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부담도 큰데....정부 오락가락 행보에 수소 생태계 '혼돈'

2025-11-04

정부의 오락가락 행보에 수소 생태계가 혼돈에 빠졌다. 2021년 세계 최초로 수소법을 제정하고 청정수소 발전 입찰시장(CHPS)까지 개설했지만, 예정된 입찰이 마감 당일 갑자기 취소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정부가 수소 생태계 조성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보여주고, 일관성있게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탈석탄 정책과 충돌한 ‘암모니아 혼소 발전’

4일 업계에 따르면 청정수소발전입찰(CHPS)을 주관하는 전력거래소는 지난 17일 경쟁입찰 공고를 전격 취소했다. 시장 개설 1년 만에 제도 설계가 사실상 ‘리셋’된 셈이다. 익명을 원한 업계 관계자는 “입찰서 제출을 준비하던 당일 오후, 불과 몇 시간 전에 취소 공고가 게시돼 당혹스러웠다”고 말했다.

한국은 수소경제 활성화를 위해 2021년 세계 최초로 ‘수소법’(수소경제 육성 및 수소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고 그 후속조처로는 청정수소로 발전한 전기를 전력당국이 매년 일정 규모 이상 의무적으로 구매하도록 하는 청정수소 발전의무화 제도를 도입했다.

정부는 입찰 취소 사유를 명확히 밝히지 않았지만, 이재명 정부가 내건 ‘2040년 석탄발전 전면 퇴출’ 정책이 배경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지난해 첫 입찰에서선 석탄·암모니아를 섞어 쓰는 혼소(混燒) 기술을 허용했는데, 석탄발전 퇴출 기조와 맞지 않아 이를 제외하기 위해 입찰을 취소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혼소 기술은 석탄화력발전소에서 수소와 질소의 화합물인 암모니아를 일정 비율 섞어 태워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는 방식으로, 기존 석탄화력 설비를 그대로 활용할 수 있고 가격도 비교적 저렴해 현실적 대안으로 꼽혀 왔다. 수소는 생산·운송·저장 과정의 물류 비용이 높지만, 암모니아는 이미 화학비료·플라스틱 등의 원료로 쓰이며 글로벌 유통시장이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다만 온실가스 대신 질소산화물 등 미세먼지를 유발한다는 부작용이 있고, 탈석탄을 추진하면서 석탄 설비를 다시 가동해야 하는 정책적 모순도 지적돼 왔다. 입찰공고가 취소된 뒤인 지난달 29일,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은 국정감사에서 “석탄발전소 혼소 방식은 중단하는 것이 맞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이에 따라 재공고 시 석탄·암모니아 혼소 발전은 아예 제외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혼소 발전을 준비하던 발전공기업들로선 정책 전환에 따른 혼란이 불가피한 셈이다.

해외에서는 석탄·암모니아 혼소 발전을 ‘좌초 자산’(더 이상 쓸수 없는 설비)이 된 석탄발전소의 마지막 쓰임으로 활용하는 추세다. 일본 최대 발전사 제라(JERA)는 아이치현 헤키난 석탄발전소에서 2027년부터 석탄 연료에 암모니아 20%를 혼합해 상업운전을 시작할 예정이다. 기존 석탄 설비를 급격히 폐쇄하기보다 혼소 기술을 연결고리로 삼아 점진적 탈탄소화를 추진하는 것이다.

높은 ‘가격’ 장벽, 어떻게

업계는 청정수소 발전에 비용이 많이 들고 투자가 필요한 상황이지만, 정부가 이런 현실을 제대로 정책에 반영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지난해 첫 입찰에서 정부가 정한 가격 상한선 보다 기업들의 입찰 가격이 훨씬 높아 4개 발전사 중 한국남부발전(750GWh, 전체의 11.5%)만 낙찰됐다. 올해는 상대적으로 가격이 낮은 혼소 발전 방식이 제외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업계의 운신 폭은 더욱 좁아질 전망이다.

계획 중인 투자도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현재 포스코인터내셔널은 노후 발전소를 수소 혼소 발전이 가능한 LNG발전소로 대체 건설할 계획이고, SK이노베이션은 자사 LNG 설비가 있는 충남 보령 지역에 블루수소 생산 설비 착공을 추진 중이다. 한화임팩트는 한발 더 나아가 기존 LNG 터빈을 수소 100%로 작동하는 ‘수소 전소(全燒) 터빈’으로 개조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기업들의 계획은 모두 낙찰을 전제로 한 투자다. 한 기업 관계자는 “수소와 수소 물류비 자체가 비싸고 암모니아 형태로 수소를 들여와 분해(크래킹)·개질하는 과정 역시 고비용”이라며 “세계적으로도 상용화 초기 단계인 기술을 선제적으로 추진하는 만큼 투자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재경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이제 막 구축 단계에 들어선 시장인 만큼, 정부가 안정적인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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