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토피아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곳이라는 뜻이다. 없는 곳을 다녀온 여행을 회고하는 토머스 모어는 궁여지책으로 유토피아를 저 아득히 멀리 있는 섬으로 묘사했다. 설정 자체가 역설적이니, 모어는 그 역설을 대수롭지 않은 듯한 문체로 밀어붙였다. 나침반 얘기가 그렇다. 유토피아의 섬에는 나침반이 없었다. 파도 잔잔한 여름에만 항해했다. 어둡고 바람 불고 추운 날에는 엄두도 내지 않았다. 낯선 외지인이 나침반을 소개해 주자, 섬사람들은 당연히 열광했고 더 이상 어둠과 겨울을 무서워하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나침반이라는 바늘 하나가 뱃길의 경계를 넓혀놓자, 사람들은 마치 위험을 상쇄해주는 부적처럼 의지하기 시작했다. 나침반 하나만 믿고 너나없이 더 멀리 더 오래 바다로 나가다 보니, 배가 길을 잃고 항구로 돌아오지 못하는 일이 외려 더 많아졌다. 그래서 사람들은 기술이 열어젖힌 가능성 위에 뒤늦게 질서를 얹었다. 바다에 길을 만들고, 불을 켜고, 규칙을 세웠다. 그 규칙 속에서 나침반이 가리키는 뱃길은 더 안전해졌다.
나침반이 바다의 길을 열었다면, 전등은 육지의 밤을 밝혔다. 바람만 불어도 흔들리던 불꽃과 달리, 전등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 안정된 빛이 만들어내는 신뢰 덕분에 사람들은 더 이상 밤을 두려워하지 않고 서서히 삶의 찬란한 일부로 만들어갔다. 그런데 이 빛도 오래가지 않아 ‘밤을 도와주는 도구’에서 ‘밤을 확장하는 도구’로 바뀌었다. 전등이 켜진 순간부터 밤은 인간의 것이 아니라 기계와 공장의 것이 되었다. 조립라인 위로 전등이 줄지어 밝혀지고, 야간노동이 출현했다. 전등은 노동시간을 자연광으로부터 ‘해방’시켰고, 일터에서 시간의 경계는 흐려졌다.
거대한 착각도 같이 생겼다. 전등이 밤을 없앴듯이, 삶의 육체적 리듬에서도 밤을 지울 수 있을 것이라는 착각. 그 대가는 컸다. 기계는 한밤에도 돌아가고, 사람들은 그 움직임에 맞춰 자신의 시간을 저당잡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침반이 생겼다고 해류가 얌전해진 것은 아니듯이, 전등이 생겼다고 인간의 피로가 절전된 것은 아니었다.
달빛이 사라졌다고 해서, 인간의 신체가 새벽 두 시를 정오처럼 받아들이는 기능을 얻는 것도 아니었다. 사람들은 밤을 밝히는 전등 아래서 일하다 다치고 죽었다.
그래서 세상은 다시 전등을 끄는 법을 찾아나섰다. 일자리가 없어지고 개인의 일할 자유를 침해하며 밤에만 일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특히 차별적이라는 반대의 목소리도 높았지만, 야간노동에 대한 의학적 진단과 안전사고 보고서 앞에서 반대의 불빛은 희미해졌다. 여성과 아동의 야간노동 금지로부터 시작해서 지난 100년 동안 많은 나라는 전등 아래서 이루어지던 노동을 줄이려 했다. 그 흐름의 정점이 1990년에 채택된 야간노동에 관한 국제협약이다.
바야흐로 디지털 시대다. 이제 밤새 물건을 만들 뿐만 아니라 세상은 거대한 ‘배달 라인’이 되었다. 공장에서 버튼 하나로 기계가 돌아가듯, 휴대폰 화면을 누르는 순간 도시의 밤이 회전하기 시작한다. 다만 조립라인에서 기계가 하는 일을 ‘배달 라인’에서는 사람이 한다. 전등 밑에서 일할 뿐만 아니라, 전등을 밝히며 내달린다. 새벽배송이 그렇게 탄생했다. 새벽배송은 밤에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도록 설계된 발명품이다. 소비자의 시야에 열심히 등장하는 것은 ‘도착 시간’뿐이고, 과정은 거의 삭제되어 있다. 이른 새벽 문 앞에 놓인 작은 상자는 마치 밤 동안 자동적으로 생성된 물건 같다. 그 상자 하나를 위해, 어떤 사람은 밤을 건너뛰고, 어떤 사람은 밤을 억지로 붙잡고, 어떤 사람은 밤이라는 공간을 완전히 잃어버린다.
그 논리의 끝에서 우리는 ‘번개배송’이라는 이름까지 보게 되었다. 그 번개가 생산하는 속도 뒤에는, 인간이 스스로 조율해온 생체의 박자가 빠르게 흔들리는 소리가 숨어 있다. 자동차 전등의 밝음이 아무리 강해도 사람의 눈은 어둠을 전제로 만들어져 있다. 길거리의 전등이 밤을 쫓아내는 데 성공한 것은 사실일지 몰라도, 밤이 인간 안에서 사라진 적은 없다. 삶의 리듬 속의 밤을 잊으면, 삶 자체가 서서히 무너진다. 다만, 그 위협은 여전히 어둠 속이라서, 세상이 수고스럽게 비춰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다.
이제 다시 한번, 세상은 자동차 전등을 줄여가는 방법을 찾게 될까. 어둠 속에서 더 멀리 가려고 만든 나침반이 아니라, 어둠 속에서 얼마나 멀리 가지 말아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나침반 같은 것 말이다.

<이상헌 국제노동기구(ILO) 고용정책국장 <왜 좋은 일자리는 늘 부족한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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