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발진은 생각 이상으로 일어나기 어려운 일이에요. 행성이 지구를 충격하는 정도의 확률입니다.”
지난 29일 강원도 원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열린 정책설명회에서 전우정 교통과장은 실제 급발진 사고는 천문학적 확률로 발생이 어렵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급발진은 ‘자동차가 정지 상태 또는 매우 낮은 초기 속도에서 명백한 제동력 상실을 동반하는 의도하지 않고, 예상하지 않은 강력한 가속’을 뜻한다. 이런 급발진을 주장하는 사고는 2020년 45건에서 2013년 105건으로 매년 증가했다. 올해도 지난 6월까지 66건에 달한다.
하지만 차량이 전소되는 등 감정이 불가능할 정도로 파손되거나 사고기록장치(EDR) 데이터가 없어 감정이 불가능한 경우를 제외하곤 전부 가속 페달 오조작으로 밝혀졌다.
국과수는 감정을 위해 운전자의 행위를 분석할 수 있는 여러 방안을 활용한다. 대표적으로 사고기록장치(EDR) 데이터 분석, 페달 블랙박스와 함께 페달과 신발에 남은 흔적을 검사하는 고전적 감정기법을 들 수 있다.
EDR은 비행기의 블랙박스와 같은 역할을 하는 장치로, 사고 발생 5초 전부터 사고 직후 0.3초까지 5.3초 동안의 엔진 회전수, 가속페달 밟음량, 차량 속도, 브레이크 밞음 여부 등의 정보를 담고 있다.
국과수에 따르면 EDR의 데이터는 읽기만 가능한 저장공간인 롬(ROM)에 저장돼 조작이 불가능하다. EDR 데이터는 사고 현장 주변 폐쇄회로(CC)TV 영상을 통한 제동등 점등 상태 확인, 시뮬레이션 등으로 추가 검증을 거친다.
페달 블랙박스 영상도 중요한 자료가 된다. 운전자는 브레이크를 밟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론 계속 가속페달을 누르고 있는 모습을 페달 블랙박스로 확인할 수 있다.
사고가 날 때 신발에 난 자국을 확인하는 방법도 있다. 지난 7월 서울 시청역 역주행 사고 당시 가해 차량 운전자는 급발진을 주장했으나 국과수 감정결과 페달 오조작으로 인한 사고로 밝혀졌다. 당시 가해 운전자의 신발에 난 가속페달 자국이 증거로 거론됐다. 페달은 차에 고정되어 있고, 사람은 충격으로 앞으로 쏠리면서 신발에 마찰에 의한 열변형이 생긴다. 그때 흔적으로 이 사람이 어떤 페달을 밟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
전 과장은 “차량에 문제가 있고, 나는 완벽하다. 그리고 내가 밟고 있는 게 가속 페달이 아닌 브레이크 페달이라는 인지오류 내지 확증 편향적 사고가 가속페달에서 발을 못뗴게 한다”면서 “뭔가 차가 이상하다면 발을 떼고 정확히 내가 밟고 있는 페달이 뭔지 확인한 후 브레이크만 밟아도 충분히 사고 위험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국과수 측은 전자식 제어장치 도입으로 제동장치에 오류가 났다는 메시지가 뜨더라도 브레이크 자체는 기계적으로 작동해 무조건 밟으면 서게 된다고 설명했다.
정부와 차량 제조사의 책임이 없는 건 아니다. 페달 오조작을 방지할 기술을 개발해 장착하고, 정부도 이런 주행보조장치 보급에 나서야 한다.
일본 도요타는 ‘플러스 서포트(Plus Support)’라는 안전기능을 도입해 가속페달을 잘못 밟았을 때 발생할 수 있는 급가속을 제어한다. 고령운전자와 초보운전자의 안전을 위한 중요한 기능으로 평가받으면서 이미 판매된 차량에도 장착할 수 있는 시스템도 개발해 제공하고 있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2017년부터 ‘사포카’로도 불리는 ‘안전 지원 차량’(Safe Support Car) 제도를 도입했다. 초음파센서로 장애물을 감지해 출력을 제한하는 ‘페달 오조작 방지장치’(PMPD) 장착 등을 담아 페달 오조작에 의한 사고 건수와 부상자 수를 절반으로 줄였다.
정부와 지자체는 사포카 구매 시 보조금을 지급하거나 보험료를 할인해주는 등의 혜택을 제공하는데 2020년 기준 일본 신차의 약 90%에 PMPD가 장착됐다.
전 과장은 “노인의 이동권은 분명히 보장되어야 하지만, 면허갱신 과정을 강화하고, 면허증을 반납할 땐 충분한 보상을 해야 한다”면서 “제조사 역시 인지오류를 예방할 수 있는 페달 오조작 방지장치 등을 개발해 장착해야 하고, 정부도 이런 장치에 보조금을 지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