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재의 의도, ‘지옥’의 의도

2024-11-07

최근 서로 다른 넷플릭스 시리즈에서 ‘의도’라는 단어의 쓰임새가 흥미로웠다. 먼저 요리 예능 ‘흑백요리사’에서 미쉐린(미슐랭) 3스타 안성재 셰프의 심사 기준. “당연히 맛있어야 하고, 또한 (요리사가) 의도한 바가 전달되어야 한다.” 예컨대 한 예선 참가자가 한국·유럽·멕시코 스타일이 가미된 LA 갈비찜을 선보였을 때 안 셰프는 맛있게 시식하고도 탈락을 줬다. “재료를 섞는다고 해서 아이덴티티(정체성)가 생기진 않는다”는 심사평엔 ‘자기만의 것이 부족하다’는 일침이 담겼다.

안 셰프가 일상적인 요리에까지 이런 기준을 요구할 것 같진 않다. 하지만 프로의 세계, 특히 파인다이닝에선 그런 눈높이가 셰프와 손님 사이의 암묵적인 규칙이다. 때로는 식탁에 펼친 의도 전달이 실패할 수 있고 애초부터 밋밋하거나 개성 없을 수도 있지만, 일단은 나의 색깔을 창조하는 게 중요하다. 그런 규칙하에 우리는 창작자의 ‘의도’를 묻고 그 세계에 호응하거나 거부하면서 자신의 취향을 만들어 간다.

반면에 웹툰 원작의 시리즈물 ‘지옥’(감독 연상호)에서 의도란 단어는 전혀 다른 무게감으로 다가온다. 어느 날 사람들 앞에 ‘천사’가 나타나 “너는 언제 언제 죽어서 지옥에 간다”고 고지하고, 그대로 ‘시연’(지옥의 사자가 나타나 실제로 죽이는 행위)이 벌어지면서 세상은 불안·공포에 휩싸인다. 이때 사이비 선지자 정진수가 등장해 “신의 의도는 우리가 더 정의롭게 살라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실제 신에게 확인할 수 없고 모든 건 정진수가 만들어낸 이야기에 불과한데도 개인의 불행과 죄를 연결하면서 세상은 파국으로 치닫는다.

‘지옥’에서 신의 의도(라고 참칭되는 메시지)와 안성재가 말하는 요리 의도(음식 철학)의 차이점은 일방적이냐, 상호 소통 가능하느냐다. 후자에선 비록 불완전할지라도 각자의 세계가 교감하고 이런 만남 속에 또 다른 세계가 만들어진다. 반면에 전자에선 인간의 자율성이 거세된 채 무조건 따르기만을 강요당한다. 불통의 세계다.

불통은 왜 우리를 좌절시키나. 세계 최초로 인공지능(AI) 알파고와 대결했던 바둑기사 이세돌은 최근 서울대 강연에서 AI가 두는 수의 의도를 알지 못해 대국 복기가 무의미했고 바둑이 재미없어졌다고 고백했다. 이기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승률 위주로 설계된 알파고와 달리 인간 기사로선 어떻게 이겼느냐, 아니 어떻게 해서 졌는가가 중요한데, 이러한 소통 부재에 한계를 느꼈다면서다. 연상호 감독은 “모르는 것을 알려고 하는 게 가장 인간적”이라고 했는데, 이세돌의 욕망과 좌절도 그래서 인간적이다. 바라건대, AI 시대 바둑이 지금과 같이 머무르진 않을 것이고 또 다른 ‘인간의 수’가 더해지면 새로운 세계가 열릴 것이다. 비록 의도한 것과 세상이 달리 굴러간다 해도, 패배 위에서 ‘나만의 요리’를 해내야 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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