〈본지 2024년 12월 13일자 A-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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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아시아계 단체들이 나서 헨델의 방송 하차를 요구했다. 주류 언론들까지 나서서 관련 내용을 보도할 정도로 논란이 커졌다.
문제는 정작 한인 사회만 아무런 반응이 없다는 점이다. 논란이 불거진 지 3주가 지났는데도 성명 한 장조차 내놓는 한인 단체를 찾아보기 힘들다.
한인 사회가 반응하지 않는 사이 아시아계 단체들이 대신 나서 목소리를 높였다.
‘아시아계 미국인 미디어 행동 네트워크’는 라디오 방송국 KFI 측에 공식 사과를 요구하는가 하면, 아시아계 미국인 언론인 협회는 헨델을 규탄하는 성명까지 발표했다.
현재까지 입장을 내놓은 건 LA 한인회뿐이다.
로버트 안 신임 LA 한인회장은 지난달 30일 본지에 전달한 성명에서 “한인회는 인종차별 발언 전력이 있는 헨델이 또 방송에서 반아시아적 발언을 한 것에 대해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1세대를 주축으로 운영되던 과거와 달리, 한인 단체들도 이제는 좀 더 미국화된 한인 1.5세, 2세 등으로 세대교체가 이루어지고 있다. 얼마든지 주류 사회를 향해 목소리를 낼 수 있는데도 오히려 한인 단체들의 역할은 퇴보한 듯하다. 이는 한인 사회의 구심점이 없고, 결집력이 약화하고 있음을 반영한다.
안 회장은 이날 성명을 발표하면서 본지에 “한인을 겨냥한 인종차별적 행위를 예방하고 확실한 사과를 받아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한인 사회의 정치력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 회장의 바람과 달리 현실을 보면 갈 길은 멀어 보인다. 한인을 향한 인종차별적 발언이 잇따르는데도 일언반구도 없다면 ‘정치력 신장’은 헛헛한 구호에 불과하다. 게다가 대부분 단체명에 ‘Korean(한인)’을 명시하지 않나. 평소에는 한인 사회를 위해 일한다고 주장하면서 정작 이런 일에 침묵으로 일관한다면 한인 단체의 존재성은 무색해진다.
한인 단체들의 이런 식의 무관심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5월 발생한 양용 피격 사건으로 한인 사회 전체가 슬픔에 잠겼을 당시에도 한인 단체들의 애도는 잠시뿐이었다. 사건의 본질을 짚거나 시스템 개선을 요구하는 후속 행동은 전무했다. 심지어 지난해 6월 LA 한인타운 윌셔 잔디광장에서 열린 ‘양용 사건 규탄 집회’ 〈본지 2024년 6월 3일자 A-1면〉에서 모습을 나타낸 한인 단체장, 기관장, 정치인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이때도 유가족과 지인 외에는 흑인, 히스패닉 등 타인종 시민들이 한인이 있어야 할 자리를 대신했다.
한인 사회의 응집력 강화를 위해서는 한인 단체들이 앞장서야 한다. 정치력 신장을 위해 구심점 역할을 해줘야 한다. 차별적이고 모욕적인 언사로 조롱해도 아무런 반발도 못 하면 한인 사회는 그야말로 영원히 소수계 취급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한인 사회를 위해 나서지 않는 한인 단체가 과연 무슨 필요가 있나.
사회부 김경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