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후 제재만으론 한계···CEO 책임 강화 시급"

2025-06-24

올해도 은행권의 금융사고가 잇따르면서 책무구조도가 근본적인 한계를 드러낸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책무구조도 도입으로 사후 책임 소재가 명확해졌지만 실효적인 예방장치로 작동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조직 내 윤리적 감수성을 높이고 CEO의 책임을 강화하는 근본적인 개선 노력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24일 금융권에 따르면 올해 들어 토스뱅크 27억원 횡령, IBK기업은행 40억원대 부당 대출, NH농협은행 불법 대출 의혹 등의 금융사고가 잇따라 드러났다. 이들 은행은 사고 직후 감독당국에 보고하거나 검찰 수사에 협조하겠다고 밝혔지만 내부통제 시스템 부실과 책임 소재를 둘러싼 논란이 가시지 않고 있다.

이달 초 토스뱅크는 재무팀장이 2주에 걸쳐 법인계좌에서 개인계좌로 약 27억8600만원을 빼돌린 사실을 뒤늦게 확인했다. 외부 자금이 외부로 빠져나가는 과정을 회사가 미리 차단하지 못했다는 건 내부통제 기능에 허점이 있었다는 방증이다.

NH농협은행도 수십억원대 불법대출 의혹으로 지난 23일 검찰의 압수수색을 받았다. 검찰은 서영그룹이 농협은행으로부터 30억∼40억원대 불법대출을 받은 혐의를 포착해 수사에 착수한 상태다.

이달 IBK기업은행에서도 경기도의 한 지점에서 지점장 등 직원 7명이 수년간 40억여원 규모의 부당 대출을 저지른 사실이 내부 감사로 적발됐다. 기업은행은 지난해 초 882억원 규모 부당대출 사건 이후 내부통제를 강화했지만 금융사고를 끊어내지 못했다.

이처럼 사고가 잇따르자 현재의 책무구조도가 실효성 있게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는 우려가 확산되는 분위기다. 여전히 조직 전체의 내부통제 강화보다 책임 떠넘기기식 결과 처벌만 강조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호주 ANZ은행, 제3자 컨설팅으로 조직문화 개선

해외에서는 조직문화 개선을 감독 전략으로 삼는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최근 호주 금융감독청(APRA)은 2023년 4월 ANZ은행 글로벌마켓사업부의 국채 금리 조작 사건을 계기로 ANZ그룹에 비재무 리스크·문화 개선 이행안(CEU)을 요구했고 ANZ는 이를 제출해 승인받았다.

이 이행안에는 2억5000만달러의 추가 요구자본 적립과 함께 그룹 전체의 리스크관리 문화에 대해 독립적인 제3자로부터 점검을 받고 개선 작업을 수행하겠다는 계획이 담겼다.

APRA는 조직문화 관점에서 금융사고의 근본원인과 행동 유발요인을 파악하고 문제를 해소하는 데 감독 초점을 맞췄다. 경영진이 비윤리적 행위를 포함한 비재무 리스크관리 중요성과 책임을 간과해 금융사고로 이어졌다는 게 컨설팅의 결론이다.

김진선 우리금융경영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ANZ의 개선 이행안은 파편적이고 표면적인 개선활동에서 벗어나 조직문화의 고질적 취약점을 파악하는 데 집중했다"며 "국내 금융그룹도 지금까지의 내부통제 체계 강화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윤리적 기업문화 확립과 근원적 개선활동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금융감독원은 올해 업무계획에서 금융권의 영업 관행·내부통제 문화를 근본적으로 개선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개선 과제는 주로 책무구조도 운영과 성과보수제 점검 등에 국한돼 있어 문화적 진단 체계의 내실화나 실질적 감시 기능 강화까지는 이르지 못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전문가 "CEO 책임 형식적···사반스-옥슬리 법 벤치마킹해야"

책무구조도는 CEO를 포함한 고위 경영진의 책임 명시를 법적으로 강제하는 제도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CEO가 내부통제 실패에 대해 실질적 책임을 지거나 중징계를 받기는 어렵다. 대부분 사고 이후 중간 간부나 실무진 선에서 조치가 이뤄지고, CEO는 "보고를 받지 못했다"는 식의 해명으로 책임을 회피할 수 있어서다.

서지용 상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뉴스웨이와의 통화에서 "책무구조도는 책임 소재 명확화라는 취지는 분명하지만 사고 발생 이후 문책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예방 장치로서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며 "내부통제 의무가 강화됐다고 해도 직원 인식 변화가 따라오지 않으면 시스템은 무력화될 수밖에 없다"고 짚었다.

이어 "CEO의 책임을 실질적으로 강화하고 독립적인 컴플라이언스 기구가 외부 인사 중심으로 구성돼야 내부 견제가 가능하다"며 "미국의 사반스-옥슬리 법처럼 CEO가 내부 회계 통제에 대한 법적 책임을 직접 지는 구조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CEO의 책임이 명확해지면 조직 전체가 내부통제에 대한 감수성을 갖게 되고, CEO 스스로도 내부통제를 주요 경영 이슈로 인식하게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사반스-옥슬리 법은 지난 2002년 미국에서 엔론과 월드컴 회계 부정 사태를 계기로 제정된 법으로, 기업의 회계 투명성과 내부통제를 강화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다. 이 법은 CEO와 CFO가 재무제표의 적정성에 직접 서명하고, 허위 기재나 오류가 있을 경우 형사 처벌까지 받을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끝으로 서 교수는 "우리나라는 컴플라이언스 조직이 내부 인사 위주로 꾸려지다 보니 독립성과 전문성이 부족하고, 같은 조직 안에서 인사이동을 반복하는 구조에서 감시와 견제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외부 인력을 중심으로 구성된 독립적인 감시기구가 상시적으로 CEO에게 보고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춰야 실질적인 통제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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