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중국 인공지능(AI) 모델인 '딥시크(DeepSeek)' 열풍이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다. 정확한 비용에 대한 논란이 있긴 하지만 기존 대비 적은 비용으로 오픈AI 최신 추론 모델 'o1' 수준 AI 모델을 개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충격을 줬다. 이는 그동안 빅테크 기업 전유물로 여겨진 거대 AI 모델에 대한 진입 장벽이 낮아졌음을 의미한다. 이제 누구나 더 쉽게 강력한 AI 모델을 활용하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언어 모델을 넘어 신약 개발, 에너지, 소재 분야로까지 그 영향력이 확장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거대 AI 모델 자체를 개발하기보다는 AI와 산업을 융합하는 'AI+X' 전략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특히 소재 산업은 장기간 지속되는 연구와 높은 실패 가능성이 동반되기 때문에 공공 주도의 장기적 투자가 필수다. 실제로 최근 거대 AI를 활용해 시행착오를 최소화하고 개발 시간과 비용을 획기적으로 단축하는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구글의 'GNoME'과 마이크로소프트의 'MatterGen'이 있다.
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소(NIST) 연구에 따르면 소재 산업에 AI를 적용할 경우 개발 시간은 71% 감소하고 소재 발견 속도는 44%, 특허 출원은 39% 증가하는 효과가 나타난다고 한다. 이에 따라 해외 선진국은 소재 AI를 선점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적 지원과 대규모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일본, 독일, 미국 등은 정부 주도로 거대 소재 AI 연구를 적극 추진하고 있으며 AI 기반 소재 개발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소재 산업 디지털 전환을 가속화하고 기존 소재 연구 방법론을 혁신하는 데 기여한다.
국내에서도 AI와 자율 제조 분야 투자가 이뤄지고 있지만 아직은 소재 개발을 위한 거대 AI 개발에 대한 전략적 집중이 부족한 게 현실이다. AI로 노벨화학상을 받은 '알파폴드(AlphaFold)' 사례에서 보듯이 소재 분야에서의 AI 적용 효과는 지대하다. 결국 우리나라도 산·학·연이 결집해 이 분야를 반드시 선점해야만 하는 과제에 직면했다. 전통적 소재 연구 방식은 시간이 오래 걸리고 비용이 많이 소요되지만 AI 기반 연구는 이러한 단점을 보완할 수 있다. 거대 AI 모델이 방대한 데이터에서 패턴을 학습하고 예측함으로써 연구자들은 좀 더 효율적으로 새로운 소재를 발견하고 개발할 수 있게 된다.
이를 위해 우리는 대규모 집중 투자와 거대 소재 AI 선도를 위한 협력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선진국과 비교해 부족한 투자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관련 전문 인력과 인프라를 보유한 공공이 중심이 돼 협력체계를 구축하고 장기적·집중적 투자를 추진하는 것이 필요하다. 즉 정부와 산업계가 긴밀히 협력해 AI 기반 소재 연구개발(R&D)을 적극 추진하고 공공과 민간 데이터 공유와 협업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특히 데이터 중심 연구 환경을 조성하고 대규모 슈퍼컴퓨팅 자원을 확보함으로써 연구자가 효율적으로 AI 기술을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
초거대 AI 기술의 경우 GPU 인프라 등 높은 진입 장벽과 실패 위험으로 인해 일부 빅테크 기업에 독점되고 있다. 이를 극복하려면 정부와 공공 연구기관이 장기적인 투자와 연구를 통해 거대 소재 AI 모델을 개발하고 이를 오픈소스 형태로 공개해 관련 기업이 자유롭게 활용하도록 하는 생태계 구축이 필수다. 오픈소스 거대 AI 모델은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이 혁신적 소재 연구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며 궁극적으로 산업 전체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도 이바지할 것이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자율 실험실과 멀티모달 거대 AI 모델의 활용이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자율 실험실을 통해 다양한 형태의 멀티모달 데이터를 빠르게 수집하고 이를 바탕으로 거대 소재 AI 모델을 적용하면 소재 산업 경쟁력을 한층 강화할 수 있다. 자율 실험실은 로봇과 AI를 활용해 실험 과정을 자동화하고 실험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수집·분석할 수 있도록 해준다. 연구자는 더욱 정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신속하게 소재 연구를 진행할 수 있으며 연구 실패율도 현저하게 줄일 수 있다.
멀티모달 거대 AI 모델은 숫자, 텍스트, 이미지, 실험 데이터 등 다양한 데이터를 통합적으로 분석해 연구자가 좀 더 효과적인 연구 방향을 설정하도록 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신규 거대 소재 AI 시장을 선점하고 나아가 글로벌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다. 나아가 소재 연구뿐만 아니라 에너지 저장, 환경친화적 소재 개발 등 지속 가능한 미래 기술 개발에도 이바지할 수 있을 것이다.
소재 산업은 국가 경제와 산업 전반은 물론 최종 제품 성능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분야다. AI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소재 R&D 속도를 높이고 효율성을 극대화한다면 우리나라는 미래 첨단 산업을 주도하는 핵심 국가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지금이야말로 거대 소재 AI를 선도하기 위한 과감한 투자와 전략적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다. 공공과 민간이 협력해 거대 AI 기반 소재 혁신을 주도한다면 우리는 미래 산업 혁명의 중심에 설 수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국가 차원에서 거대 AI 기반 소재 연구를 위한 정책적 지원과 장기적인 로드맵 수립도 필요하다. AI를 활용한 소재 개발이 단기적 연구 과제로 끝나는 게 아니라 장기적 국가 산업 전략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법적·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국내 연구기관과 글로벌 AI 및 소재 기업 간 협력을 강화해 기술 교류와 공동 연구를 촉진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 이 같은 노력이 함께 이뤄질 때 우리나라는 비로소 거대 소재 AI 시대를 주도하는 선도 국가로 도약할 것이다.
최철진 한국재료연구원장
〈필자〉최철진 원장은 1961년생으로 서울대 금속공학과를 졸업하고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재료공학 석·박사를 받았다. 1986년 한국재료연구원(KIMS)에 입사해 나노분말재료그룹장, 나노기능분말연구그룹장, 분말·세라믹연구본부장 등을 수행했다. 2024년 한국재료연구원 제7대 원장에 취임했다. 대한금속재료학회 부회장, 한국과학기술총연합회 이사, 국가과학기술자문(심의)회의 기계·소재 전문분과 위원장직을 맡았다. 2010년 산업기술연구회 이사장상, 2014년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상, 2016년 국무총리 표창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