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철 그 XX, 기분 더럽게” 12명 살인마 분노한 이유

2025-12-04

대한민국을 뒤흔든 대형 사건들은 늘 여론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범죄자들의 이름은 각인되고 그들에 대한 분석도 넘쳐납니다. 하지만 그 사건을 추적한 형사들은 기록에 남지 않습니다. 범인의 서사는 남는데 수사의 서사는 비어 있습니다. 더중앙플러스-강력계 25시(https://www.joongang.co.kr/plus/series/300)는 그 공백을 메웁니다. 실전에서 뛰고, 부딪히고, 끝장을 보는 형사들의 수사기. 책상 위 추리로는 도달할 수 없는 현장의 세계를 보여드립니다.

이번 이야기는 2004년부터 2년 동안 서울 서남부 지역에서 부녀자를 살해한 정남규 이야기입니다.

1편-“시X, 백개는 땄어야 했는데” 2호선 막차 살인마의 정체

2006년 4월 24일.

모자를 푹 눌러쓴 정남규가 강력2팀 형사들에게 에워싸인 채 영등포서 정문에 나타나자 카메라 셔터음과 플래시가 사방에서 빗발치기 시작했다. 카메라맨 뒤로는 편한 차림새의 기자들이 바닥에 앉은 채 무릎에 노트북을 얹어놓고 현장 상황을 속기로 써내려갔다. 정문 계단참에 대기하던 방송 기자들이 무선 마이크를 정남규한테 갖다 대며 “혐의를 인정하느냐”고 고함에 가까운 질문 세례를 퍼붓던 것도 잠시, 형사들은 취재 포화를 뚫고 기동대 봉고차에 정남규를 밀어 넣은 뒤 관악구 봉천동으로 향했다. 그가 3건의 살인을 자백한 이튿날 오전의 일이다.

두 자매가 시체로 발견된 관악구 봉천동의 한 주택이 불길에 타오르는 장면이 뉴스에 보도된 지 한 달 만에 진범이 붙잡혔다. 더군다나 그가 얼마나 더 많은 살인을 저질렀을지 모른다는 경찰 브리핑에 사회부 기자들은 처음으로 현장검증에 나서는 정남규의 모습을 포착하고자 떼 지어 몰려든 것이다. 이른바 ‘장이 섰다’고도 하는 진풍경으로, 형사들은 경찰서를 빠져나와 여의2교 사거리로 접어들 무렵에야 긴장을 풀었다. 취재 열기에 자극받은 정남규가 무슨 돌발행동을 벌일지 예측이 안 됐기 때문이다.

그들은 2년 전 유영철 사건 당시 분노에 찬 중년 여성이 취재진을 뚫고 그에게 접근하려다 형사의 발길질에 넘어졌던 사태를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다. 바닥에 엎어져 절규하던 여성의 눈물이 언론에 포커스되면서 경찰은 살인범을 엄호한다는 비난에 직면했다. 그간의 노력이 무위로 돌아가는 순간이었다. “정남규를 내보내기 전 사무실에 있던 모자를 씌워주고 부하들에겐 기자들과 눈도 마주치지 말고 턱에 힘을 꽉 줘서 무표정을 유지하라고 했다. 수사보다 언론 대응에 힘을 빼는 건 사양이었다.” 이두연 팀장의 회고다.

형사들이 정남규를 데리고 현장으로 들어서자, 곧 사전에 그가 기억해낸 도면과 내부 구조가 하나씩 맞아떨어졌다. “여기, 현관 벽에 열쇠를 걸어두는 못이 박혀 있었고, 무슨 메달도 주렁주렁 달려 있었어요. 거실로 들어가면 피아노랑 상장이 붙은 방이 나왔고.” 정남규의 입에서 나온 구체적인 묘사였다. 범인이 아니면 알 수 없는 특정 사실들이다.

피해자 부친 김모씨에게 확인하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딸이 피아노를 쳤습니다. 콩쿠르에서 수상할 때마다 받은 메달을 걸어놨죠. 지금은 전부 치웠지만요….” 두 딸을 잃은 김씨는 수사 초기 보험금을 노린 부친의 소행이라며 관악서에서 장시간 취조를 받았던 사람이다. 이미 유영철 사건으로 인해 연쇄살인범이 주택에 침입해 사람을 죽이고 불을 질러 도주하는 식의 패턴이 드러난 바 있지만 관악서는 구태(舊態)를 답습하는 추리에 그쳤다. 생존한 셋째는 두개골이 함몰되고 큰 화상에 괴로워하고, 다른 방에서 자던 넷째는 극도의 불안 장애에 시달리던 때, 부친은 가정보다는 경찰서 조사실에 묶여 있어야 했다.

“봉천동 때는 복스대를 써봤어요. 그걸로 사람을 죽이면 어떤 기분일지 궁금해서.”

취조 중에 정남규는 불쑥 털어놨다. 복스대는 쇠파이프 끝에 무거운 추가 달린 공구다. 통상 자동차 타이어 휠 너트를 풀 때 쓴다. 그걸 사용한 뒤 관악구청 인근의 주택가에 은닉했다고 했다. 실제로 가보니 담벼락 사이 나무에 걸린 우유 주머니에서 복스대가 나왔다. 혹시 있을 경찰의 불시 검문에 대비해 복스대뿐만 아니라 범행 도구는 현장 근처에 가져다 숨겨뒀다가 사용하고 다시 돌려놨다는 설명이다.

또한 그는 현장까지 자정 시간대 2호선 전철을 타고 가다가 운행이 끊기는 역에서 내린 뒤 도보로 걸어감으로써 경찰의 의심을 피하는 수법을 썼다. 사건이 발생하면 통상 현장 근처를 탐문하고 cctv를 확인해 용의자를 찾는 경찰에겐 그저 평범한 행인으로만 보인다. 정남규가 한 차례도 용의 선상에 오르지 않았던 배경이다.

정남규는 상황에 따라 범행 방식을 바꾸는 치밀함도 보였다. 초기에는 노상에서 혼자 귀가하는 부녀자를 쫓아가다 기회를 봐서 칼을 휘둘렀다. 심지어 피해자가 자택 현관에 다다르며 안심하고 있을 때 별안간 몸을 돌려세워 복부를 찌르기도 했다. 피해자들의 신체에서 유독 허벅지에 자상이 많은 것은 그들이 어떻게든 살아남고자 몸을 움츠리며 무릎을 세웠기 때문이다. “돈을 요구하는 건가 싶어서 가방을 던져줬어요. 그런데 무시하고 칼을 든 채로 달려들더라고요.”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피해자는 고개를 저었다. “그때 가로등 불에 비친 정남규의 웃는 얼굴이 잊히지가 않아요.”

(계속)

수사 결과 정남규의 범행으로 밝혀진 사건은 총 21건. 12명이 살해됐고, 20명이 중상을 입었다.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해도 영구 장애를 입은 피해자도 많았다. 유가족들은 생각지도 못한 비극에 정신적 고통에 빠졌고, 형이 확정되지 않은 터라 국가 배상도 받지 못했다. 살인이 일어난 집이 불길하다며 동네에서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어야 했으며, 주변과 관계가 단절된 경우도 있었다. 형사들은 매일같이 정남규를 취조한 뒤 현장검증에 나서면서 비극의 잔재를 수없이 목도했다. “조사실에 들어갈 때마다 감정을 억눌렀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이두연 팀장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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