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왕설래] LA 올림픽과 북미 원주민

2025-01-29

‘라크로스’(Lacrosse)라는 단체 구기 종목이 있다. 프랑스어로 ‘막대기’를 의미하는 라크로스는 12세기 무렵 캐나다의 북미 원주민들이 고안해낸 운동 경기로 알려져 있다. 끝에 그물망이 달린 길쭉한 막대(라크로스 스틱)를 이용해 공을 주거니 받거니 하거나 낚아채며 적진으로 달려가 골대에 넣어 득점하는 게임이다. 얼핏 보면 하키와 흡사하다. 오늘날 캐나다에서는 아이스하키와 더불어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로 꼽힌다. 캐나다와 인접한 미국은 물론 과거 캐나다를 식민지로 거느렸던 영국에서도 아주 즐긴다.

1908년 라크로스는 영국 런던 올림픽의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다. 하지만 호응이 별로 크지 않았던지 다음 대회부터는 정식 종목에서 제외됐다. 1928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1932년 미국 로스앤젤레스(LA), 그리고 1948년 런던 올림픽 무대에 다시 등장하긴 했으나 시범 종목에 그쳤다. 그런데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오는 2028년 LA 올림픽을 앞두고 라크로스를 정식 종목으로 부활시키는 결정을 내렸다. 1908년 이후 꼭 120년 만의 일이니 전 세계 라크로스 선수와 애호가들로선 흥분할 만한 일이다.

라크로스의 종주국이라 할 캐나다는 그간 국제 라크로스 대회에 두 개의 팀을 출전시켰다. 하나는 정식 캐나다 국가 대표팀이고 다른 하나는 이른바 ‘하우데노사우니’(Haudenosaunee) 대표팀이다. 하우데노사우니란 캐나다에 거주하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연맹체를 뜻한다. 라크로스가 원주민들에 의해 시작된 운동이란 점을 존중하는 차원으로 풀이된다. 영국이 축구의 종주국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월드컵이나 유럽 선수권 대회(유로)에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 4개 대표팀을 내보내는 특권을 누리는 것과 비슷하다.

2028년 LA 올림픽 주최국인 미국은 전임 조 바이든 행정부 시절 캐나다와 공동으로 IOC에 하우데노사우니 대표팀의 올림픽 출전을 허가해줄 것을 요청했다. 캐나다에 한해 ‘1국가 1대표팀’이란 올림픽 원칙의 예외를 인정해달라는 취지다. 양국 정부는 “하우데노사우니는 거의 1000년 전에 라크로스라는 스포츠를 발명했다”며 “하우데노사우니가 라크로스와 맺은 역사적 인연, 하우데노사우니의 남녀 라크로스 대표팀이 거의 반세기 동안 국제 대회에 출전해 선전을 펼친 점 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끄는 새 행정부 출범 후 미국과 캐나다 사이가 부쩍 나빠졌다는 점이다. 트럼프도 바이든과 같은 입장을 취할지, 아니면 이전 정부의 조치를 번복할지, 또 IOC는 어떤 답변을 내놓을지 궁금하다.

김태훈 논설위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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