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지은의 보험키워드] 부모와 자식간 세대차이, 보험에도 있다

2025-02-01

서지은 보험설계사·칼럼니스트ㅣ지난해 연말 가족이 돌아가며 심한 독감과 감기에 시달렸다. 약은 물론 수액 처방으로 주사까지 맞았야 했다. 병원비가 제법 나왔길래 실손보험에 청구했다. 청구 서류를 보완하라는 보험사의 연락을 받았다. 수액 처방이 치료 목적이라는 의사 소견서를 첨부해 다시 접수하라는 이유에서다.

실손보험에 가입한 지 오래지만 그간 치료비를 청구한 건 손에 꼽을 정도였다. 진료확인서에 감기 치료가 명시되어 있음에도 굳이 수액 처방에 관한 의사 소견서를 다시 첨부하라니 기분이 썩 내키지 않았다. 한편으론 보험설계사 입장에서 어떤 이유로 수액 치료의 실손보험 청구마저 보완이 필요한 사항이 되었는지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현재 실손보험 가입자는 국민의 70%에 달하는 3600만명에 육박한다. 가입이 가능한 대상자 대부분이 든 보험으로 과연 제2의 국민건강보험이라는 말이 과언이 아니다. 실손보험은 2009년 9월까지 판매된 1세대를 거쳐 그동안 개정에 개정을 거듭해 2021년 7월 가입자부터는 4세대 실손보험 약관을 적용받는다.

그런데 4세대 실손보험이 개시된 지 4년 만에 5세대 개정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개정 약관이 적용되는 시기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4세대 실손보험의 자기 부담률 20~30%가 5세대에서는 50%까지 오를 전망이며, 남용 우려가 큰 비급여 치료 항목을 ‘관리 급여’로 전환해 표준 가격을 정하고 높은 자기 부담률(90~95%)을 적용할 거라고 한다.

구체적인 것들은 공식적인 발표가 있어야 알게 되겠지만 비급여 진료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도수치료’는 반드시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쉽게 말해 관리 급여로 지정된 도수치료 1회에 10만원일 때 내 부담금이 90%라면 9만원을 내고 실손보험에 청구해 일정 부분 돌려받는 형태가 된다.

4세대 실손에서는 비급여 항목 치료 금액에 따라 할증을 적용하고 있어 마지막 혜택이라는 심정으로 비급여 치료 횟수를 늘렸다간 추후 보험료 폭탄을 맞을 수 있다. 게다가 5세대 실손보험은 비급여 항목 자기 부담률이 대폭 커진다고 하니 보험료 때문에 기존 실손보험 전환을 고민하고 있다면 신중할 필요가 있다.

개인의 치료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시작한 실손보험이 어째서 이토록 뜨거운 감자가 된 걸까? 보험사 입장에서도 실손보험은 애물단지다. 이제 와 없앨 수도 없고 이대로 가다간 회사의 손해율은 점점 커져 갈 것이다.

1세대 실손은 자기 부담률이 0%로 청구 제외 항목을 제외하고 보험금을 신청하면 모두 되돌려받는다. 공짜 치료처럼 느껴지지 않을까? 게다가 표준 가격이 없는 도수치료와 같은 비급여 항목은 병원마다 가격이 2배까지 차이가 나는데, 보험사가 2024년에 지급한 비급여 의료비가 전체 보험금의 56%에 달한다는 건 간과할 만한 현상이 아니다.

2세대부터 자기 부담률이 약간 올랐으나 워낙 월 보험료가 저렴해 대부분 부담 없이 청구했다. 문제는 실손보험에 가입하고 있으면서 아프지 않거나 신청 과정이 귀찮아 청구하지 않았던 이들이 선의의 피해자가 된 사실이다. 회사는 손해율을 메꾸기 위해 보험료 갱신이 불가피하고 가입 후 별다른 청구를 하지 않았음에도 갱신보험료 폭탄을 맞은 가입자는 불만의 소리를 냈다. 4세대로 개정 후 기존 가입자의 전환을 유도했으나 효과는 크지 않았다.

코로나19 시기였던 2021년 실손보험 적자는 2조8182억원에 다다른다. 아무리 특수한 시절이라고는 하나 이후 적자 금액도 만만치 않으니 곧 보험업 10년 차를 맞이하는 나로서도 실손보험의 미래가 낙관적으로 보이진 않는다. 의료 기술은 점점 발전하고 비급여 치료 항목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100% 내 부담인 비급여 치료를 떠올리면 아무리 갱신보험료가 높아도 실손보험을 포기하기란 어려운 노릇이다. 게다가 기대여명은 점점 길어지고 있어 돈만으로 노후 치료비를 감당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동시에 경제생활을 더 이상 하지 않는 나이에 월 보험료가 대폭 갱신된 기존 실손보험료 부담을 안고 가기는 벅차다.

올해 보험회사는 실손보험 인상률을 평균 7.5%로 정했다. 1세대는 2%, 2세대(2009.1~ 2017.3)는 6%, 3세대(2017.4~2021.6)는 20%, 그리고 4세대(2021.7~)는 13% 수준에서 보험료가 오를 예정이다. 내가 가진 실손보험이 몇 세대인지 체크하고 갱신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 아플 때 병원에 가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내가 받는 치료가 적절한 수준인지 치료를 받는 사람도 의료행위를 하는 쪽도 성실하게 임해야 한다.

보험회사에는 보험료 갱신 외에 다른 합리적인 방법을 찾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며 보험설계사는 정확한 사실을 근거로 변경된 항목을 가입자에게 제대로 알려야 할 의무가 있다, 보험의 세대차이나 나이에 따른 세대차이나 그 격차가 클수록 사회가 분열되고 서로간 갈등이 심해질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서지은 필자

하루의 대부분을 걷고, 말하고, 듣고, 씁니다. 장래희망은 최장기 근속 보험설계사 겸 프로작가입니다.

마흔다섯에 에세이집 <내가 이렇게 평범하게 살줄이야>를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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