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처럼 세계가 이렇게 빨리 바뀐다고 느낀 적이 있었나 싶다. 불과 1~2년 전만 해도 생성형 AI는 일부 개발자들의 실험적 기술처럼 여겨졌지만, 지금은 그 기술이 산업 전체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흐름이 되었다. 미국에서는 이미 법률, 국방, 금융, SaaS 전 분야에서 AI 기반의 핵심 의사결정 구조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고, 스타트업들이 만들어내는 속도와 효율은 기존 대기업이 따라가기 어려운 수준이다.
특히 놀라운 건, AI가 단순히 생산성을 높이는 수준이 아니라, 사람이 감당할 수 없었던 복잡한 구조 해석 및 판단력을 넘어서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예컨대 Harvey AI는 미국 대형 로펌들이 이미 표준처럼 도입하고 있는 AI 법률 어시스턴트인데, OpenAI의 GPT-4 기반 모델을 법률 데이터에 특화하여 튜닝하고 검색 기능을 통합한 구조다. 평균 6시간 이상 걸리던 계약서 초안 작성과 판례 정리가 30분이면 끝나고, 그 안에는 조항별 리스크까지 자동으로 하이라이팅 되는 기능도 포함되어 있다. 변호사가 참고하는 수준이 아니라, 실질적인 초안을 함께 만들어가는 파트너에 가깝다. 2024년 기준 Harvey AI는 전 세계 250여 개 로펌 및 기업에서 사용되고 있다고 하니, 이미 AI 없이는 불가능했을 처리 속도와 정확도가 이제는 당연한 기준이 되고 있는 셈이다.
다른 분야도 크게 다르지 않다. 미 국방부와 특수부대에서 사용하는 Shield AI는 무인기(UAV)가 복잡한 전장 상황에서 스스로 판단하고 자율 작전을 수행하도록 설계됐다. 이 시스템은 다중 AI 에이전트가 강화학습을 기반으로 실시간 판단을 내리는 구조인데, 사람이 제어하지 않아도 목표를 식별하고 팀 기반의 전술을 조정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 시스템은 미 국방부 DARPA 및 특수부대에 정식 배치되었으며, 복잡한 환경에서 실시간 판단과 다중 목표 최적화 수행이 가능하다. 이는 단순한 자동화가 아니라, 상황 인식과 전략적 사고를 통합한 AI 전환의 본질을 잘 보여준다.
이런 흐름은 금융 분야에서도 가속화되고 있다. Figure는 미국의 대표적인 AI 기반 금융 인프라 SaaS 기업으로, 신용평가 모델과 프로세스 자동화를 결합하여 기존 금융사가 수일 이상 걸리던 대출 심사와 실행 과정을 5분 이내로 줄였다. 사람의 개입 없이도 고객 확인부터 승인, 실행까지 모든 절차가 연결되고, 기존 금융기관 대비 대출 처리 시간을 99% 이상 단축시키며, 블록체인을 통한 자산 유동성 개선과 AI 기반 위험 관리 모델을 결합한 새로운 금융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다. 이는 기존의 금융 시스템을 대체하는 수준이 아니라, 전혀 다른 방식으로 금융 인프라를 다시 설계하는 이른바 '은행 없는 뱅킹'을 실현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 Jeff Bezos, NVIDIA, MS, Goldman Sachs 등으로부터 6억 7,500만 달러 투자를 유치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지금 한국의 상황은 어떤가. 우리는 챗봇이나 간단한 자동 분류기 수준의 AI 기술을 일부 도입하고 있는 단계지만, 여전히 주요 의사결정은 사람의 판단을 기본으로 한다. 규제가 복잡하다는 이유도 있지만, 실제로는 내부 시스템과 조직 문화가 AI의 역할을 제한하고 있는 경우가 더 많다. 어떤 금융사에서는 여전히 AI가 부가 기능이라는 인식이 강하게 남아 있고, 기술을 '도입하는 것' 자체에만 의미를 두고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명확하다.
첫째, 금융 업무에서 AI가 사람의 의사결정을 더 잘 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환경부터 조성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선 AI로 자동화를 할 수 있는 업무 영역을 명확히 정의하고, 그에 따른 책임 구조를 제도적으로 설계해야 한다. 즉 휴먼에러 발생을 낮추고 기술과 사람의 공조가 윤리적인 환경에서 더욱 빠르게 이뤄질 수 있는 판을 마련하는 셈이다.
둘째, AI기술을 실제 시장에 적용해볼 수 있는 테스트베드는 충분히 존재하지만, 실제 승인까지 8개월 이상 걸리는 현재의 혁신금융서비스 제도는 실효성이 떨어진다. 보다 빠르게 시범 적용과 정식 인가를 연결할 수 있는 패스트트랙형 제도가 시급하다. 이미 전세계 시장은 골든타임의 궤도에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스타트업이 만든 새로운 AI 모델이나 데이터 활용 구조가 기존 금융기관과 잘 연동되는 것이 중요하다. 금융기관은 전통적인 업무 방식을 벗어나 기술적 구조를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아무리 뛰어난 기술도 기존 시장과 함께 만들어갈 수 없다면, 혁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주저하는 사이, 전 세계의 기술 기반 금융은 이미 다른 궤도 위에서 움직이고 있다. 시장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규제를 이유로, 내부 저항을 이유로 시간을 흘려보낸다면, 결과는 결국 사용자와 자본의 이탈이다. 기술의 골든타임은 길지 않다. 지금이 바로, 우리가 변화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