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번 CES의 주인공이었던 센트럴 홀이 점차 B2B관으로 변모함에 따라 행사장을 찾은 소비자들은 볼 게 많이 없어졌다. CES의 명칭이 국제소비자가전전시회(Consumer Electronics Show)임을 생각하면 아이러니한 일. 전자관은 실제 구현되지 않은 콘셉트를 남발하는 경향도 있어서 전시 항목들이 실제로 구현될지도 알 수 없다는 문제가 있다. 삼성과 LG도 마찬가지다. 삼성의 볼리 콘셉트는 2020년 등장했으나 5년이 지난 올해 출시되며, 그나마도 테니스공만한 형태에서 볼링공이 돼버렸다. 소니의 아필라 역시 2년 전에는 LED로 무장한 미래 자동차 같은 모습이었으나 양산이 되는 올해는 그냥 평범한 전기차로 변했다.
그러나 모빌리티관은 달랐다. 대부분 콘셉트가 아닌 올해 출시될 제품들을 들고 나왔으며, 모빌리티관 특성상 볼거리도, 체험해볼 거리도 많다. 특히 유럽 일부 지역 자율주행 레벨 3 허가가 내년으로 다가왔기 때문에 업체들의 각축적은 그 어느 때보다 강했다.
외관만 보면 당연히 콘셉트 제품같은 엑 eVoTL(전기 수직 이착륙 항공기)을 전기차에 싣고 다니는 제품이다. 엑스펭 에어로트(XPENG AEROHT)는 지난해에는 차에 프로펠러가 달린 플라잉 카를 콘셉트랍시고 선보였는데, 해당 콘셉트를 잘 다듬어 eVoTL을 모듈식으로 쏙 넣고 싣고다니는 차량을 선보였다. 차량은 스타리아 정도의 크기며, 콘셉트 제품이 아니다. 사이트에 츠리세일한다고 적혀 있다. 양산은 꽤 시간이 걸릴 것 같지만 언젠가는 우리가 볼 수 있는 제품이라는 의미다.
모빌리티관을 들어가면 항상 제일 먼저 보이는 LG이노텍은 자율주행차용 부품, 픽셀 라이팅, LED 라이팅과 무선 배터리 관리 시스템(WBMS)을 선보였다. 모두 콘셉트 제품이 아니라 실제 팔고 있는 제품이다. 전기차의 경우 배터리끼리 상태를 주고받는 것이 중요한데, 이를 무선으로 구현하면 배터리 무게가 많이 줄어들게 된다. LG이노텍의 멋진 전시였다.
퀄컴은 AR을 활용해 미래 자동차가 어떤 모습인지를 보여주는 전시를 했다. XR 기기를 쓰면 차 안에 있는 자신이 등장한다. 퀄컴은 대시보드용 플랫폼인 콕핏 엘리트, 자율주행용 라이드 엘리트 등을 전시하는 셈이었다. 퀄컴이 라이드 엘리트에서 주로 내세우는 건 자사 칩셋이 멀티모달에 능하다는 것이었다. 요즘 멀티모달 안 되는 칩이 어딨냐고 묻고 싶었지만 영어로 말하기 어려워 포기했다.
일본의 농기계 기업 쿠보타의 각종 농기구들. 전동화 포크리프트 외에는 대부분 콘셉트였지만 그 콘셉트가 재밌었다. 특히 아래 마지막 두 기기는 둘 다 자율주행을 하는데, 작은 기계가 지형을 파악하고 해당 정보를 주면 곡물을 실은 기기가 따라가는 식이다.
일본기업 오시코시의 쓰레기 처리 트럭. 카메라로 사람, 쓰레기, 쓰레기통과의 거리 등을 파악해 자동으로 쓰레기통을 트럭에 비워주는 제품이다. 콘셉트 제품이 아니라 이미 애리조나를 비롯한 미국 몇개 주에 출하한 바 있다고. 중간에 있는 자율주행 꼬마 쓰레기통은 콘셉트 제품이다.
코마쓰의 미니 굴착기와 해저 굴착기. 실제로 출시된 제품이다. 해저 100미터에서 주로 사용하지만 300미터까지도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조작은 중간에 있는 리모트 컨트롤러로 할 수 있다.
국내기업 채비는 정비, 식음료 제공, 전기충전을 한꺼번에 할 수 있는 플랫폼 ‘채비’를 전시했다. 국내뿐 아니라 현재 미국에도 진출해 있다.
캐터필러의 전동화 건축 장비들. 캐터필러는 제품보다 사이트를 완전 자동화하는 것이 더 큰 특징이다. 중간의 사진을 보면 태양광 발전, 풍력 발전을 통해 전기를 생산하고 ESS에 저장한다. 해당 에너지를 자율주행 장비들이 가져다쓰는 것까지 생각하고 플랫폼을 만들었다.
스즈키는 자동차보다는 인프라 구축 전시를 하고 있었다. 중간의 자율주행차는 공항에서 환승 구역까지 가는 소형 자율주행 버스다. 이 버스를 타고 환승구역까지 가서 UAM을 비롯한 다른 교통수단으로 갈아타는 형태다. 버스가 소형인 이유는 자전거 도로 수준으로 좁은 통로에서 달리도록 설계됐기 때문. 단순 콘셉트가 아니고 미국 공항들에서 실제로 인프라 구축을 시작했다. 나중에는 공항에서 도심으로 오는 것이 지금보다 훨씬 저렴하고 편해질지도 모르겠다. 맨 위는 일본 전용 전동 트럭, 맨 아래는 스즈키가 최근 협업하고 있는 SDV 전문 제조사 어플라이드EV.
사실상 로보택시의 알파요 오메가인 웨이모가 6세대 로보택시 플랫폼을 공개했다. 카메라 16개, 라이다 5개, 레이더 6개, 외부 오디오 수신기(EAR)를 탑재해 최대 500미터 떨어진 곳까지 시야를 제공한다. 원래도 웨이모는 다른 회사보다 사고 사례가 적은 편인데 앞으로는 더 줄어들 전망이다. 주력 차량은 지커(Zeekr)의 것이지만 현대 아이오닉 5도 있다.
어느덧 모빌리티관의 대장이 돼버린 존 디어의 자율주행 2세대 플랫폼 탑재 차량들. 잔디깎이는 잔디만 깎는 게 아니라 물건도 나르고 다양한 역할을 할 수 있다. 과수원용 트랙터 등은 이제 빽빽한 견과류 나무 사이들도 쉽게 주행한다.
모빌리티관에서 유일하게 뜬구름잡는 기업이 있었는데 혼다였다. 굉장히 큰 전시관에 저 두 차량만 놔뒀다.
현대모비스는 엠브레인, 홀로그래픽 윈드실드, 인간 중심 앰비언트 라이팅을 전시했다. 엠브레인은 운전자 상태를 파악하고 대시보드에 정보도 주는 솔루션이다. 다른 업체들은 사용자를 파악할 때 주로 카메라만 쓰는 데 반해 엠브레인은 뇌파까지 활용해서 스트레스 레벨 등도 파악한다. 홀로그래픽 윈드실드는 자동차 앞 유리에 정보를 띄워주는 것인데, 기존 제품들보다 훨씬 밝고 3D 효과도 일부 구현할 수 있다. 자이스의 유리 기술을 활용했으며 2027년에 양산된다고. 휴먼센트릭 라이팅은 빛으로 사람의 기분 케어를 돕고 정보도 주는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운전자가 문을 열 때 뒤에서 무언가가 오고 있다면 노란빛을, 충돌할 정도로 가깝다면 붉은빛을 보여주는 식이다. 현대모비스가 전시한 그대로 상용화되지는 않겠지만 일부 요소들은 바로 도입되면 운전할 때 매우 유용할 것이다. 모빌리티관 최고 인기 부스 중 하나였다.
지커(Zeekr)를 보면 미국과 한국 자동차기업들이 매우 긴장해야 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지리자동차가 만드는 지커는 저렴한 가격에 고급 트림을 선보이는 전기차 브랜드다. CES에서 상용차 브랜드 중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실 제품을 들고 나왔다.
SUV인 믹스 차량의 경우 자율주행 모드나 주차 중일 때 활용할 수 있는 의자 회전 기능이 돋보인다. 앞자리 두 의자가 원터치로 회전하며, 센터 콘솔까지 뒤로 이동한다.
대형 차량인 009 그랜드의 경우 운전석 뒤를 막고 디스플레이를 부착했다.
충전 솔루션의 경우 로봇팔이 달려 충전까지 로봇이 알아서 한다.
HL만도는 체인 없는 전기자전거 시스템을 들고 나왔다. 체인이 있으면 고장이 나기 쉽다는 점에서 착안해 스터링 휠과 스티어 액추에이터 사이에 린 액추에이터 하나를 추가해 와이어만으로 휠과 액추에이터가 통신하도록 했다. 현재 라이틀(RYTLE)에 납품이 이뤄졌고, 라이틀은 DHL에 수주를 받아 제품을 운용할 예정이다.
내년 이후 혹시 CES에 들른다면 모빌리티관에 꼭 들러보도록 하자. CES가 잃어버린 재미와 기술, 아름다움은 그곳에 있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이종철 기자> jude@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