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대선주자 탐구
대선주자 탐구-이재명⑨
대한민국 정치판에서 살아남으려면 ‘패거리’와 ‘자금’이 있어야 한다. 어느 패거리에 들어가 충성 맹세를 하고 돈을 뿌려야 살아남는다. 이런 정치판에 뛰어들 생각이 전혀 없었다.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정치에 대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이하 경칭 생략)의 생각은 위와 같았다. 성남 지역에서 시민운동가로 활발하게 활동하던 당시의 그는 정치인이 될 거라는 생각을 꿈에도 해 본 적이 없었다. 오히려 유명세를 부담스러워하던 그였다. 그의 극적인 삶과 시민운동가로서의 명성에 주목한 KBS의 유명 장수 휴먼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인 ‘인간극장’에서 섭외가 왔을 때 거절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는 전국적인 명망가가 아니라 지역을 지키는 풀뿌리 시민운동가의 역할을 다하겠다는 각오였다.

게다가 ‘패거리’와 ‘자금’이 지배하던 정치판에 대한 반감도 컸다. 그랬던 그는 어떻게 해서 정치에 입문하게 됐을까. 일단 시운이 따랐다. ‘정치하면 망한다’고 확신했던 이재명은 2004년 말 개정된 선거법과 정치자금법을 본 뒤 조금씩 생각을 바꾸게 됐다. 선거에서 15% 이상 득표하면 선거비용 전액을 돌려주는 조항이 생기면서다. 잘만 하면 부패한 기득권 세력과 손잡지 않고도 정치가 가능할 것 같았다.
하지만 결정적 계기는 따로 있었다.
시민병원 설립 주도하다 수배된 이재명
2004년 3월 28일 늦은 오후, 한 남성이 손에 포장된 초밥을 쥔 채 경기도 성남시 태평동 주민교회 지하 기도실 문을 두드렸다. 인하병원 노조 부위원장이던 정해선(전 보건의료노조 수석 부위원장)이었다. 그 기도실에 한 중년 남성이 있었다. 그 남성은 감사 인사를 건넨 뒤 정해선으로부터 초밥을 건네받아 먹기 시작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정해선이 울먹였다.
그가 변호사님이라 부른 그 중년 남성은 41세의 이재명이었다.
그는 그 공간에서 며칠을 숨어 지냈다. 거기 들어올 때만 해도 넘쳐흐르던 울분과 분노는 시간과 공간이 삭여줬다. 차분해진 그에게 남은 건 깊은 사색과 숙고의 시간이었다. 이재명은 그 결과물을 끄집어냈다. 그리고 정해선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결연하게 입 밖으로 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