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기아, 올해 상반기 역대 반기 최대 매출액 경신
美 관세 25%...점유율 사수 전략 아래 영업익 손실 감소
향후 4년간 260억 달러 투자...현지 제철소·로봇 공장 건설도
[서울=뉴스핌] 김승현 기자 = 취임 5주년을 맞이한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최근 1년은 그 어느때보다 '고난의 행군'을 이어간 시기였다. 지난 1월 취임한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한 '관세 전쟁'이 주된 원인이었다. 또한 지난해 말 계엄 사태와 탄핵으로 이어진 국내 정치 불안은 내수시장을 위축시켰다.
그럼에도 창업주 고(故) 정주영 회장과 정몽구 명예회장으로부터 이어진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현대차그룹의 뚝심 DNA가 이번 위기에도 발현되며 정의선 회장은 그룹 성장세를 이어가는 데 성공했다.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가에 25%라는 '상식 밖'의 관세를 부과한 트럼프 행정부의 압력에도 정의선 회장은 과감한 미국 현지 투자 결정과 혁신 사업 도전을 통해 고난의 시기를 돌파하고 있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자동차와 기아는 올해 상반기 150조833억원의 합산 매출액을 기록했다. 현대차가 92조7162억원, 기아가 57조3671억원으로 현대차, 기아, 합산 모두 역대 반기 최대 매출액이다. 지난해 상반기 대비 현대차는 약 8.2%, 기아는 6.7%, 합산은 7.6% 성장한 수치다.
다만 현대차·기아는 상반기 13조86억원의 합산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현대차가 7조2352억원, 기아가 5조7734억원으로 지난해 상반기 대비 각각 약 7.7%, 18% 감소했다. 합산 수치로는 약 10.5% 줄었다.
매출액이 역대 최대 실적임에도 영업이익이 10% 넘게 감소한 것은 오롯이 미국 관세 때문이다. 현대차그룹은 25%의 고관세에도 시장 점유율을 사수하겠다는 기조 아래 관세 부과 후에도 기존 가격을 유지했다.
이로 인해 지난 2분기에만 현대차·기아 합산 관세 손실은 1조6142억원에 달했다. 그럼에도 현지화 속도를 높이고 비용을 절감하며 현대차·기아의 합산 영업이익은 반기 기준으로 사상 처음 글로벌 2위에 올라섰다. 영업이익률은 8.7%로 폭스바겐(4.2%)을 비롯한 경쟁업체들의 영업이익률을 2배 이상 상회했다.
경쟁국인 일본과 유럽연합(EU)의 자동차 관세가 25%에서 15%로 낮아져 적용된 '기울어진 운동장'에서도 정의선 회장의 전략이 성공했다는 방증이다.

현대차그룹은 트럼프발(發) 보호무역 기조 강화라는 근본적 위기 상황을 현지화 가속도로 돌파하겠다는 방침이다.
정 회장은 지난 3월 방미길에 올라 트럼프 대통령이 배석한 백악관에서 올해부터 4년간 미국에 210억 달러(한화 약 29조원)를 투자한다고 직접 발표했다. 취임 전부터 관세 폭탄을 예고했던 트럼프 시대에 대비해 현지화 속도를 높여 돌파구를 모색하겠다는 정 회장 특유의 선제 대응이다.
현대차그룹은 이후 지난 8월 이재명 대통령 취임 후 첫 한미정상회담을 기해 당초 210억 달러에서 50억 달러를 늘린 260억 달러(한화 약 36조원)를 투자한다고 밝혔다. 관세로 인한 영업이익 감소에도 오히려 투자 규모를 늘린 결정이다.
미국 내 자동차 생산능력도 확대한다. 지난해 70만대였던 미국 완성차 생산능력을 큰 폭으로 늘리고 전기차, 하이브리드, 내연기관 차 등 다양한 차종 라인업을 선보여 미국 소비자의 니즈에 더 신속하게 적극적으로 대응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부품 및 물류 그룹사들도 설비를 증설해 부품 현지화율을 높이고 배터리팩 등 전기차 핵심부품의 현지 조달을 추진하는 등 완성차-부품사간 공급망도 강화한다.
또한 미국 루이지애나 주에 270만톤 규모의 전기로 제철소를 건설한다. 저탄소 고품질의 강판을 생산해 자동차 등 미국 핵심 전략산업에 공급할 예정이다.
현대제철의 루이지아나 제철소가 완공되면 현대차그룹은 미국내에서 철강-부품-완성차로 이어지는 밸류 체인을 구축하게 돼 경쟁력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철강에 대한 관세율이 50%인 상황에서 미국에 제철소를 건설함으로써 현지화에 대한 의지를 더욱 강조했다.
3만대 규모의 로봇 공장도 신설한다. 신설 로봇 공장을 미국 내 로봇 생산의 허브로 자리매김시킴으로써 향후 확대될 로봇 생태계의 중심 역할을 한다는 구상이다.

이러한 정 회장의 현지화 강화 전략은 이후 발표된 현대차의 투자 전략에도 반영됐다. 호세 무뇨스 현대차 대표이사 사장은 지난 9월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2025 CEO 인베스터 데이(CEO Investor Day)'를 개최했다.
2019년부터 매년 실시하고 있는 CEO 인베스터 데이를 처음으로 해외에서 개최했는데, 그 장소로 최대 자동차 시장인 미국의 핵심 도시이자 글로벌 경제, 금융, 문화의 중심지인 뉴욕으로 정한 것 역시 미국 현지화 전략의 상징으로 풀이된다.
무뇨스 사장은 CEO 인베스터 데이에서 북미 특화 중장기 전략을 대거 공개했다. 특히 현대차는 미국 시장에서 판매되는 자동차 중 현지에서 생산되는 차량 비중을 점진적으로 확대할 방침으로, 이를 위해 미국 내 두 생산기지인 앨라배마 공장과 HMGMA의 가동에 박차를 가하기로 했다.
지난해 10월 생산 개시 및 올해 3월 준공식 개최 등으로 현지 생산이 본격화된 HMGMA는 연간 생산능력을 현재의 30만대에서 2028년까지 50만대로 확대할 계획이다. 아울러 현지 공급망 대응력도 강화해 나간다.
현대차는 픽업트럭, 상용차 등 북미 시장을 공략할 다양한 도전도 계속해 이어 간다. 2021년 출시한 북미 전용 준중형 픽업트럭 '싼타크루즈'의 성공을 이을 중형(Midsize) 픽업트럭을 2030년 이전까지 현지 시장에 선보이기로 했다.
또한 엑시언트 수소전기트럭과 트레일러 법인 현대트랜스리드(Hyundai Translead)의 우수한 트레일러 상품, 이르면 2028년 미국 현지 생산이 시작되는 전기 상용 밴 등을 앞세워 북미 상용차 시장 공략을 강화해 나갈 계획이다.
kimsh@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