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문화] 예술은 특별하지 않다

2025-12-04

핀란드 ‘듣는 문화’로 오케스트라

한국선 노래방이 음악 저변 확대

일상 문화가 그 나라 예술 만들어

지역마다 교육·무대 선순환 이어져

예술의 성취는 특별한 제도나 정책에서만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한 사회의 ‘일상의 문화’가 결국 그 나라의 예술을 만든다. 사람들이 어떻게 하루를 보내고, 어떤 취향과 습관을 공유하느냐가 그 사회의 예술적 기초가 된다. 우리는 그것을 의식하지 못하지만, 일상 속의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예술의 씨앗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쌓인 문화는 언젠가 재능을 발견하고 키워낼 토양이 된다.

한국의 피아노 문화가 그 좋은 예다. 어릴 때 누구나 한 번쯤 피아노 학원에 다닌다. 그래서 피아노는 단순한 취미나 사교육의 한 장면이 아니라, 생활 속에 깊이 스며 있는 문화가 되었다. 비록 중간에 그만두더라도, 피아노를 배운 경험은 남는다. 그 아이들이 나중에 음악을 전공하지 않아도, 공연을 찾는 관객이 되고, 음악을 이해하며 즐기는 어른이 된다. 그리고 그 수많은 아이 중 단 한 명이 특별한 재능을 가진다면, 그 재능을 일찍 발견하고 키워줄 수 있는 환경이 이미 마련되어 있는 셈이다. 조성진이나 임윤찬 같은 피아니스트가 어린 시절부터 두각을 드러내고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이렇게 넓고 촘촘한 음악 저변 덕분이다.

한국의 노래방 문화도 비슷하다. 한국에는 노래방이 정말 많다. 길을 걷다 보면 몇 걸음마다 보이는 간판, 혼자서도 부담 없이 들를 수 있는 코인 노래방까지, 노래는 이제 특별한 취미가 아니라 일상의 한 부분이 되었다. 한국에서는 누구나 노래한다. 음정과 박자를 몸으로 익히는 이 일상적 습관이 사실상 전 국민을 가수로 만들고 있다. 그 안에서 음악적 표현력이나 리듬감이 자연스럽게 길러지고, 어떤 이는 우연히 자신의 재능을 자각한다. 마찬가지로 PC방 문화가 전 세계적인 e스포츠 강국을 만든 것처럼, 예술적 잠재력도 일상의 즐거움 속에서 발현된다. 결국 중요한 건, 예술이 생활의 일부가 될 때 비로소 재능을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처럼 예술이 생활 속에서 자라나는 나라가 또 있다. 그중 하나가 핀란드다. 핀란드의 일상은 한국만큼 분주하지 않다. 사람들은 조용히 듣고, 기다리고,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여기서 이 ‘듣는 문화’가 핀란드 예술의 바탕이 된다. 이 작은 북유럽 국가는, 클래식 음악의 중심부와는 거리가 멀지만, 유독 뛰어난 지휘자들을 꾸준히 배출해 왔다. 그들이 오케스트라를 이끌며 만들어내는 세밀한 균형감은, 결국 ‘잘 듣는 능력’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 감각은 개인의 재능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토양 속에서 자란다. 핀란드는 인구 약 550만명에 불과하지만, 전국에 30개가 넘는 관현악단이 활동하고 있다. 국민 1인당 오케스트라 수로는 세계 1위다. 국가와 지방정부가 ‘연극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법’을 통해 이들을 꾸준히 지원하고, 도시마다 자체 오케스트라가 공연을 열며 시민들이 일상적으로 음악을 접한다. 덕분에 지휘자와 연주자들은 어릴 때부터 실제 무대를 경험하며 음악을 몸으로 익힌다. 즉, 듣는 문화가 공연 문화로, 공연 문화가 다시 교육의 기반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러한 환경의 중심에는 세계적인 음악교육 기관인 시벨리우스 아카데미가 있다. 이곳에서 지휘를 배우는 학생들은 단지 지휘봉을 휘두르는 법이 아니라, 오케스트라의 숨소리를 듣고, 악기 간의 대화를 이해하는 법부터 익힌다. 대부분의 지휘 전공 학생들이 각 악기를 직접 연주할 줄 아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렇게 핀란드는 세계적인 지휘자 에사 페카 살로넨, 유카 페카 사라스테, 수한누 린투 등 수많은 지휘자를 배출했다.

이렇게 핀란드는 제도나 정책 이전에, ‘듣는 문화’라는 생활의 태도가 음악의 뿌리가 되었다. 그 조용한 습관이 오케스트라 문화를 키우고, 오케스트라가 다시 새로운 지휘자들을 길러내는 구조를 만들었다. 핀란드의 일상이 낳은 예술의 결실이, 이제 세계 무대에서 울려 퍼지고 있는 것이다.

허명현 음악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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