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을 사랑했던 철혈군주 숙종

2025-04-07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p.21)

나의 병통이 항상 거칠고 사나운 데 있었으니, 지난날 처분이 이 정도에 지나쳤던 것도 오로지 여기에서 비롯되었던 것이다.

숙종이 스스로 자신의 품성을 평가한 말이다.

숙종은 본인도 자신의 병통이 ‘거칠고 사나운 것’이라 인정할 정도로 거친 면이 있었다. 급한 성정을 다스리지 못해 후회할 때도 많았다. 그래서인지 숙종은 강력한 왕권을 휘둘렀던 철혈군주의 이미지는 있어도 다정다감한 이미지는 별로 없는 편이다.

이런 숙종의 이미지를 바꿔줄 만한 사실이 있다. 실은 숙종이 서책과 예술을 사랑하는 문예군주였다는 점이다. 우리 미술사를 오랫동안 연구한 지은이가 펴낸 이 책, 《어제, 어필을 통해 본 숙종의 문예관》은 숙종이 남긴 글과 서예, 그림에 붙인 시 등을 통해 숙종의 부드러운 면을 새롭게 조명한다.

이를테면 숙종은 어머니 명성대비에게 애정이 담긴 한글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어머니가 출가한 누이동생인 명안공주의 집에 갔다가 하루가 지나도 돌아오지 않자, 사위를 만나서 반가워서 그러시냐며 내일은 부디 들어오라는 애정 섞인 편지를 보냈다.

(p.16)

밤사이 평안하셨사옵니까. 나가실 때 “내일 들어오시옵소서” 했더니, 해창위를 만나서 떠나지 못하시옵니까. 아무리 섭섭하셔도 내일은 부디 들어오시옵소서.”

그런가 하면 훗날 영조가 되는 아들 연잉군이 병에 걸렸다 회복된 뒤 기쁜 마음을 글로 써서 내려주기도 했다. 숙종이 연잉군에게 하사한 글과 그림을 보면 서로 애틋하게 여기는 부자지간이었고, 문화예술 취향도 상당히 통하는 부분이 많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p.18)

질환이 빨리 나은 것은

실로 신명의 조용한 도움이 있었음이다.

기쁨이 어찌 끝이 있으랴.

더욱 새봄의 복과 경사를 맞이하리라.

그뿐만 아니라 자신이 몸이 아파 8달 동안 병석에 있을 때 연잉군과 연령군, 두 왕자가 밤낮으로 간병하여 몸이 낫자 글과 그림을 내려주며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현재 전하는 <연잉군상>은 이때 그려진 것으로, 영조의 왕자 시절 모습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p.56)

지금 내가 몸이 아플 때 너희들이 여덟 달 동안이나 밤낮으로 시측*한 노고를 어찌 잊겠느냐? 특별히 박동보에게 명해 초상화를 그려주고, 또 내구마*도 하사하노라.

* 시측(侍側) : 곁에서 모심

* 내구마(內廐馬) : 임금의 나들이에 쓰기 위해 임금의 말과 수레를 관리하던 관아에서 기르는 말

글과 그림을 좋아하는 숙종의 기질을 물려받아서인지, 영조도 즉위하기 전에 그림을 자주 그릴 정도로 예술에 조예가 깊었다. 영조가 연잉군으로 있을 때 신선도를 그리자 숙종이 제화시(題畫詩, 그림의 제목과 관련된 시를 지어 화폭에 적어놓은 글)를 적기도 했다. 별로 가르치지도 않았는데 그림을 잘 그리는 아들에 대한 ‘은근한 자부심’이 느껴진다. 스스로 잘하는 자식을 보는 부모의 흐뭇한 마음은 임금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p.93)

눈썹과 눈매가 얼마나 총명한지,

등 뒤에는 검을 메고 있네.

처음 그린 것인데도 스스로 좋으니,

평일 가르치지도 않았네.

한편, 옛 임금들은 문화예술을 좋아하면서도, 너무 깊이 몰입하면 국정운영에 방해가 된다고 여겨 스스로 삼가는 자세가 있었다. 숙종도 예외가 아니어서 자칫 문화예술을 좋아하는 마음이 방탕한 태도로 흐를까 경계하면서도, 기본적으로 끌리는 마음을 시로 남겼다.

(p.104)

빛바랜 오랜 비단 몇 년이나 되었나.

나는 도서, 서화의 묘한 것을 좋아하니,

깊은 궁 맑은 낮에 때떄로 펼쳐보면,

한가로운 마음의 경지 스스로 깨치네.

전무후무한 왕후 폐위로 강성 군주로만 널리 알려진 숙종은 사실 매우 영민한 군주였고, 문화예술을 좋아하는 감성적인 측면도 갖추고 있었다. 숙종을 이어 영조와 정조대에 실현된 문예 부흥의 바탕에는 숙종의 ‘문화예술 사랑’이 흐르고 있었다.

조선 임금 가운데 가장 많은 서화와 시문을 남긴 숙종. 임금의 시문집인 《열성어제》를 본격적으로 펴내고,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 불에 탄 서화의 복구에도 큰 힘을 기울인 그의 노력은 정치사 중심으로 소비되어 온 그의 면모에 새로운 면을 더한다. 숙종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고 싶은 독자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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