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살 소녀가 실종됐다…가족을 파멸로 이끈 '의심'의 시작

2025-01-29

“애가 없어졌어.”

단란했던 한 가족에 들이닥친 날벼락 같은 소식. 주인공 에릭은 아내 바네사로부터 이웃에 사는 8살 소녀 에이미가 실종됐다는 소식을 듣는다. 문제는 자신의 아들 지미가 에이미를 본 마지막 인물이라는 것. 에이미 엄마의 부탁으로 이따금 에이미를 보살폈던 지미는 실종 사건의 가장 유력한 용의자가 되고, 완벽하다고 믿었던 가족의 일상에는 미세한 균열이 생긴다.

지난 8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에서 재연 개막한 연극 ‘붉은 낙엽’은 탄탄한 스토리의 추리물이다. 토마스 쿡의 동명 추리소설이 원작으로 연극 ‘왕서개 이야기’로 동아연극상 희곡상 등을 받은 이준우 연출, 김도영 작가 콤비가 초연에 이어 재연에서도 호흡을 맞췄다.

극은 표면적으로 아동 실종 사건의 범인을 쫓는 구성을 취하고 있지만 사실 믿음의 취약성에 대한 이야기다. “아들이 그랬을 리 없다”던 에릭의 믿음은 사소한 계기로 무너지고 사교적이지 않은 지미의 성격, 어딘가 힘없고 우울해 보이는 걸음걸이까지 에릭의 의심에 불을 지핀다. 아들을 향했던 의심은 점차 형에게로 옮겨가 에릭은 형의 과거를 추궁하기 시작한다. 아내 바네사는 지미의 변호사와 외도 중인 것 같다. 의심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에릭은 자신이 만든 지옥에 갇힌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의심’을 배우들의 동선으로 구현한 점이 흥미롭다. 바네사와 지미는 무대를 벗어났다 들어오는 등 자유롭게 움직인다. 퇴장해 관객의 시야에서 사라졌다가 다시 등장하기도 한다. 반면 에릭은 공연 내내 무대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네모반듯한 프레임 안에 갇혀 있는 것이다.

범인을 찾는 추리물의 형식이고 배우들의 연기가 긴장감을 일으켜 한시도 지루하지 않다. 사건의 실마리가 한 꺼풀 벗겨질 때마다 탄식하면서도, 내가 에릭이었다면 지미를, 바네사를, 형 워렌을 끝까지 믿을 수 있었을까 자문하게 된다.

2021년 초연해 제14회 대한민국연극대상에서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동아연극상, 서울연극제를 휩쓴 수작이다. 공연 예매 사이트에는 미스터리 영화 같은 빠른 전개와 배우들의 섬세한 연기에 대한 호평이 많다.

실종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주인공 ‘에릭 무어’는 김강우·박완규·지현준이 연기한다. 김강우는 연극 ‘햄릿 더플레이’ 이후 8년 만에 무대에 복귀했다. 배우 박완규는 2022년 이 연극으로 백상예술대상 연극부문 남자 연기상을 받았다. 아들 ‘지미 무어’ 역에는 이유진·장석환·최정우가 캐스팅됐다.

공연은 3월 1일까지 서울 중구 국립극장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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