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울린 참혹한 사진첩…5·18때 독일 기자 힌츠페터가 찍었다

2024-10-15

“어느 날 부잡시로운 우리 딸이 (5·18 사진첩을) 훔쳐봤나 봐요. 당시 비극적인 사진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한강(54)의 아버지 한승원(85)이 한 말이다. 그는 자신이 몰래 갖고 있던 5·18 광주민주화운동 사진첩을 딸이 몰래 본 일화를 소개하며 "한강이 열세살 때 본 5·18 사진첩은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하게 된 계기가 된 것 같다”라고 말했다.

한강 “5·18이 인생을 바꿔놓았다”

한강 작품에는 5·18 당시 인간의 폭력성을 고찰한 게 투영돼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강은 “광주민주화운동이 인생을 바꿔놓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한승원은 “(딸은)5·18을 (직접) 경험하지 못했다”라고 했다. 한강은 1970년 광주에서 태어난 후 효동초등학교 4학년 때 가족과 함께 서울로 올라갔다. 그는 “5·18 이후인 80년대 서울에서 살다가 광주에 가끔 가면 은밀하게 돌아다니던 사진첩이 있었다”며 “독일 기자가 찍어서 만든 사진첩과 동영상을 사서 (서울로) 가지고 왔는데 딸이 (그걸) 훔쳐봤다”라고 했다. 한승원은 이런 딸을 두고 “부잡시롭다”라고 했다. ‘부잡시롭다’는 ‘장난스럽다’는 의미의 전라도 사투리다.

힌츠페터 ‘광주 비디오’ 암암리 상영돼

한승원이 확보한 독일 기자 사진첩은 고(故) 위르겐 힌츠페터가 찍은 것으로 파악된다. 영화 ‘택시운전사’의 실재 인물인 힌츠페터는 5·18 참상을 전 세계에 알린 언론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광주에서 촬영한 영상과 사진첩은 5·18 참상을 가장 먼저 전 세계에 알리는 자료로 평가받는다. 이 영상은 ‘광주 비디오’라는 이름으로 대학가를 중심으로 암암리에 상영됐다.

“한강, 5·18기록관서 살다시피 했다”

한승원은 “(딸이)책상 위에 올려둔 5·18 사진첩을 본 게 계기가 돼 『소년이 온다』를 쓰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 한강은 『소년이 온다』 집필 전 5·18 관련 자료조사에 혼신의 힘을 쏟았다고 한다. 한승원은 “강이가 ‘5·18 관련 자료가 필요하다’는 말에 5·18기념사업 회장을 소개해줬다”며 “그때 받은 (5·18) 자료를 꼼꼼하게 읽고, 5·18을 연극으로 표현하려는 사람도 찾아갔다”고 했다.

한승원은 “강이의 작품 외에도 5·18 소설이 매우 많다. 그런데 강이가 쓴 소설은 환상적이고 신화적인, 그리고 시적인 것이 담겨있으니까 노벨상을 받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본다”고 했다.

“5·18, 한강이 속속들이 읽은 역사”

앞서 한승원은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접한 직후 “강이 소설에는 (우리 세대) 작가에게 없는 신화적인 거, 문화인류학적인 그윽한 정서가 있다. 문체가 아주 아름답고 섬세하다”며 “전통적인 리얼리즘을 이어받아서 섬세하게 묘사하는 힘이 뛰어난 점이 심사위원을 매료시켰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세대 작가는 발자크 같은 유럽 소설가 영향을 받아 리얼리즘 소설을 주로 쓴다. 리얼리즘 소설은 저항소설이고 그리고 다큐멘터리 같은 소설”이라며 “그런 소설은 유럽에 많이 있는 것이니까 (주목받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냈는데 한강은 새로운 문체를 서구에 선보여 호평을 받게 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광주광역시=최경호·황희규 기자 choi.kyeong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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