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 최고의 슈퍼스타’ 오타니-저지의 진검 승부가 펼쳐질 줄 알았는데… 오타니와 저지가 전혀 보이지 않는 2024 월드시리즈

2024-10-30

2024 미국 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즈(WS·7전4승제)는 미국 동부와 서부를 대표하는 명문인 뉴욕 양키스와 로스앤젤레스(LA) 다저스의 ‘클래식 매치’로 관심을 모았다. 1957년까지는 뉴욕의 자치구인 브루클린을 연고지로 하던 다저스는 양키스보다 먼저 뉴욕을 연고로 창단된 팀이지만, 양키스에게 인기과 실력에서 밀려 1958년부터 대서양 연안에서 태평양 연안인 LA로 연고지를 옮겼다. 그때 다저스와 함께 동부에서 서부로 이사온 팀이 현재의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도 원래는 뉴욕 자이언츠로 뉴욕을 연고로 하던 팀이었다.

다저스와 양키스는 20세기에만 월드시리즈에서 11차례 만났다. 이는 특정 두 팀이 월드시리즈에서 만난 최다 기록이다. 양키스가 8번, 다저스가 3번 월드시리즈 맞대결에서 승리했다. 다만 21세기에는 이번이 처음 맞붙는 월드시리즈다. 양키스가 2009년 이후 월드시리즈 진출에 실패하기도 했고, 다저스도 1988년 월드시리즈 우승 이후 2017년에야 처음으로 월드시리즈 진출에 성공했다. 두 팀의 황금기가 엇갈리면서 이번 월드시리즈는 1981년 이후 43년 만에 양키스와 다저스가 벌이는 맞대결이다.

두 팀의 역사 외에도 또 하나 관심을 모은 것은 현재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두 슈퍼스타인 오타니 쇼헤이(다저스)와 애런 저지(양키스)의 맞대결이었다. 오타니가 지난겨울 다저스로 FA이적하기 이전엔 아메리칸리그 소속인 LA에인절스에서 뛰었기 때문에 둘은 월드시리즈에서 붙을 수 없었다. 에인절스에서 6년간 뛰며 단 한 번도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한 적 없었던 오타니는 다저스로 이적하자마자 꿈에 그리던 가을야구에 입성했고, 월드시리즈까지 오르며 우승 반지에 도전하고 있다.

오타니가 에인절스 시절 둘은 아메리칸리그 MVP를 두고 다투던 사이다. 2021시즌엔 오타니가 타자로 타율 0.257 46홈런 100타점, 투수로 9승2패 평균자책점 3.18을 기록하는 ‘이도류’를 완벽하게 선보이며 만장일치로 아메리칸리그 MVP에 등극했다.

오타니는 2022년에도 타자로 타율 0.273 34홈런 95타점, 투수로 15승9패 2.33을 기록하며 MVP급 성적을 냈다. 타자로는 직전 해에 비해 다소 하락했지만, 투수로는 1선발급의 성적을 내며 또 한 번 완벽한 ‘이도류’ 시즌을 보낸 것이다. 그러나 2022년엔 저지가 타율 0.311 62홈런 133타점으로 AL 단일 시즌 최다 홈런 신기록을 세웠고, 저지가 1위표 30표 중 28표를 독식하며 아메리칸리그 MVP를 차지했다. 당시 저지의 62홈런은 1961년 로저 매리스의 기록을 61년 만에 갈아치운 신기록이었다.

2023년에는 오타니의 설욕이 펼쳐졌다. 타자로 타율 0.304 44홈런 95타점, 투수로 10승5패 3.14를 기록하며 다시 한 번 만장일치 MVP를 거머쥐었다.

2024년에는 아직 MVP는 발표하기 전이지만, 오타니와 저지는 각각 내셔널리그 MVP, 아메라칸리그 MVP가 확정적인 상황이다. 오타니는 148년의 MLB 역사상 누구도 가보지 않은 영역인 50홈런-50도루의 신기원을 열었다. 오타니의 올 시즌 성적은 타율 0.310 54홈런 130타점 134득점 59도루. 그야말로 만화 같은 기록이다. 지난해 9월에 받은 오른쪽 팔꿈치 수술로 타자에만 집중한 오타니는 방망이만으로도 최고 몸값에 걸맞은 활약을 보여줬다. 타율은 내셔널리그 2위에 올라 트리플 크라운(홈런, 타점, 타율 3관왕)에는 실패했지만, MLB 최초로 지명타자로서 MVP 수상이 확실시되는 오타니다. 저지는 자신의 시그니처인 홈런으로 아메리칸리그를 지배했다. 시즌 중반까지만 해도 2022년 기록한 62홈런을 뛰어넘는 페이스를 선보였으나 시즌 막판 다소 홈런포가 식으며 생애 두 번째 60홈런 고지 정복은 실패했다. 그러나 58홈런 144타점을 기록하며 아메리칸리그를 넘어 메이저리그 전체 홈런 1위, 타점 1위에 올랐다. 2022년에 이은 두 번째 MVP 수상은 확실하다. 다만 저지 역시 타율은 0.322로 AL 3위에 올라 트리플 크라운 달성에는 실패했다.

이처럼 올 시즌 정규리그 때만해도 메이저리그 전체를 씹어먹던 오타니와 저지지만, 정작 최고의 무대인 월드시리즈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오타니와 저지가 지구상 최고의 타자를 두고 진검승부를 펼칠 것으로 기대했던 야구팬들은 김새는 상황이다.

두 선수 모두 1할대의 빈공에 시달리고 있다. 홈런포 1개조차 쏘아올리지 못하고 있다.

오타니는 월드시리즈 1~4차전에서 타율 0.133(15타수 2안타) 0홈런 0타점 2득점에 그치고 있다. 출루율과 장타율을 합친 OPS는 0.478에 불과하다. 장타는 2루타 1개뿐, 정규시즌 내내 상대 베이스를 신나게 훔쳤지만 도루도 1개도 못하고 있다. 도루 실패만 1개다. 디비전시리즈와 챔피언십시리즈를 합친 이번 포스트시즌 성적도 타율 0.246(57타수 14안타) 3홈런 10타점 14득점 OPS 0.811로 정규시즌에 비해 한참 낮다.

저지는 더 심각하다. 월드시리즈 1~4차전에서 타율 0.133(15타수 2안타) 0홈런 1득점 1타점에 불과하다. 선구안이 무너져 삼진만 7개를 당했다. 그나마 3차전부터 볼을 고르기 시작하더니 3,4차전에서 볼넷 1개씩을 얻어냈다. 홈런은 고사하고 2루타 이상의 장타도 없다. 양키스가 3연패로 몰린 4차전 10-4에서 이번 월드시리즈 첫 적시타를 때렸다. 이미 승부가 난 상황이라 영양가는 제로였다. 오타니의 방망이가 월드시리즈 들어 식었다면, 오타니의 방망이는 디비전시리즈 때부터 쭈욱 식어있다. 이번 포스트시즌 전체 성적은 타율 0.152(46타수 7안타) 2홈런 7타점 7득점에 불과하다. 클리블랜드 가디언스와의 챔피언십시리즈에서 홈런 2개를 때려내며 월드시리즈에서는 타격감이 살아나겠지 싶었지만, 다시 죽을 쑤는 모양새다.

오타니와 저지의 방망이가 식어있는 사이 다른 선수들의 활약이 빛나고 있다. 발목 부상으로 인해 뉴욕 메츠와의 챔피언십시리즈까지는 타격감이 죽어있던 다저스의 1루수 프레디 프리먼은 월드시리즈 1차전 연장 10회에 끝내기 만루포를 터뜨리더니 4차전까지 매경기 홈런포를 가동하고 있다.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시절이었던 2021년 월드시리즈 5,6차전을 포함하면 월드시리즈 6경기 연속 홈런이다. 이번 월드시리즈 성적은 타율 0.313(16타수 5안타) 4홈런 10타점. 안타 5개 중 4개가 홈런이다보니 OPS는 무려 1.541에 달한다. 양팀 타자 통틀어 가장 빼어난 성적이다. 다저스가 월드시리즈 챔피언에 오른다면 MVP는 따논 당상이다.

양키스에서는 ‘데릭 지터의 후계자’ 유격수 앤서니 볼피가 빛나고 있다. 양키스가 3연패로 몰린 월드시리즈 4차전에서 1-2로 뒤진 3회 역전 만루포를 터뜨리며 팀을 구해냈다.

오타니와 저지. 누가 먼저 깨어날까. 오타니가 먼저 깨어난다면 월드시리즈는 조기 종료될 가능성이 높다. 저지가 먼저 깨어난다면? 월드시리즈 향방은 다시 한 번 요동칠 수 있다.

남정훈 기자 ch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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