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러미 리프킨 “역사상 가장 큰 위기이자 기회…AI, 매우 제한적 활용을”

2025-06-08

‘3차 산업혁명’ 어떻게 맞이해야 하나

제러미 리프킨 미국 경제동향연구재단 이사장

1·2차 중앙집중형 산업혁명과 달리 3차 산업혁명은 분산적…핵심인 AI와 재생에너지, 누구나 접근할 수 있어

미·중 관세전쟁 등은 기존 지정학적 세계 갈등…진짜 위기는 홍수·가뭄·산불 등 국경, 경계 없이 발생하는 ‘생태적 위기’

‘글로컬 생물지리권’으로 패러다임 전환 필수적…AI가 인간 정체성 대체하게 해선 안 돼

“지금 우리는 역사상 가장 큰 위기 속에 있다. 모든 인프라, 자연을 대하는 방식, 과학을 다루는 방식, 아이들을 교육하는 방식, 경제를 움직이는 방식, 정부를 운영하는 방식, 우리의 삶의 방향성 등 모두 바뀌고 있다. 역사상 이보다 더 큰 위기도, 더 큰 기회도 없었다.”

미국의 대표적인 경제·사회 이론가인 제러미 리프킨 경제동향연구재단 이사장(80)은 기후위기와 인공지능(AI) 기술 등으로 급격한 변화를 맞이하고 있는 현 상황을 이같이 진단했다. 경향신문은 지난 4월23일(현지시간) 미국 메릴랜드주 베세즈다 경제동향연구재단 회의실에서 리프킨 이사장과 인터뷰를 했다.

사회과학 명저로 꼽히는 <엔트로피> <노동의 종말> <3차 산업혁명> <글로벌 그린 뉴딜> <회복력 시대> 등을 쓴 리프킨 이사장은 AI를 포함한 정보기술 혁명을 ‘3차 산업혁명’으로 규정한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이 경제·사회·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해온 그는 유럽연합(EU)과 중국의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3차 산업혁명 전환 경제계획을 설계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구 온난화와 기후위기, 재생에너지 등에 주목해온 리프킨 이사장은 인류가 스스로를 멸종 위기에 처하게 만든 건 ‘화석연료 중심의 중앙집중형 패러다임’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마지막 대멸종은 6500만년 전이었다”며 “하지만 지금 우리 아이들이 살아 있는 동안 다시 벌어질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리프킨 이사장은 인류 스스로 멸종을 피하기 위해 20년 내 ‘재생에너지 중심의 분산형 패러다임’으로 전환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앞으로 20년 안에 패러다임 변화는 반드시 일어난다”며 급속히 발달하는 AI 기술을 이 같은 패러다임 전환의 도구로 제한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다음은 리프킨 이사장과의 일문일답 주요 내용.

- 인류 역사상 지금처럼 변화가 빠른 적이 있었을까 싶다. 현재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나.

“19세기와 20세기의 1·2차 산업혁명은 모두 중앙집중형이었다. 화석연료를 땅에서 뽑아 인프라를 구축했다. 일명 ‘마이너스적 제조 방식’인 것이다. 땅속에서 그 물질들을 끄집어내고, 정제하고 저장하는 데 엄청난 투자가 필요해 막대한 군사력과 자본이 필요했다. 중앙집중형 패러다임은 소수의 글로벌 기업에 통제권을 제공했고, 나머지 모든 산업도 화석연료에 의존해야 했기 때문에 그들의 통제에 종속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우리는 500개의 글로벌 기업을 갖게 됐고, 그들이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그 피라미드 구조의 꼭대기에 있는 상위 8명의 부자는 전 세계 인구 절반이 가진 부를 합친 것과 맞먹는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이게 바로 1·2차 산업혁명, 중앙집중형 마이너스적 제조 방식이 만들어낸 결과다.”

- 그렇다면 ‘3차 산업혁명’은 기존 1·2차 산업혁명과 무엇이 다른가.

“3차 산업혁명은 중앙집중형이 아닌 ‘분산형’이다. AI 3D 프린팅과 ‘플러스적 제조 방식’은 누구나 접근할 수 있다. 지역 기반의 재료를 활용할 수도 있고, 관세 없이 결과물을 전송하고 전 세계로 분산시킬 수도 있다. 이탈리아 건축가 마리오 쿠치넬라는 점토를 활용한 3D 프린터로 완전한 건물을 만든다. 그리고 그 설계도를 휴대전화로 30초 만에 한국으로 보낼 수 있고 한국의 건축가는 라이선스 비용만 지급하면 된다. 관세도 없다. ‘탈중앙화’를 넘어선 ‘분산’인 것이다. 분산을 가능하게 하는 태양광과 풍력과 같은 에너지는 어디에든 존재한다. 태양이나 바람을 모두 독점해서 수확할 수 있는 대기업이 있을까? 없다. 아무리 탐욕스럽다고 해도 그건 불가능하다.”

- 현재의 변화 속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지금 일어나는 변화의 속도는 굉장하다. 당신들은 AI 세대이지 않나. AI는 당신 세대에게 아주 익숙한 기술이다. 그러나 여전히 큰 문제가 있다. 바로 물이다. 일론 머스크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AI 기술이 어디에 쓰일 수 있는지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 AI를 쓰는 방식은 AI 활용에서 아주 일부에 불과하다. 비서 업무나 연구, 광고 등 여러 분야에 AI가 쓰일 텐데 정말 AI가 핵심적인 역할을 해야 하는 분야는 인프라 관리다. 분산형 통신·에너지·모빌리티·주거 등 모든 인프라를 연결하고 운영할 수 있는 AI가 필요하다. 그런데 문제는 물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반도체 하나를 만드는 데 순도 높은 물 22~30ℓ가 필요하다. 지난해 만들어진 반도체만 1조3000억개에 달하는데, 실리콘밸리의 사람들이 아무리 똑똑해도 물이 부족한 건 어쩔 수 없다. 우리는 그 물을 핵심 인프라를 유지하는 데 사용해야 한다.”

- 국제사회가 3차 산업혁명, 분산형 패러다임으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맞닥뜨릴 위기는 무엇이라고 보나.

“지금 모두가 지정학적 갈등과 관세전쟁에 대해 걱정하고 있지 않나. 그런데 사실 지금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것은 새로운 시작이 아니라 기존 지정학적 세계의 붕괴, 즉 ‘끝 지점(Endgame)’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앞으로 보게 될 것은 지정학적 세계가 아닌 ‘생물권 지역 중심의 지배구조’일 것이다. 홍수나 가뭄, 폭염, 산불, 허리케인 같은 현상들은 국경이나 정치적 경계를 따지지 않고 발생한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세계의 주요 군사 전략 싱크탱크들이 예측하는 미래의 가장 큰 위기는 군사적 위기가 아니라 바로 생태적 위기다.”

- 그런데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 등으로 국제사회에서 단절과 분열이 점점 심화하고 있는 것 같다.

“전 세계 모든 국가가 여전히 지정학적 프레임에 갇혀 있다고 생각한다. 특정 국가만의 문제가 아니다. 모두가 그런 식으로 움직이고 있다. 그러나 그런 움직임은 거대한 흐름에서 별로 중요하지 않다. 기후변화는 개별 국가가 지정학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규모가 아니다. 분산형 패러다임의 전환 역시 특정 국가나 정부가 통제할 수 있는 규모가 아니다. AI를 통해 전 세계인이 통신, 에너지, 모빌리티를 공유하게 될 텐데 이를 어떻게 통제할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어떤 국가가 정말 똑똑해지려면, 이제는 지정학에서 생물지리권으로, 글로벌에서 ‘글로컬’, 즉 지역화된 글로벌 네트워크로 전환해야 한다. 이게 좋은 생각이어서가 아니라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 AI 기술로 무기를 만드는 등 기술 발달에 따른 부작용 우려도 존재한다.

“맞다. 우리가 스스로를 파괴할 수도 있다. 우리는 지금 위험한 시대에 살고 있다. 이건 첫 번째 핵폭탄이 떨어졌을 때부터 이어진 우려다. 더 말할 것이 뭐가 있겠나. 운이 좋길 바랄 뿐이다. 나는 항상 ‘희망은 갖되 순진하지는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나는 낙관주의자도, 비관주의자도 아니다. 낙관주의자는 그냥 좋은 소식이 오기만을 기다린다. 그런데 그런 일은 잘 안 일어난다. 반면 비관주의자는 나쁜 소식을 기다리며 멈춰 있는데 그건 자기 자신을 마비시키는 방식이다. 앞으로 20년 안에 내가 말한 패러다임 변화가 반드시 일어날 텐데 그 전에 치명적인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 AI가 인류를 지배할 수도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다들 영화를 너무 많이 봤다. 로봇이 우리를 대체할 것이라고? 정말 유치하고 미성숙한 생각이다. 그런 걱정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다만 AI가 위험할 수 있다는 건 맞는 말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주체성을 잃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AI가 내 과제를 대신 써주고 교수가 그걸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AI에게 결정권을 넘겨주는 것과 다름없다. 도움은 받되 매우 제한된 방식으로 사용해야 한다. 과제를 대신 쓰게 해선 안 된다. 그리고 AI는 인간의 사고력과 절대 경쟁할 수는 없다. AI는 ‘경외’를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경외란 허리케인이나 토네이도, 거대한 산맥을 보고 느끼는 ‘이건 내 능력을 넘어선다’는 감정이다. 경외는 놀라움으로, 놀라움은 상상력, 상상력은 공감, 그리고 초월로 이어진다. 이런 것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 이 같은 패러다임의 변화 흐름 속에서 한국의 역할이 있을까.

“내가 한국인들을 만나면 항상 묻는 게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한국은 어떻게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나라 중 하나가 됐나?’ 아일랜드도 마찬가지다. 전쟁 후 비슷한 상황에서 한국과 아일랜드는 어떻게 그렇게 발전할 수 있었을까. 생각해보니 두 나라가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요소가 있더라. 오랫동안 다른 나라에 점령당하고 억압받았다는 점이다. 아일랜드는 영국에, 한국은 여러 외세에 의해 지배당했다. 그런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매우 영리해야 했다. 생존이 걸린 문제였으니 끊임없이 생각해야 했다. 억압 속에서 그들은 자신의 문화, 철학, 세계관을 지켜냈다. 살아남고 적응하는 법을 배운 것이다. 기후위기를 겪고 있는 지금 전 세계가 필요한 것도 바로 그 ‘생존과 적응’ 능력이다. 한국인과 아일랜드인이 억압 속에서 문화를 지켜낸 것처럼 기후위기 속에서 우리는 인간성과 문화를 지켜내야 한다. 어떻게 그들은 생존하고 적응하는 법을 배웠는지 세계가 한국과 아일랜드를 주목해야 한다.”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