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한 약재 산책] 두꺼운 껍질 속에 흐르는 길-후박(厚朴)

2025-11-06

겨울의 입구에서 몸속 기운이 잘 돌지 않는다고 느낄 때가 많다. 손발이 차고, 밥을 먹어도 더부룩하고, 가슴까지 막힌 듯 답답하고. 이럴 때 쓸 수 있는 약재가 바로 후박(厚朴)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후박은 두껍고 묵직한 나무껍질이다. 이 껍질 속에는 막힌 길을 뚫어주는 신묘한 힘이 숨어 있다.

후박은 목련과 식물(Magnolia officinalis Rehd. et Wils.)의 줄기나 뿌리껍질을 말린 것이다. 옛사람들은 이를 후피(厚皮), 적박(赤朴)이라 불렀고, 봄에 20년 이상 자란 나무를 골라 껍질을 벗겨 햇볕에 말리고, 다시 쪄서 말아 건조해 약재로 사용했다.

우리나라 남해안과 울릉도에도 ‘후박나무’가 자라지만, 이 녹나무과 식물은 이름만 비슷할 뿐 약효는 다르다. 진짜 한약재로 쓰이는 것은 목련과의 당후박이다.

후박은 맛이 맵고 쓰며 성질이 따뜻하다. 매운맛은 순환을 돕고, 쓴맛은 기운을 아래로 끌어내려 준다. 비위에 찬 기운과 습기가 몰려 기가 막힐 때, 그래서 소화가 안 되고 배가 더부룩하고, 속이 냉하고 가스가 찰 때 후박이 길을 내어준다.

대표적인 처방으로 반하후박탕이 있다. 목에 덩어리가 걸린 듯 답답할 때, 소화가 막혀 가슴이 조일 때 자주 쓰이는 처방이다. 반하와 후박이 만나 마치 굳게 잠긴 마음과 위장을 동시에 열어주는 듯하다.

후박을 달일 때는 껍질을 팥알 크기로 잘게 부수어야 향과 약효가 잘 우러난다. 달인 후박은 짙은 갈색의 탕액으로 독특한 향이 코끝에 남는다. 이 향이 바로 기운을 움직이는 신호다. 찬 음식에 소화가 더디고 복부 팽만이 잦은 사람에게는, 후박차로 2~3g 정도를 달여 하루 한두 번 마시는 것도 도움이 된다.

약리학적으로는 후박에서 추출한 ‘마그놀롤(magnolol)’과 호노키올(honokiol) 성분은 항염, 항균 작용이 있어 치주균 억제 효과가 있음을 입증했고, 일부 연구에서는 불안 완화와 스트레스 조절에도 긍정적인 결과를 보였다. 옛 본초가 현대의 과학 언어로 다시 해석되고 있는 셈이다.

주의해야 할 것은 후박은 ‘따뜻한 약’이라는 것이다. 속에 열이 많거나, 위가 자주 쓰리고 화끈거리는 사람에게는 맞지 않을 수 있다. 특히 임신 중에는 복용을 피해야 한다. 한의학 고서에도 “후박은 기를 아래로 내리므로, 임산부에게는 금한다”고 적혀 있다.

후박을 오래 다루다 보면, 그 두꺼운 껍질 안에도 세월이 켜켜이 쌓여 있음을 느낀다. 나무가 오랜 바람과 추위를 견디며 만들어낸 그 두께 속에 멈춘 기운을 다시 흐르게 하는 온기가 있다. 그래서 나는 후박을 ‘막힌 길을 여는 약’이라 부른다.

몸의 길이 열릴 때, 마음의 길도 함께 풀린다. 오늘 하루가 막혀있다고 느껴진다면, 후박차 한 잔을 음미해보시라. 그 은은한 따뜻함이, 당신의 기운을 움직이게 할지도 모른다.

최미선 한약사

[저작권자ⓒ 울산저널i.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