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 경로 바뀌자 남대서양 구름도 달라졌다

2025-11-25

[이미디어= 황원희 기자] 무장 조직의 공격으로 홍해 항로가 막히면서 선박들이 아프리카 남단 희망봉을 돌아가는 우회 운항을 택하자, 그 여파가 수천 ㎞ 떨어진 남대서양 상공의 구름에까지 미쳤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대기오염 규제로 선박 연료의 황 함량을 줄이자, 선박 배출이 구름을 바꾸는 능력도 크게 떨어졌고, 이는 기후 예측의 가장 큰 불확실성 가운데 하나였던 ‘에어로졸-구름 상호작용’을 정량화할 수 있는 드문 기회가 됐다는 평가다.

플로리다주립대학교(FSU)의 마이클 다이아몬드(Michael Diamond) 대기과학자와 릴리 보스(Lily Bost) 대학원생 연구팀은 과학저널 ‘대기화학 및 물리학(Atmospheric Chemistry and Physics)’에 발표한 논문에서, 2020년 국제해사기구(IMO)의 연료 황 규제가 발효된 이후 선박 연료 속 황이 약 80% 줄어들면서, 이전의 ‘더 더러운’ 연료에 비해 구름 방울 형성 효과가 약 67% 감소했다고 밝혔다.

다이아몬드는 “전 세계 해운의 예기치 않은 항로 변경은 에어로졸-구름 상호작용을 정량화할 수 있는 독특한 기회를 제공했다”며 “당신의 ‘실험실’이 대기라면, 이런 실험을 매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더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기회였다”고 말했다.

IMO는 2020년 1월부터 대기오염을 줄이기 위해 선박 연료의 황 함량을 크게 낮추도록 의무화했다. 선박 연료를 태우면서 나오는 황산염 에어로졸은 구름 방울을 더 많이, 더 작게 만들어 구름을 ‘밝게’ 하고, 이 밝아진 구름이 태양빛을 더 많이 반사해 지구를 일시적으로 식히는 역할을 해왔다.

이른바 ‘에어로졸-구름 상호작용’으로 불리는 이 과정은, 온실가스로 인한 지구 온난화의 약 3분의 1을 가려온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에어로졸은 며칠~수주만 대기 중에 머무는 데다, 구름 자체가 매우 변동성이 크기 때문에, 이 상호작용은 글로벌 기후 예측에서 가장 큰 불확실성으로 꼽혀왔다.

다이아몬드의 이전 연구에서도 IMO 2020 이후 주요 해상 운송 경로 위의 구름들이 더 크고 개수가 적은 물방울로 이뤄진다는 사실이 관측된 바 있다. 과학자들은 특히 2023~2024년 대서양 해양 폭염에서, 해양이 흡수하는 햇빛이 얼마나 늘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 황 규제 이후 구름 변화가 어느 정도 기여했는지 두고 논쟁을 이어왔다.

이때까지의 추정치는 “구름 변화가 10% 수준”이라는 보수적 평가부터 “80% 이상 대규모 감소”라는 주장까지 매우 넓게 갈려 있었다.

연구의 결정적 계기는 홍해에서 비롯됐다. 2023년 11월 이후 바브 알만답 해협 일대에서 무장 세력의 공격이 이어지자, 많은 선박들이 홍해와 수에즈운하 대신 아프리카 남단 희망봉을 도는 장거리 우회 항로를 택했다.

그 결과, 상대적으로 낮고 얇은 구름이 넓게 깔려 있고 선박 배출에 매우 민감한 남동대서양 해역을 지나는 선박 수가 짧은 기간 동안 급증했다. 갈등으로 인해 항로가 바뀐 만큼, 날씨 변화나 정책 효과가 아닌 ‘선박 배출 증가’라는 한 가지 요인만으로 구름이 어떻게 변하는지 관찰할 수 있는 거의 완벽한 자연 실험 환경이 만들어진 셈이다.

위성 관측에 따르면, 이 지역 대기 중 이산화질소(NO₂) 농도가 뚜렷하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NO₂는 IMO 2020의 황 규제 대상이 아닌 선박 엔진 배출물로, 선박 활동 증가를 보여주는 신뢰할 만한 지표로 사용돼 왔다. 연구팀은 이 NO₂ 증가를 ‘선박 교통량 폭증’의 증거로 삼고, 같은 구역에서 규제 이전과 이후의 구름 특성을 직접 비교했다.

분석 결과, 2024년 한 해 동안 남동대서양을 통과한 선박 수는 이전보다 약 두 배에 이르렀지만, 이로 인한 구름 액적(물방울) 형성에 미치는 영향은 IMO 규제 이전보다 전반적으로 약해진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황 저감 규제 대상이 아닌 NO₂와, 황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구름 방울 수 변화를 비교한 결과, IMO 2020 발효 이후 선박 배출이 구름 특성을 바꾸는 능력은 67% 줄어든 것으로 분석됐다.

연구팀은 “청정 연료 사용이 구름 형성에 미치는 영향을 확실히 줄였으며, 이는 오염과 구름 반응 사이의 관계를 수치로 제시함으로써 기후 시뮬레이션을 개선하는 데 중요한 제약 조건을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이번 결과가 지구의 에너지 수지(에너지 균형)를 추정할 때 붙어 있던 ‘오차 범위’를 줄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에어로졸-구름 상호작용에 대한 불확실성이 줄어들수록, 정책 입안자는 환경 규제와 장기 기후 목표 사이의 균형점을 보다 정확하게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연구는 또 대기질 개선 정책과 기후 대응 사이의 복잡한 ‘트레이드오프(상충 관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황 에어로졸은 단기적으로는 지구를 식히는 냉각 효과를 가져오지만, 호흡기·심혈관 질환을 유발하는 대표적인 유해 대기오염 물질이기도 하다.

연구에 따르면 IMO의 황 규제는 이미 전 세계적으로 수만 명의 조기 사망을 예방한 것으로 추정된다. 결국, 인체 건강 보호를 위해 대기 오염 물질을 줄이면, 그동안 이 오염 물질이 만들어왔던 ‘냉각 효과’가 약해지면서 지구 기후 시스템의 반응도 함께 재구성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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