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97회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조연상(조 샐다나)에 빛나는 ‘에밀리아 페레즈’는 트랜스 젠더에 대한 얘기이다. 이런 소재를 낯설어 하는 사람들에게는 충격적일 것까지는 아니겠지만 낯설고 기괴한 이야기일 수 있다. 게다가 배경은 멕시코이다. 이국적이다. 해외에서의 반응은 뜨거웠지만 국내에서는 어떨지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영화 ‘에밀리아 페레즈’는 두 가지 점에서 그 ‘전이(trans)’의 욕망이 강하게 드러난다. 하나는 성 전환을 넘어서 트랜스 휴먼, 곧 인간 변이까지를 꿈꾼다는 점이다. 주인공 델 몬테(칼라 소피아 가스콘 1인2역)는 멕시코에서 가장 잔혹한 마약 카르텔의 두목이다. 그가 눈앞에 있다는 것만 해도 사람들은 심장이 떨려 혼비백산할 정도이다. 그는 애초에 얼굴이 알려져 있지도 않다. 그런 그가 어느 날 갑자기 변호사 리타(조 샐다나)를 부른다.

리타는 악덕 로펌에서 일하며 먹고 살기 위해 정의에 눈감고 돈이 되는 사건만을 좇아 살아가는, 자신의 현재적 삶에 깊은 회의를 느끼고 있는 참이다. 얼마 전에도 아내를 때려서 살해한 한 부호 남자의 변호를 맡았으며 증인을 검시관을 매수해 사건을 뒤집기까지 했다. 그런 리타를 델 몬테 부하들이 두겁을 뒤집어 씌워 납치한다. 리타는 그간 델 몬테의 돈 세탁 같은 ‘잡일’을 도왔으나 이번만큼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낀다. 리타는 곧 델 몬테의 완벽한 신분 세탁, 곧 여성으로 성 전환을 한 이후에 발생할 모든 법적 사회적 문제를 정리하는 일을 맡는다. 당연히 막대한 돈을 받는다. 그녀는 다니던 로펌을 때려 치우고 델 몬테가 스위스에서 수술 후 오랜 치료를 받는 동안 자신 역시 런던에서 새로운 인생을 찾으려 한다.
인간이 성을 바꾸면 본질도 바뀌게 되는가. 외형이 바뀌면 성정이 변하는 것일까. 아니면 이미 자신 안에 갖고 있던 여성성이 수술까지 결심하게 한 것일까. 그 앞 뒤 전후의 요인은 과연 어떤 것이 정답인 것일까. 분명한 것은, 그리고 놀랍게도, 사람들을 가차 없이 잔혹하게 살해해 온 델 몬테가 언제부턴가 자신에게 여성성이 있음을 발견했으며 그래서 또 언제부턴가 그 모든 ‘악마의 일’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다는 것이다. 단순히 라이벌 세력이나 경찰의 눈을 피하는, 도피와 은둔을 목적으로 성전환 수술을 꾀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특히 남자는,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자신의 성기를 제거하는 수술까지 감행하지는 못한다. 남자에게 있어 ‘거세 공포증’만큼 두려운 것은 없다. 델 몬테는 에밀리아 페레즈(카를로 소피아 가스콘)로 거듭난 후 작정한 듯 자신을 완벽하게 변이시키는 데 성공한다. 델 몬테는 이제 돈이 많은, 풍만하고 매혹적인 여성으로 변신한다.

영화 ‘에밀리아 페레즈’가 주력하는 또 다른 전이의 욕망은 영화의 형식과 내용에 대한 것이다. 서사가 지닌 흐름만으로 짐작하기에 이 영화의 장르는 갱스터 무비이다. 물론 델 몬테가 나오는 장면은 그렇다. 그러나 또 한번 놀랍게도 영화는 뮤지컬이다. 노래 장면으로 전편이 이어지지는 않지만 주요 장면 모두가 출연 배우들이 노래하고 춤추는 장면들로 채워져 있다. 한편으로 주인공 에밀리아 페레즈가 자신이 몰래 버린(수술을 하느라) 아내 제시(셀레나 고메즈)와 두 아이들을 되찾아 가정을 복원하려 한다는 점에서는 가족영화이기도 하다. 페레즈는 중간에 자신이 ‘묻어 버린(살해를 지시한)’ 라이벌 갱단 조직원의 여자와 사랑에 빠지고 육체 관계까지 맺는다. 둘은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영화는 러브 스토리로까지 나아 간다. 갱스터 영화에서 뮤지컬 영화에 이르기까지 영화는 다소 무리하다 싶을 만큼 이야기의 중심을 향해 횡단과 종단을 오간다.
영화를 연출한 프랑스의 유명감독 자크 오디아르(‘러스트 앤 본’ “예언자’ ‘파리, 13구역’ 등)의 목표는 모든 장르를 뒤섞어, 인공적으로 완전히 다른 장르를 만든 후(마치 성전환 수술을 하듯) 매우 새로운 느낌의 영화를 만들어 내겠다는 것이었다고 보여진다. 모든 뮤지컬 영화가 그렇듯이 ‘에밀리아 페레즈’도 놀라우리 만큼 인공적이다. 당연히 작위적이다. 사람이 대화를 하다 말고 노래를 부른다. 그리고 춤을 춘다. 전통적 서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어색해 할 만 하다. 그런 장면들을 이어 가다 보니 영화는 어쩔 수 없이 촬영과 조명에 막대한 공을 들였다. 장면 하나하나가 뮤지컬 무대에서 잘 연습된, 배우들의 군무를 보는 느낌을 준다. 배우들이 춤을 추는 모습은 마치 세계적인 무용가 피나 바우쉬의 작품을 보는 느낌마저 준다. 그렇다면 자크 오디아르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영화적 전환을 넘어 변이까지도 이루어 냈는가. 일부는 그렇다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일부는 왜 이 영화가 뮤지컬적인 요소까지 결합했는지 다소 이해하기 어렵다고 할 것이다. 분명한 것은 오디아르의 영화적 실험이 꽤나 놀랍고 신선하다는 점에서 찾아진다. 오디아르는 적어도, 영화가 계속 새로운 지점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그 진보성을 입증해 내는 데는 성공한 셈이다.

이번 아카데미에서 여우주연상 수상에는 실패했지만(숀 베이커 감독의 영화 ‘아노라’가 너무 강세였고, 결국 주연상은 26살의 신예 마이키 매드슨에게 돌아갔다.) 사실 카를라 소피아 가스콘은 충분히 주연상을 탈만 했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가스콘은 이 영화에 나오기 전 카를로스 가스콘에서 카를라 소피아 가스콘으로, 그러니까 남성에서 여성이 됐다. 한번 여성이 된 사람의 경우에는 의도적으로도 자신에게 잔재처럼 남아 있는 남성성을 제거하려 애쓴다. 그러나 가스콘은 이번 영화에 나오면서 턱 수염과 얼굴 근육의 특수 분장을 통해 다시 델 몬테라는 남자로 변신한다. 사전 정보가 충분치 않다면 이 둘을 같은 여자, 혹은 같은 남자였던 사람으로 구분하지 못할 정도이다. 충분히 주연상 감이었지만 SNS에 올린 인종 및 민족 차별적 발언이 그녀의 발목을 잡았다. 사람들은 가스콘이 성소수자인 만큼 그녀의 차별 의식에 반기를 들었고 그게 그녀로 하여금 수상권에서 멀어지게 했다. 자크 오디아르가 이루려 했던 영화의 전이, 세상의 전이를 불가능하게 한 요소는 한 개인의 그릇된 판단에서 나왔다. 아이러니다.

영화 ‘에밀리아 페레즈’는 인공적이고 그래서 다소 부자연스러운 면이 있지만 재미있고 격렬하며 섹시한 영화이다. 감독상을 수상한 숀 베이커의 말처럼 ‘극장에서 사랑에 빠질 수 있는 영화’이며 TV 수상기가 아무리 크게 나온다 한들 이건 극장에서 봐야 할, 전통적 극장주의의 작품이다. 조연상을 받은 조 샐다나의 다양한 연기 스펙트럼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그녀는 드라마 연기에서 노래와 춤 연기까지 영화를 온통 휘젓고 다닌다. 배우란 이런 것이다라는 점을 보여 준다. 영화 ‘에밀리아 페레즈’는 고매한 성취를 보여 준다. 적어도 이제 우리에게 트랜스 젠더의 존재는 더 이상 부자연스럽지 않게 느끼게 한다. 그게 정말 어디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