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팔고왔다" 최태원 이 말에 SKC 주가 19%↑…유리기판 뭐길래

2025-01-12

유리 기판은 ‘제2의 고대역폭메모리(HBM)’인가, ‘너무 이른 축포’인가.

최태원 SK 회장이 지난주 미국에서 열린 소비자·가전 쇼 CES 2025에서 “방금 팔고 왔다”며 함박웃음을 지은 뒤, 유리 기판이 반도체 업계의 뜨거운 관심사로 떠올랐다. 국내 부품 대기업 삼성전기와 LG이노텍도 각각 CES에서 “2027년 양산”“2~3년 내 기존 기판을 대체할 것”이라며 유리 기판을 다음 먹거리로 외쳤다.

그러나 과열된 기대나 투자 심리를 경계하는 시각도 만만찮다. 기존 플라스틱 소재를 유리로 바꾸는 만큼 장비·공정에서 넘어야 할 산이 많고, 안정성도 검증되지 않아서다.

앞장선 앱솔릭스, ‘영업맨’ 자처 최태원

기판은 반도체를 장착하고 회로와 연결하는 판이다. 인공지능(AI) 시대에 연산 성능·속도를 높이기 위해 다양한 종류의 칩을 더 많이 연결하는 추세인데, 현재 쓰는 플라스틱 기판은 칩의 무게 때문에 휘기 쉽다. 다닥다닥 붙은 칩들이 내는 열로 뜨거워지기도 일쑤다.

대만의 TSMC는 기판과 칩 사이에 실리콘으로 만든 중간 기판(인터포저)을 넣어 이를 해결했으나, 실리콘 인터포저 값이 비싸고 공급이 부족해 고객사들을 줄 세우고 있다. 그런데 유리는 소재 특성상 휨과 열에 강하고 전력 효율이 높은데 실리콘보다 저렴해, 이런 고민을 해결할 차세대 기판으로 꼽힌다. 특히 AI 주도권을 잡기 위해 고성능 데이터센터를 운영하는 빅테크가 주목한다.

SKC는 지난 2021년 유리기판 사업을 위해 미국 장비업체 AMAT와 합작해 앱솔릭스를 세웠고, 지난해 상반기부터 미국에서 시제품 생산에 돌입했다. 국내 반도체 패키징 회사 중 유일하게 미국 상무부로부터 7500만달러(약 1000억원)의 반도체과학법 보조금도 확정받았다.

재계에 따르면, 최 회장은 이번 CES 기간 내내 앱솔릭스 유리 기판 샘플을 들고 다니며 만나는 빅테크 경영진들에게 보여줬다고 한다. 8일 최 회장이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를 만난 뒤 SK 전시관을 찾았기에, 유리 기판을 방금 팔고 왔다는 대상이 엔비디아라는 추측이 나오면서 이날 SKC 주가는 19% 급등했다.

10년 개발 인텔 “2030년 상용화” 이유는

그러나 업계에서는 ‘상용화 거론은 이르다’는 말도 나온다. 각 업체가 말하는 상용화가 ‘기술의 완성’인지 ‘안정적 양산 단계’인지도 명확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인텔은 지난 2023년 “10년 이상 유리 기판에 투자했다”라면서 양산 목표를 2030년으로 밝혔다. 인텔 본사 패키징 담당 이춘흥 부사장은 지난해 방한 강연에서 “유리 기판은 전력·수율·발열 모두 강점이 있다”면서 “발열을 잡으면 중앙처리장치(CPU) 위에 HBM을 올릴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지금은 인터포저 위에 CPU·GPU·HBM을 나란히 배치하는 이른바 ‘2.5D 패키징’이라면, 유리 기판에서는 칩 위에 칩을 올리는 진정한 ‘3D 적층 패키징’이 가능하다는 거다. 이 부사장 역시 ‘2030년 양산’ 로드맵을 재확인했다.

반도체 업계는 인터포저를 실리콘에서 유리로 대체하는 기술과 코어(중심) 기판에 유리를 쓰는 기술을 각각 연구하고 있는데, 두 방향의 기술적 우위도 가려지지 않았다.

익명을 요구한 글로벌 반도체 업체 임원은 중앙일보에 “유리 기판은 PDK(공정 설계도구)가 걸음마 상태라 고객이 원한다 해도 제공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라며 “양산까지 막대한 투자가 필요함은 물론이고, 아직 전용 장비도 표준화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2026년 상용화’는 무리라는 시각이다.

단기 투자 과열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다양한 소재·부품·장비 업체들이 저마다 ‘유리 기판에 진출한다’ 선언하지만, 최종적으로 어떤 기술이 채택될지 알 수 없는 데다가 개중에는 핵심 기술과 연관성이 적은 업체도 섞여 있다는 것.

SK HBM 후계자는 유리기판?

SK는 ‘HBM 신화’를 유리기판에서 재현하기 원한다. 뚝심 있게 HBM에 투자해 ‘AI 메모리 주도권 잡기’에 성공했듯, 유리 기판에서도 치고 나가겠다는 거다. HBM에는 D램 메모리에 미세한 구멍을 뚫어 전기 신호를 연결하는 ‘실리콘 전통 관극(TSV)’ 기술이 사용되는데, 유리 기판에도 비슷한 ‘유리 전통 관극(TGV)’ 기술이 적용된다. 다만 유리는 실리콘과 달리 구멍을 뚫다가 금이 가거나 깨지기 쉽고 금속과 잘 접착되지 않아 기술 난이도가 높은데, 개발사마다 각기 다른 방식을 택하고 있다. SK하이닉스가 HBM에서 독자적인 접착 방식으로 주도권을 잡았듯, SKC 앱솔릭스가 TGV를 안정적으로 구현한다면 승산이 있다는 분석이다.

최 회장은 유리 기판에 각별한 기대를 보인다. 지난해 7월 미국 출장에서 조지아 주 앱솔릭스 유리 기판 생산 공장을 방문했다. 업계에 따르면, 최 회장은 앞서 인천에 있는 앱솔릭스 협력사 사업장을 직접 찾아가 유리 기판 기술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고 한다.

아직 유리 기판 기술의 표준도 공급망도 완성되지 않은 상태라, 시제품까지 내놓은 앱솔릭스에 업계의 관심이 쏠린다. 지난해 가을 SKC의 또 다른 자회사인 ISC가 유리기판용 테스트 소켓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고 밝혔다. ISC는 칩셋의 전기적 특성을 검사하는 테스트 소켓을 만드는 회사인데, 앱솔릭스와 협력해 유리 기판용 소켓도 만든 것. SKC는 앱솔릭스 유리 기판과 ISC 소켓을 함께 고객사에 공급한다는 계획이다. SKC 측은 “빅테크 고객사에 샘플을 발송 중이며, 현재 소형 공장에서 생산 가능한 양까지 예약이 차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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