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에서 최초로 윤리학책을 쓴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격이 최고의 행복이다’라고 했다. 독일의 세계적 시인 괴테도 같은 결론을 내렸다. 그들에 비하면 동양의 스승이었던 공자는 더 일찍 같은 가르침을 주었다. 서양인들은 ‘사람’을 지칭할 때 개인과 복수를 구별한다. 동양인들은 나, 너, 우리를 구분하기 이전에 ‘인간(人間)’이라는 개념을 상용했다. 수를 따지기보다 ‘사람은 누구나’ 동일하다는 뜻이 강했던 것 같다. 인격을 갖춘 사람이 행복하다는 것은 모든 사람이 다 행복한 것 같아도 인격을 갖추지 못한 사람은 행복다운 행복을 누리지 못한다는 뜻이다. 인격보다는 성격대로 사는 사람들, 유능하지 못해 존경받지 못하는 사람들은 수준 높은 행복을 누리기 어렵다는 일반적인 개념을 지적한 것 같다. 인격은 근대사회에 와서는 사회인이나 지도자의 자질을 뜻하기도 한다.
인격에 따라 행복 좌우되지만
사랑 주고받으며 인격도 성장
공동체의 질서·역사 창조하는
인격 갖춘 사랑이 희망의 원천

감정은 인격을 포괄
그러나 인간 행복은 인격을 갖추기 이전부터 있었다. 만족스럽다든지 감사하다는 마음은 일찍부터 갖고 자랐다. 윤리적 가치보다 인간적 정서가 행복의 원천이다. 가정에서나 청소년 교육 기간에 행복 의식은 충분히 높은 비중을 차지해 왔다. 교육계나 종교사회에서 사람은 인격 이전부터 행복 의식을 지니고 성장해 왔다.
감정은 인격을 포함한 더 큰 인간적 삶의 영역을 차지한다. 인간관계와 행복을 소중히 여기는 불교의 자비심, 이웃을 나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기독교의 교훈은 인격을 키우는 것도 사랑이며 인격의 목적도 사랑이라는 뜻을 포함하고 있다. 사람은 늙으면 성격이 본능으로 돌아가며 이성적 판단이 흐려지면 인격의 퇴락도 뒤따른다고 한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행복과 고통은 느끼면서 산다. 인격이 부족하더라도 나름대로 만족스러운 즐거움과 기쁨은 누리면서 산다.
오히려 인간은 사랑을 받으면서 자라고 사랑을 나누면서 성숙해진다. 그리고 더 높은 사랑을 베푸는 동안에 인격도 성장하는 것이 삶의 본질이다. 인격이 사랑의 본질이기보다는 사랑이 인격을 높여 준다고 볼 수도 있다. 우리는 인격이 높은 사람을 대할 때는 그들의 삶의 가치를 배우고 따르게 된다. 공자·석가·예수 같은 분을 존경하는 것은 그들의 숭고한 인간애에 공감 동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랑은 인격보다 먼저이면서 완성이라는 공감을 자아낸다. 어머니의 인격을 따지는 자식은 없어도 사랑은 충분히 느낀다.
나는 도산, 고당 조만식, 인촌 같은 분을 존경하면서 청소년기를 보냈다. 그들의 인격 이전에 애국심, 겨레를 위해 스스로 희생시키는 마음과 삶에 공감과 존경심을 가졌다. 나를 키워 준 많은 스승, 나이 들어서는 함께 일했던 친구들을 회상할 때는 인간다운 삶의 공감과 함께 누군가를 위해 일하고 있다는 동지 의식과 믿음이 앞섰던 것 같다. 물론 그들의 인격은 선물이다. 그러나 공감과 사랑이 인격과 더불어 있었고, 먼저 사랑이 있었고, 후에 인격을 느끼지 않았는가, 라고 회상한다.
내 과거를 돌아본다. 어렸을 때는 자연인으로 살았다. 누구나 같은 어린 시절이다. 조금씩 철들면서부터는 내 성격대로 자라며 살았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본성대로 살았다. 사회 속에서 자라고 자아를 느끼면서는 내 인격과 사회인으로서의 자신을 찾아 노력했다. 어느 정도의 인격을 갖춘 후에는 그 인격만큼의 인생을 살면서 일했다. 그것이 지금까지의 나였다.
주변 사람들과 약간 다른 점이 있었다면 정년퇴직하면서 지금부터는 나를 위해 사는 것보다 이웃과 사회를 위해 살면서 자신을 목적 삼지 않겠다는 생각을 굳혔다. 그 대상이 누군가. 나를 위하고 사랑해 준 선배와 공동체 이웃들이다. 큰 사랑을 받고 살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내 인격조차 목적이 아니고 공동체와 그 전체적 가치에 순응해야 한다는 뜻이다. 당연히 그렇게 살아야 한다.
그때 한 생각이 떠올랐다. ‘나에게는 두 별이 있었다. 진리를 향하는 그리움과 겨레를 위하는 마음이다. 그 짐은 무거웠으나 사랑이 있었기에 행복했다’라는 93세 때의 고백이다. 부족하지만 그 사랑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 사랑이 내 삶의 출발이었고 종말이 되었다. 그 사랑에서 얻은 것, 사람을 인간답게 이끌어 준 것이 내 인격이다. 그러니까 사랑이 있어 인격이 자랐고, 그 인격만큼의 행복이 따랐던 것이다.
사랑은 열린 사회 창출
사랑이 있는 동안은 인격이 감소되지 않는다. 그 인격만큼의 행복이 뒤따랐다. 시련이 있어도 극복하려고 노력했고 고통과 불행이 내 길을 막았을 때도 극복할 수 있었다. 인격은 전진하거나 더 성장하지 못해도, 사랑은 스스로 넓히며 희생을 각오할 가능성을 배가시켜 주곤 했다. 그러기에 사랑은 사회와 역사의 개선과 창조의 원동력이 될 수 있었다.
이런 생각을 정리하면 인격은 나의 윤리적·사회적 가치로 존속했으나, 사랑은 도덕성보다는 종교적 신앙에 속하는 가치였던 것 같다. 인격은 공동체와 함께한 나와 우리의 정신적 질서였으나 사랑은 우리 공동체의 사회적 질서와 역사를 창조해 가는 희망의 원천이었을 것이다. 인간애가 있었기에 인격을 갖출 수 있었고 사랑으로 열린 사회를 창출하고, 사랑이 있어 공동체인 국가도 행복을 창조할 수 있을 것이다.
인격이 나와 우리의 최고 행복일 수 있다. 그러나 인격을 갖춘 사랑이 우리 모두의 행복과 희망을 약속해 주는 최선의 행복이다. 사랑이 있는 곳에 행복이 있기 때문이다.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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