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교황의 묘한 줄타기…프란치스코 받들며 정통파 달랜다

2025-05-13

14억 가톨릭 신자들의 새 수장으로 즉위한 교황 레오 14세가 포용적인 교회를 추구한 전임자인 프란치스코 교황의 핵심 가치를 잇겠다는 의지를 강조하면서도 프란치스코 교황과 반목하던 보수파들을 달래는 듯한 신호를 보내며 균형잡기를 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2일(이하 현지시간) '프란치스코의 포용적인 접근과 전통 사이에서 균형을 추구하는 레오 14세' 제하의 기사에서 새 교황의 초반 행보를 이같이 진단했다.

WSJ은 레오 14세가 지난 8일 콘클라베(추기경단의 비밀회의)에서 신임 교황으로 선출된 이후 등장한 공식 무대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유지를 강조하면서도 가톨릭 정통파들이 흡족해할 만한 미묘한 제스처를 취한 점에 주목했다.

레오 14세 교황은 선출 바로 직후 성 베드로 대성전 중앙 발코니에 설 당시부터 지난 9일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에서 추기경들과 공동 집전한 미사, 11일 성 베드로 대성전의 발코니에서 한 첫 축복 메시지, 12일 전 세계 언론인과 첫 공식 대면에서 일관되게 소외된 자와 약자를 위한 포용적인 교회를 역설하고, 우크라이나 등 전 세계의 전쟁을 멈춰야 한다며 평화의 목소리를 내는 등 프란치스코 교황을 계승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레오 14세가 지난 10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안장된 이탈리아 로마 시내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전(성모 대성전)에 찾아가 묘소를 참배한 것도 프란치스코 교황의 뜻을 계승하겠다는 점을 대외적으로 공식 천명한 것으로 읽혔다.

하지만 레오 14세는 이런 한편으로는 프란치스코 교황과 차별화된 모습도 여러 차례 드러냈다. 우선 교황으로 선출된 직후 성 베드로 대성전 중앙 발코니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을 때의 레오 14세의 복장부터 프란치스코 교황과는 뚜렷한 차이를 보였다.

교황 선출 직후 화려한 복장을 거부한 채 흰색 수단만 입고 등장한 프란치스코 교황과는 달리 레오 14세는 새로 선출된 교황들이 전통적으로 해 온 복장대로 진홍색 모제타(어깨 망토)와 화려한 자수로 장식된 영대(목에 걸어서 가슴 앞에서 무릎 정도까지 늘어뜨리는 좁고 긴 띠)를 착용한 채 성 베드로 광장 앞에 운집한 신자들 앞에 처음으로 섰다.

이탈리아 언론에 따르면, 레오 14세는 또한 거주지 역시 역대 교황의 웅장한 처소인 사도궁을 택할 것으로 전해졌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생전 사도궁의 교황 처소를 쓰지 않고 바티칸 경내 소박한 게스트하우스인 '산타 마르타의 집'에 주로 머물렀다.

레오 14세가 가톨릭 정통파들이 중시하는 교회의 '통합'을 거듭 강조하고 있는 점도 가톨릭 보수파들이 반길 만한 지점이라고 WSJ은 지적했다. 레오 14세가 콘클라베의 첫 투표가 시작된 지 이틀째 4차 투표만에 추기경 133명 중 100표를 넘는 표를 얻는 압도적인 지지로 새 교황으로 선출된 것은 프란치스코 교황 재위 당시 보수파와 진보파의 이념적 갈등을 치유할 통합적인 인물에 대한 추기경들의 열망이 반영됐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싱가포르 출신의 윌리엄 고 추기경은 WSJ에 "새 교황은 내면에 프란치스코 교황을 일부 품고 있지만 전통도 일부 지니고 있다"며 "그가 (가톨릭) 좌우의 양 극단 사이에서 균형을 잡길 바란다. 교회의 정통은 지키되 자비로워야 한다"고 WSJ에 말했다.

형식을 깬 프란치스코 교황의 파격적 행보에 심기가 불편했던 정통파들은 형식 면에서 교회의 전통으로 회귀하는 듯한 레오 14세의 모습을 반기고 있다.

보수 가톨릭 매체인 '렘넌트'의 마이클 J. 매트 편집장은 미국 워싱턴포스트(WP)에 "광장을 굽어보는 교황 처소의 창문 불빛이 다시 들어올 것"이라며 "좋은 신호"라고 말했다.

WP는 이 같은 레오 14세의 초반 행보와 관련, 그가 프란치스코 교황과의 선명한 연속성을 보여주면서도 자신만의 색깔도 드러내고 있다고 평가했다.

한편, 예수회 잡지 '아메리카'의 전 편집자였던 토머스 리스 신부는 레오 14세는 즉흥적으로 연설하는 경향이 있던 프란치스코 교황과는 달리 미리 준비한 원고를 이용하는 등 스타일 상으로도 차이를 보인다며 "(레오 14세는)교황으로서 자신을 소개하는 데 있어 어느 정도 격식을 차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그러면서도 "하지만 그의 마음은 프란치스코처럼 가난한 이들과 함께한다"며 본질 면에서는 레오 14세가 프란치스코 교황과 연결돼 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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