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구역

2025-12-05

“라디오 다이얼을 돌리다가 유대인들이 모욕받고 멸시당하고 추방당했다는 말을 들으면 나는, 히틀러는 죽지 않았는데 그들이 거짓말을 했구나 한다.”(에메 세제르 <식민주의에 대한 담론>)

이주노동자를 지게차에 매달아 들어 올리고는 재미있다며 웃는 사람들을 보면 나는, 히틀러는 죽지 않았는데 그들이 거짓말을 했구나 한다. 이주노동자가 강제단속을 피하려다 떨어져 죽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나는, 히틀러는 죽지 않았는데 그들이 거짓말을 했구나 한다.

지난 10월 28일 대구 성서공단 제조업체에서 일하던 뚜안씨는 법무부의 미등록 외국인 단속 중 호흡곤란을 호소하다 3층에서 떨어져 목숨을 잃었다. 뚜안씨는 사망 직전 친구에게 “무서워”, “숨쉬기 힘들어”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나는 살면서 숨쉬기 힘들 정도의 공포를 느낀 적이 없다. 일터에 들이닥쳐 소리를 지르며 나를 수갑을 채워 버스에 태우려는 사람들을 만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만히 생각한다. 나는 그 상황에 뚜안씨처럼 되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APEC 정상회의는 예정대로 진행됐지만 주최국의 대통령도, 베트남의 국가주석도 이주노동자 뚜안씨의 죽음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러면 뚜안씨는 왜 죽어야 했을까.

뚜안씨는 지난 2월 대구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D-10 구직 비자를 소지한 취업준비생이었다. 구직 비자는 졸업 후 2년간 체류와 시간제 근로(주 25시간)를 허용한다. 뚜안씨가 전공 관련 일자리를 찾지 못해 2주째 자동차 부품 공장에서 일하던 중 단속반이 들이닥쳤다. 나는 뚜안씨가 얼마나 대단한 잘못을 저질렀는지 모르겠다. 내가 아는 것은 뚜안씨의 죽음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와 관계가 있었다는 것이다.

법무부는 9월 29일부터 12월 5일까지 미등록 이주민에 대한 정부 합동단속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이 단속의 목적은 ‘APEC 정상회의의 성공적인 개최를 지원하기 위해’라고 했다. 말하자면 우리의 정부는 장학사 방문 소식에 교실 바닥을 물걸레질하듯, 정상들의 방문 소식에 미등록 이주민을 깨끗이 청소하러 나섰다. APEC과 미등록 이주민이 어떻게 관계되는 것인지에 관해서는 아무런 설명이 없었다. 법무부는 올해 상반기에만 불법체류 외국인 3만7000여명에 대해 출국 조치를 내렸다며 역대 최다 단속 실적을 자랑했다. 국제행사를 앞두고 약자들을 비가시화하는 것은 한국 정부의 오랜 전통이다. 88서울올림픽 때와 달라진 것이 있다면 도시 빈민, 장애인이 차지했던 자리를 이제 이주노동자가 차지했다는 것이다. 국제행사라는 이벤트 앞에서 비현실적인 외국 인력 단기 순환 정책의 문제는 숨고, 할당된 청소구역만이 남았다.

어릴 적 장학사의 미스터리는 바닥의 광택 같은 것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는 것이다. APEC 정상회의는 예정대로 진행됐지만 주최국의 대통령도, 베트남의 국가주석도 뚜안씨의 죽음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 어떤 국가의 정상도 그랬다. 그러면 뚜안씨는 왜 죽어야 했을까. 그것과 그것은 도대체 무슨 관련이 있었을까.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